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순 2022. 11. 6. 13:30

음성

영생의 떡 221106

 

설교:이근호

녹취:정인순

 

우리 아기 첫 성경 이야기. 항상 우리가 어린아이같이 되지 않으면 안 돼요. 여러분들의 연세가 만만치 않잖아요. 연세가 만만치 않더라도 주님께서는 여러분들을 새롭게 어린아이, 새로운 어린아이로 말씀으로 오늘도 새로 태어난 어린아이로 간주하시기 때문에 늘 어린아이의 마음으로 말씀이 들어오셔야 됩니다.

 

여기 오늘 이야기는 요한복음 6장에 나오는 5천 명을 먹이셨어요. 사실은 이게 제목이 이거 오천 명을 먹이는 게 핵심이 아닙니다. 니가 먹은 것이 너를 살리지 못한다는 게 핵심이에요. 그들은 분명히 떡을 먹었고 고기를 먹었어요. 그러나 떡 먹는다고 고기 먹는다고 천국 갑니까? 이게 안 되는 거예요. 떡을 먹고 고기를 먹으면 배는 불러요. 그래서 주님께서는 실컷 배불러 줬어요. 배불러주니까 비로소 인간은 자기의 본색을 자기의 그 본 얼굴을 드러냅니다. 이 분만 있으면 앞으로 떡과 고기의 조달 문제는 조달하는 데 있어서는 이거는 문제없겠다. 저 분을 우리의 윤석열로 삼아야 된다. 대통령으로 사자. 임금으로 사자. 이래가지고 그들이 쫓아오기 시작한 거예요.

 

?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뭐라 하느냐 하면 너희들이 너희들에게 먹을 걸 제공하는 그런 메시아, 그런 구원자 그런 도와주는 자를 원한다면 너희들은 썩었다. 너희들이 어느 정도로 썩었는가를 주께서 일부러 들추어내기 위해서 떡과 고기를 먹인 거예요. “배부르니 좋티?” “좋았어요.” “그러니까 그거는 썩은 거야. 그러니 너희들은 저주 받는 거야. 니 목적은 뭐냐? 배부른 거 외에는 있어 없어?” “없습니다.” “그러니까 너희들은 끝난 거야. 너희들은 나와 함께 있으면 안 돼. 너희들은 나를 오해했어. 너희들이 만들어낸 메시아, 만들어낸 구원자 만들어낸 하나님 이런 분을 보내줬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나님이 보내주는 자를 너희들이 그걸 구성을 했고 계획을 한 거예요.

 

그게 마음속에 있었던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먼저 그들이 어떤 잘못된 메시아 잘못된 하나님인가를 끄집어내기 위해서 그들에게 떡과 고기를 준 거예요. 요즘 말로 번역하면 뭐냐? 옥상에서 돈 뿌린 겁니다. 그것도 만 원짜리가 아니고 오만 원짜리를 뿌린 거예요. 옥상에서 뿌리고 있는데 차 타고 가다가 그냥 갈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일단은 뭔가 내려보자. 일단 한번 주어보자. 니도 갔을 때 같이 내려. 빨리 빨리 주워. 횡령죄에 해당됩니다. 횡령죄에 해당됩니다. 다 토해내야 돼요. 다 물어줘야 돼요. 그거.

 

옥상에서 돈 뿌리듯이 돈 뿌려주니까 그다음부터는 우리의 경제 문제 우리의 기본 생존 문제 해결된다. 그런 메시아 좋다고 따라온 겁니다. 처음에 그것이 오천 명을 주께서 준비한 게 아니에요. 처음에는 어린아이 도시락을 어린아이가 갖고 있는 보리떡 다섯 개 물고기 두 마리 그 물고기를 작은 물고기에요. 갈릴리 바다에서 큰 물고기도 나지만 작은 물고기에다가 보리떡 다섯 개를 어린애가 이렇게 가져왔을 때 이걸 이제 예수님께서 제자들 보고 그랬죠. 너희들 이 5천 명이 배고플 때 됐는데 너희들이 식사 해결해라. 하니까 제자들이 난감하지요. “이 많은 사람 식당 없습니다.” 그럴 때에 그 제자 한 사람이 와서 빌립이인가 와가지고 어린애가 이런 도시락을 갖고 왔는데 이게 뭐 소용이 있겠습니까마는 주께서 한번 어떻게 주께서 어떻게 활용해보시려면 한번 해보시지요.”

