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순 2023. 2. 5. 13:38

음성

 

주인과 종 230205

 

설교:이근호

녹취:정인순

 

어떤 분이 말하기를 어린애가 없기 때문에 주일학교 그만 해도 되지 않겠느냐는 이야기를 해서 저는 그렇지 않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왜냐하면 천국에서는 다 어린애기 때문에. 천국이 누구든지 어린애 같이 되지 아니하면 천국에 못 간다 했거든요.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배우는 게 아니에요. 학원이 아니고 여러분 속에 말씀이 들어가 있습니다. 새삼스럽게 배우란 말이 아니고 여러분 속에 들어가신 분의 이야기를 여러분들을 통해서 어떻게 발현되는가, 여러분이 가고 있는 학교나 아니면 직장이나 어디에도 그 현장에서 말씀이 바깥으로 쏟아내고 있어요. 말씀이.

 

나의 욕구를 이겨내가면서 말씀이 쏟아지고 있다고요. 우리는 남들처럼 살고 싶어해요. 그러나 그것을 거역하고 삐죽 튀어나오듯이 말씀이 튀어나와 버립니다. 뭐가? 바구니 속에 아기, 이런 이야기. 직장 회식하면서 이런 이야기가 왜 튀어 나오죠? 바구니 속에 아기, 이 말씀 자체가 우리 속에서 가만히 있지를 못해요. 마치 임신한 거 같아. 애가 가만있지 못하고 엄마가 가만있어 한다고 애가 발로 안 차는 거 아니거든요. 물론 전 애를 낳아 보지 않았기 때문에 들은 이야기입니다마는.

 

나 따로 있고 내 안에 아기 따로 있고 생명체가 두 개가 함께 공존하고 있어요. 공생하고 있는 겁니다. 우리 안에서 성령께서 주님이 함께 있고 또 우리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세상적이에요. 우리의 자존감과 자신감 위신 이거 챙깁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그걸 용납하지 않죠. 주님이 하신 다 이루었다는 일이 우리를 허접한 우리를 어떻게 째버리고 그걸 무시하고 주님께서 천국 백성으로 쓰여지는 것을 어떻게 쓰여지는지 그걸 보여주는 겁니다.

 

그럴 때 태어나서 죽어야 마땅한 아기 모세입니다. 아들은 그 당시에 아들은 법적으로 아들 낳으면 죽게 돼있고 딸 낳으면 살게 되어있어요. 히브리인들에게만 특별히 적용된 특별법이었어요. 그것은 히브리인들의 사상이 전체 애굽 나라의 사상과 다르기 때문에 걔들이 남성이 많아지게 되면 남성이 많아지게 되면 그들이 반란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그래요. 그래서 그걸 잠재우기 위해서 여자들만 키워서 여자들만 그냥 애기 낳는 기계 또는 남의 집의 하녀 해서 여자는 어디에 가도 주인이 남자가 주인이 있기 때문에 꼼짝 말아야 되잖아요. 그래서 여자는 살려주고 남자는 죽여야 돼요.

 

그래서 엄마는 그 모세가 태어난 모습을 보고 비범함을 알아가지고 보통 아이다. 그래서 모세가 태어날 때 좀 이렇게 흐리부리하게 태어났으면 엄마가 죽였을 거예요. 이게 보통 애 아니다 싶어서 끝까지 차라리 내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얘는 살려야 되겠다 해가지고 살려냅니다. 살려내는데 한계 있네. 못 살려내요. 순찰들이, 그 히브리인들은 같이 모여 살았거든요. 게토라고 해서 같이 모여 사는데 거기에다가 경찰이 자꾸 순찰이 빈번하게 합니다. 혹시나 애 울음소리 나나 싶어서. 지금 순찰 돌고 있는데 애 울음소리 나면 대번 들어가지고 딩동 그거는 없지만, 딩동 딸입니까, 아들입니까? 딸이에요. 한번 봅시다. 고추 봅시다. 꼬추 없네. 그러면 살려주고 있으면 죽여버리고. 그렇게 한 거죠.

 

그래서 모세가 엄마로서는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어요. 어릴 때는 이렇게 소리가 안 나도록 했는데 크니까 애가 바깥 상황 정치적 상황에 대해서 아는 게 없잖아요. 그러니까 막 울고 싶을 때 막 우는 거예요. 아악! 저기서 막 경찰 오는데 와악 우니까 도저히 참지를 못해가지고 얘 보내야 되겠다. 먼저 태어난 누나가 있었어요. 미리암이라 하는데 그 미리암이라는 누나보고 내가 얘 버릴란다. 버릴 때 니가 누구 집한테 가는지 니가 한번 쫓아가봐라.” 그래가지고 버릴 때 나일강에다가 물에다가 바구니 만들어서 애 안고 물에 띄웁니다. 그걸 복불복이라고 이야기해요. 누가 건지면 됐고 안 건지면 죽고. 이거는 뭐 어쩔 수 없어요. 복불복. 복이냐 복이 아니냐의 결정, 그냥 던져버렸습니다.

