스가랴 1:12-17 / 70년
70년
이근호
2023년 8월 9일
본문 말씀: 스가랴 1:12-17
(1:12) 여호와의 사자가 응하여 가로되 만군의 여호와여 여호와께서 언제까지 예루살렘과 유다 성읍들을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시려나이까 이를 노하신지 칠십 년이 되었나이다 하매
(1:13) 여호와께서 내게 말하는 천사에게 선한 말씀, 위로하는 말씀으로 대답하시더라
(1:14) 내게 말하는 천사가 내게 이르되 너는 외쳐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예루살렘을 위하며 시온을 위하여 크게 질투하며
(1:15) 안일한 열국을 심히 진노하나니 나는 조금만 노하였거늘 그들은 힘을 내어 고난을 더하였음이라
(1:16) 그러므로 여호와가 이처럼 말하노라 내가 긍휼히 여기므로 예루살렘에 돌아왔은즉 내 집이 그 가운데 건축되리니 예루살렘 위에 먹줄이 치어지리라 나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다 하라
(1:17) 다시 외쳐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성읍들이 넘치도록 다시 풍부할 것이라 여호와가 다시 시온을 안위하여 다시 예루살렘을 택하리라 하셨다 하라
성전을 파괴시키므로서 하나님께서는 ‘진노의 하나님’으로 이스라엘에 나타내셨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것은 이 하나님의 진노를 어떻게 통과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스가랴는 사람하고 상대하지 않고 천사와 상대해서 이야기합니다. 이는 같은 인간과 협의하고 노력한다고 해서 하나님의 진노를 통과할 수가 없음을 확인했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아닌 하늘 나라에 속하는 존재, 곧 천사를 통해서 전달되는 하나님의 그 다음 계획과 진척된 작업상황을 통고받게 됩니다. 70년이 되면 다시 자기 백성을 약속의 땅으로 돌아오게 해주시겠다는 그 약속은 어떤 식으로 구현되느냐에 관한 내용입니다. 즉 진노하시는 하나님을 70년 기간이 어떻게 해소케 하느냐에 대한 하나님의 구체적 작업에 관한 내용입니다.
70년 전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서 성전을 철거하셨습니다. 성전이란 하나님과 자기 백성과는 연락사무소 같은 곳입니다. 성전이 없어졌다는 말은 하나님과 연락할 수 있는 모든 기회가 상실되었음을 뜻합니다. 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진 상태, 바로 이 상태가 하나님의 진노하심을 막혀 있는 상태가 됩니다.
인간에게 여전히 목숨이 붙어있어 살아 움직인다고 해서 받아주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그런 목숨으로 통과시킬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목숨이 아니라 생명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분노하신 이유는,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생명이 없기 때문입니다.
지옥이란 성전이 없는 상태를 말하고, 천국은 성전이 유지되는 상태를 말합니다. 성전이 이스라엘에게 없다는 것은 생명이 없이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여전한 상태에 놓여 있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포로 기간 70년이 지나면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올 수 았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그것은 그 70년 기간 동한 하나님의 진노가 철회되고 하나님의 긍휼이 제공되는 정당함이 70년 기간 동안 마련되어졌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 작업을 위하여 인간은 배제되고 천사가 중간을 메우게 됩니다. 누가복음 1:26-27에 보면, “여섯째 달에 천사 가브리엘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들어 갈릴리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다윗의 자손 요셉이라 하는 사람과 정혼한 처녀에게 이르니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가브리엘이라는 천사가 과연 70년 기간에 이스라엘에 대한 진노를 철회시키고 긍휼을 덧입게 될까요? 그렇지 못합니다. 핵심은 마리아 몸에 임신된 아기에게 있습니다. 이 아기에게 하나님의 진노하심이 충만하게 될 것입니다. 말로만 전해졌던 예언이 역사 안에서 눈으로 보이는 형식이 됩니다.