 

그 어린 나이의 도시락을 가져왔을 때 예수님께서는 이걸 가지고 기도를 합니다. 기도를 하는데 이게 신기하게도 계속 어린아이 도시락을 가지고 하는데 여기를 놓고 기도를 하니까 아무리 퍼내도 이게 끝이 없이 계속 나오는 거예요. 오천 명을 넉넉하게 다 먹였습니다. 보리떡 다섯 개 물고기 두 마리, 물고기 떼버리고 보리떡 다섯 개 보리떡 다섯 개가 이게 어른 도시락이 아니고 어린애 거거든요. 그게 어떤 양이냐면 어린애 한 명 어린애 한 명만 먹일 수 있는 양이 남자만 5천 명을 먹였던 거예요. 그것도 플러스 나머지가 있어요. 나머지 12 광주리가 가득하게 남았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사람들은 감을 잡았어야 돼요. 이것은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것은 우리가 달라고 하는 걸 주시지 않는다는 그런 우리의 예상 밖의 것을 준비해 놨다는 것을 감을 잡아야 돼요. 세상에 어떤 것도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엄청난 복을 준비했다는 것을 감안해야 돼요. 예수님께서는 그 떡을 주면서 이렇게 이야기했어요. 떡을 줄 때 너희들은 뭘로 보이냐? 떡으로 보이냐?” “. 떡이었습니다.” “너희들은 떡으로 보면 안 돼. 그걸 생명의 떡으로 봐야 돼. 생명으로 봐야 돼. 떡은 뭐냐? 내가 떡이야. 내가 하늘로서는 내린 떡이야.” 떡이라고 하는 것은 방앗간에서 만들어 낸 이렇게 만들어낸 손으로 이걸 떡이라고 하는데 주님께서 하늘로 나폴나폴 내려온 그 자체가 생명의 떡으로 여기게 만든 거예요.

 

그리고 예수님이 하신 말씀은 나를 떡으로 여기고 나를 먹는 자는 살고 나를 먹지 않는 자는 살지 못한다. 영생이 없다.” 이렇게 이야기 했거든요. 그러니까 그 이야기 듣고 떡을 이제 나눠주고 떡을 나눠주고 한 거예요. 그렇게 이야기할 때 그 이야기 하나하나가 사람들이 갖고 있던 평소에 내가 내 삶을 사는 방식하고는 이게 전혀 맞는 게 하나도 없어요. 사람을 먹는다? 파푸아 뉴기니아 쪽에 가면 거기 식인종이 옛날에 있었답니다. 옛날에. 사람의 떡을 먹는다. 주님께서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지 않는 자는 너에게는 영생이 없다. 그 말은 뭐냐 하면 이걸 간추려 보면, 없다가 돼요. 너희들은 없다. 뭐가 없다? 영생이 없다. 너희들 내 빼놓고 너희들은 어떤 누구도 영생이 없다는 거예요.

 

왜냐하면 그동안 인간들은 자기가 노동한 것을 자기가 노동한 결과를 본인의 것을 본인의 수고한 것을 본인이 먹어왔기 때문에 그래요. 그걸 단독성이라고 해요. 내 인생은 내가 알아서 내가 책임지는 거 그런 식으로 살아왔다 이 말이죠. 누구한테 기대는 것을 굉장히 부끄럽게 여겼던 거예요. 누구한테 의지하는 것을 이거는 남자답지 못하고 용감하지 않다고 여긴 거예요. 그러니까 되지도 않은 자존감은 있어가지고 그들은 예수님을 본인이 선택했다고 본 거예요. 예수님은 내가 당신을 찜했으니까 그 찜에 부응해 달라는 겁니다. 당신한테 좋은 호의로 호의를 갖고 있으니까 당신은 우리 호의에 보답해줄 의무가 있다는 거예요. 이 정도 하니까 물 건너 바다 건너까지 따라왔으니까 우리 성의를 봐서라도 우리 원대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주시옵소서. 하는 거예요. 그 성의가 문제예요. 그 성의가. 주님께서는 우리의 성의를 보고 주는 예가 없어요. 우리의 열심을 보고 주는 예가 없습니다.