 

아직까지 이름도 안 지었어요. 이름도 안 지었는데 이름이 없어요. 이름이 없다는 것은 아직 제대로 존재의 수준에 오르지 않았다. 누가 불러주지 않는, 이름이 없으니까 못 불러주죠. 죽은, 아직까지 산 자가 아니다 이런 뜻이죠. 이름이 없는 자 하는데 이게 이렇게 물길을 볼 수밖에 없어요. 물길이 가는데 갈대숲을 쭉 가는데 뒤따라가는 그 누나는 조마조마했지요. 만약에 우리 동생인데 좀 건져주세요, 이러면 큰일 나는 거예요. 이거는 법망으로 걸려든 거예요. 대번에 신고 들어옵니다. 여기에 히브리 애가 아들이 있는데 살려고 했어요. 내가 그때 신고 정신이 투철했으니까. 그래가지고 할 수 없다, 맡기자 하는데 물길이 가는데 이게 참 희한한 게 그냥 물길이 물 따라 갔으면 모세는 지중해에 빠져 죽었습니다. 그냥 바다로 가는 거예요. 빠이빠이 누나도 빠이빠이 하고 마지막 이별을 해야 되는데 가는데 하필이면 바로의 공주와 시녀들이 목욕하는 그 타이밍에 애가 왔어요.

 

애가 들어올 때 만약에 그 왕자들이 목욕했다면 모세가 죽었습니다. 물 부어라 이거 하고 있는데 이런 거 뭐냐, 갖다 버려. 신고하자. 이렇게 되는데 공주이기 때문에 여성이기 때문에 여성의 모성애가 있었겠죠. 근데 애가 하는 걸 보고 그 모성애도 애가 못생겼으면 또 모성애도 자극이 안 받아요. 애가 너무 이쁘거든요. 그래서 마님 여기 무슨 바구니가 하나 왔는데 애가 뭔가 떠내려와요.” 그래서 가져와봐라.” 애 너무 마음에 드네. 갑자기 불복에서 복으로 바뀌었습니다.

 

건져가지고 내 애 삼자. 이거는 뭐 보니까 주인이 없는 것 같은데 우리가 내 아들 삼자. 바로의 공주의 아들로 드디어 등장합니다.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말씀처럼. 바로의 공주의 아들로 했을 때에 그때 갈대숲 속에 있던 누나가 있는데 근데 누가 하는 이야기를 들었겠죠. 그런데 우리는 애 젖을 먹일 유모가 없잖아. 그때 그 타이밍을 안 놓쳐가지고 제가 있나이다.” 해가지고 제가 소개할 수 있습니다. 제가 유모 소개 전문 업체입니다 .”해가지고 들어와가지고 유모를 소개하는데 누구를 소개하느냐? 모세 자기 엄마를 소개하는 거예요. 드라마도 이런 드라마, 완전히 가족이 헤어졌다가 비공식적으로 만나버렸어요. 너도 한번 해볼래? 아빠 엄마 헤어졌는데 우연히 만나가지고 아빠 엄마가 아빠라 하지 마. 아저씨라 불러. 또 삼촌을 불러.

 

이래가지고 어쨌든 간에 그때 이름을, 중요한 것은 이름을 처음 짓습니다. 이름을 모세. 뭐냐? 물에서 건져냈다. 왜 이게 모세가 그냥 그 엄마가 못 키우고 물에서 공주를 통해서 건져야 될 이유냐 하면은 모세가 앞으로 건져내야 될 그 많은 히브리인들이 남성만 해도 육십만이나 되는 히브리인들, 히브리인들이 전부 다 물에서 건져냄을 당해야 돼요. 물이라고 하는 것은 물은 어린아이에게 위험한 요소죠. 죽습니다. 죽음에서 건져냄을 당하지 아니하면 어느 누구도 구원받을 수 없다는 그 메시지가 여기에 담겨있는 거예요. 그 하늘의 비밀이 담겨 있는 거예요.

 

모세는 그냥 평범한 인생이지만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거기다가 하나님의 비밀을 거기다가 담은 거예요. 여러분에게도 다, 여러분 나중에 다 알아요. 여러분의 속에 무슨 비밀이 있을 거예요. 그 비밀이 조금씩 조금씩 여러분한테 새어 나옵니다. 새어 나올 때 여러분이 이걸 알아야 돼요. 이거는 내가 한 것이 아니고 주께서 하셨습니다, 라는 고백을 여러분들이 문득 문득 하셔야 돼요. 어떤 사람은 자주 하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한 15년 만에 한 번씩 하는 사람도 있고. 있더라도 이것은 내 인생은 주께서 다루지 내가 다룰 인생이 아니라는 것을 알 때가 있는 거예요.