이 진노를 안고 예수님은 70년의 내막에 담긴 하나님의 뜻을 완료시키십니다. 그렇다면 과연 70년이란 어떤 기간을 뜻할까요? 요한복음 8:57-58에 보면, “유대인들이 가로되 네가 아직 오십도 못되었는데 아브라함을 보았느냐 예수께서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 하시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유대인들의 시간관은 과거로부터 미래로 이어지는 단선적 시간관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아브라함 있기 전에 벌써 자신이 계시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렇게 되면 단선적 시간관을 예수님에 의해서 U턴 됩니다. 구부려집니다.이렇게 역사의 뒷면이 나옵니다. 역사에 가려서 보이지 않던 그 뒷면말입니다.
인류가 아직 가보지 못한 역사의 끝은 예수님께서 70년을 떠안으므로서 예수님 중심으로 구부려져 처음과 끝이 만나게 됩니다. 쉽게 말해서 기술계 고등학교 3학년 2학기 교실 분위기 같습니다. 파장 분위기입니다. 취직하기 위해 설립된 고등학교에서 3학년 2학기 되면 많은 학생들은 벌써 취직어서 실습나가 있습니다.
70년의 기간을 담당하는 메시야에 의해서 은혜를 입은 자들은 벌써 천국에 취직한 자들입니다. 이들만은 예수님 덕분에 무사히 하나님의 진노를 통과해서 하나님의 긍휼을 입고 삽니다. 예수님께서 이 70년 동안 무슨 일을 하신 걸까요? 우리는 예수님의 죽으신 장소와 부활하신 장소가 다르다는 점을 아셔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죽으신 것은 골고다 언덕입니다. 부활하신 곳은 예수님의 육신입니다. 즉 역사적 바탕에서 죽으시고 성령 안에서 부활하신 겁니다. 이 부활의 차원에서 보면, 역사적 시간관은 수정이 필요합니다. 그 수정 안이 요한복음 2:20-22에 나옵니다. “유대인들이 가로되 이 성전은 사십육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뇨 하더라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제자들이 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및 예수의 하신 말씀을 믿었더라”
46년과 3일을 같은 차원에서 연결지을 수가 없는 겁니다. 인간들이 알고 있는 바는 단선적 역사관입니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70년을 이해해서는 아니됩니다. 다니엘 9장에서 이 70년 70이레로 변경해놓으셨습니다. 70이레는 두 개의 하나님의 사건으로 세 토막이 납니다. 하나는 7이레입니다. 다른 하나는 62이레입니다. 다른 하나는 1이레입니다.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칠십 이레로 기한을 정하였나니 허물이 마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영속되며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 이상과 예언이 응하며 또 지극히 거룩한 자가 기름부음을 받으리라 그러므로 너는 깨달아 알지니라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 기름부음을 받은 자 곧 왕이 일어나기까지 일곱 이레와 육십이 이레가 지날 것이요 그 때 곤란한 동안에 성이 중건되어 거리와 해자가 이룰 것이며
육십이 이레 후에 기름부음을 받은 자가 끊어져 없어질 것이며 장차 한 왕의 백성이 와서 그 성읍과 성소를 훼파하려니와 그의 종말은 홍수에 엄몰됨 같을 것이며 또 끝까지 전쟁이 있으리니 황폐할 것이 작정되었느니라 그가 장차 많은 사람으로 더불어 한 이레 동안의 언약을 굳게 정하겠고 그가 그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며 또 잔포하여 미운 물건이 날개를 의지하여 설 것이며 또 이미 정한 종말까지 진노가 황페케 하는 자에게 쏟아지리라 하였느니라”(단 9:24-27)
마지막 1이레가 예수님이 죽으시는 십자가 사건으로 둘로 나뉘어집니다. 그렇게 되면 이 십자가의 능력과 위력과 효과로 역사판에서 천국판으로 옮겨질 수가 있는 겁니다. 즉 하나님께서 성도의 죄많은 육신에 부활의 위력을 덧입혀서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 하시는 성전으로 만드신 겁니다. 이 모든 공로는 예수님 홀로 이루신 겁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사람이 뚫지 못한 하나님의 진노를 홀로 뚫어내셔서 긍휼을 전해주시는 은혜에 감사케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