 

그래서 내 살과 내 피를 마시라 할 때는 이거는 결정적이죠. 너희들이 니 살아가는 방식에서는 영생과는 무관하다. 관계 없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은 그냥 내 곁을 떠나라 이 말이에요. 주님의 곁을 떠나지 아니하면 우리가 주님을 믿을 수가 없습니다. 이건 나의 오해가 주님한테 막 거기에 갖다 부었기 때문에 나의 오해가 나의 잘못된 견해가 예수님한테 갖다 부어놓고 내가 이만큼 주님한테 성의를 보였으니까 거기에 대해서 뭔가 거기에 대한 주님 쪽의 성의를 한번 보여 달라. 그런 식으로 예수님을 생각해서는 안 돼요. 인간은 예수님을 떠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피와 예수님의 살을 어떻게 먹을 수 있느냐? 떠나야 먹을 수 있어요. 인간이 예수님을 버려야 먹을 수 있습니다. 인간이 예수님을 버리지 아니하면 예수님의 살이 생산되지 않고 예수님의 피가 흐를 일도 없어요. 인간들이 예수님을 미워서 창으로 찌르고 못으로 박아야 그래서 그래야 우리의 죄를 씻어주는 피가 그제사 나오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주님이 하신 일에 기여자입니까? 공로자가 돼요? 공로패 하나 드릴까요?

 

예수님은 제자들도 제자들 가라. 제자들도 떠날 수밖에 없어요. 제자들이 다 거기서 다 갔어요. 다 가고 난 뒤에 여기 보니까 한 12명 남아 있거든요. 12 제자 멀뚱하게 뜻도 몰라요. 아무것도. 그냥 있어요. “너희도 가지? ?” 베드로보고 너희는 왜 안 가나? 너희들은 내 살과 내 피를 마실라꼬? 지금 그런 마음이야? 내가 분명히 지금 내 살과 내 피를 안 마시면 너희는 구 원 못 받는다고.”

 

그 말은 뭐냐? 나를 떠나야 비로소 예수님이 누군지를, 떠난 상태에서 비로소 안다는 거예요. 떠나지 않으면 예수님을 알 수가 없어요. 내가 내 고집을 부릴 때 비로소 예수님은 나와 관련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비로소 아는 거예요. 여러분 교회 나왔다고 구원받는 게 아니에요. 아무 관련이 없어요. 교회 나온 거 하고 여러분 구원 받는 거 하고. 그걸 내 자로 기쁜 소식이라 해요. 내가 무슨 짓을 해도 교회 나온 게 아니고 교회 안 나온 것도 관계없어요. 나오든 안 나오든 내 어떤 행위하고도 우리 구원하고 관계없습니다.

 

주님을 모든 인간은 붙어 있다고 떠나지 않는 게 아니에요. 붙어 있어도 떠난 거고요. 떠나 있어도 떠난 거예요. 주님께서 . 너 왜 안 가나?” 베드로가 영생의 말씀이 계심에 누가 떠나겠습니까?” 주님께서 영생의 말씀을, 니가 그런 소리 한다고 있는 게 아니고 아버지께서 내게 붙여주지 않으면 내게 올 수 없다. 나는 너희를 선택했는데 그 선택 중에 하나가 마귀니라.” 마귀를 포함해서 선택했다는 거예요. 마귀를 포함했다는 것은 나는 인간하고는 상대를 하지 않고 마귀와 상대한다는 겁니다. 마귀와 상대해서 주께서는 마귀의 선동에 의해서 결국 인간들이 예수님을 찌름으로써 창을 찌름으로써 비로소 영생이 가능한 예수님의 피와 예수님의 살이 거기서 마련되는 거예요.

 

그러면 예수님이 십자가 죽었지요. 그럼 먹고 마실 사람은 아무도 없지요. 그다음에 남은 절차는 뭡니까? 예수님이 하신 남은 절차는 아버지께서 내게 보내지 아니하면 아무도 내게 올 수가 없다고 했지요. 그래서 성령을 보내셔가지고 제자들로 하여금 내가 육적으로 살 수 있고 내가 육적으로 살아야 되고 죄인으로 살아야 될 이유가 이것마저도 예수님의 기억 속에는 필요한 기억 중에 하나라는 사실을 알아야 돼요. 구원받은 사람은 자기 기억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고 내 기억조차도 주님이 하시는 그 과정 프로세스 그 기억 속에 포함된 기억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겁니다. 모든 걸 포함해서 주께서는 살과 피를 생산하기 위해서 날 이용했다는 걸 알 때 활용했다는 걸 알 때 그게 바로 그 관계를 구원받은 관계라고 이야기하는 겁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하는 모든 것조차도 주께서 다 불필요한 게 아니라 주께서 필요한 일을 우리에게 일부러 일으켰다는 사실을 이제는 감사함으로 깨닫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