 

그거는 무엇과 관련 있는가? 이름과 관련되어 있어요. 그래서 우리 이름으로 구원 못 받습니다. 우리 이름은 재끼고요 우리 이름은 인정하지 않고 우리가 예수의 이름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예수의 이름은 뭐냐? 우리를 무엇에서 건져낸 자다? 죄에서 우리를 건져낸 거예요. 모세는 어디서 건짐 받았습니까? 물에서 건짐 받았죠. 죽음을 의미하는 물에서. 우리는 죽음을 의미하는 죄에서 건짐 받은 자로서 우리가 이 땅에서 직장이나 세상 생활을 하게 되게 되면 내가 이렇게 죄인이구나, 일단 알게 하시고 그 죄에서 이미 건져냈다는 사실을 이 죄의 현장에서 우리의 삶을 통해서 드러내는 겁니다.

 

죄에서 건짐 받았다는 것은 내가 착해졌다는 말이 아니라 다른 분이 나와 더불어 함께 살고 있다는 뜻을 의미하는 거예요. 그래서 모세는 그때부터 이제 어떤 오류를 범하는데 뭐냐 하면 혼자 살라 하는 거예요. 나는 옛날에 과거에 하나님께서 날 건져줬다. 입만 띠면 하나님 하나님 하지만 아무리 하나님을 이용해도 속은 뭐냐? 역시 나는 내 혼자 있어. 내 혼자 있어가 계속해서 계속되는 겁니다.

 

하다가 언제 자기 혼자 있는 게 아닌 것이 들통났느냐 하면, 여기에 제목이 불타는 가시덤불, 불타는 가시덤불. 이거 러시아 폭격 맞아서 불타는 거 아닙니다. 가시떨기나무인데 떨기나무는 이상하게 여기서 라이터로 불붙인 것도 아니고요 스스로 불은 붙었는데 연소되지 않아요. 연소된다는 말은 이게 점점 더 숯덩이로 검은 숯덩이로 변하지 않아요. 생생한데 불도 생생하고 그 불이 핀 그 나무까지도 생생해요. 뭐 이런 게 다 있어요. 이런 게 다 있어요. 희한해요.

 

이유는 뭐냐? 모세도 생생한데 모세와 함께 있는 하나님도 생생해. 그 사실을 떨기나무로서 보여주는 겁니다. 불도 진짜 불이요 나무도 그 불이에요. 점점 나무가 바짝 말라 재가 되는 게 아닙니다. 그대로 있으면서 주의 일은 그대로 하자 없이 다 수행되는 그런 인간으로 내가 너를 만들어 줄게. 모세야 봤냐? 봤습니다. 신발은 벗어야지. 아이고 미안합니다. 신발을 벗으라 한 이유가 뭐냐 하면은 이제부터는 네가 너의 주인이 아니라는 거예요. 신발이라 하는 것은 걷는 거잖아요. 걷는 용도지요. 내가 앞으로 어디로 갈지, 인생을 어떻게 살지, 앞으로 여기 있다가 직장 옮길지 삼성으로 옮길지 몰라. 하여튼 어디로 갈지 어떤 걸음인지 그 걸음은 내가 걱정할 필요도 없고 내가 염려할 필요도 없고 그것은 신발을 내가 뺏어가마. 신발을 주님이 뺏어가버려요. 내가 해가지고 신발만 주고 가라하면 쫓아가가지고 신발 신어야 되고, 신발 가지고 이쪽에 가라 하면 이쪽에 가야 되고. 주인과 종이 확실한 관계가 유지되게 되었어요. 모세가.

 

여기 모세 보면 옆에 지팡이 있죠. 모세가 지팡이를 잡고 있지만 사실은 지팡이가 모세를 이끌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지만 하나님이 우리를 쥐고 있다는 뜻이에요. 우리는 거울 보면 내 모습이지만 우리가 갖고 있는 상황이 주님이 주신 상황이 나를 지배하고 있다는 뜻이에요.

 

모세가 이제 양을 치는 목자가 드디어 사람 치는 목자가 된 겁니다. 그렇게 해서 이제 모세는 하나님을, 주인을 만났습니다. 주인 만나는 것이 슬픕니까? 나의 주인 원천을 만났는데. 혼자 살지 마시고 주인을 만나 주인이 시킨 대로 살면 어떤 순간이든 내가 좌절하거나 절망할 자격 우리한테 없습니다. 항상 감사하고 이 순간 이 지점에서 이 순간에 내 할 일이 뭐냐? 주님 앞에 늘 지시 받아서 다 이루었다는 것만 증가할 수 있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죽었다가 살아난 자를 주의 종으로 삼아주시니 이 스토리가 우리들의 스토리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