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순 2022. 10. 2. 13:34

음성

 

요나 선지자 221002

 

설교:이근호

녹취:정인순

 

오랜만에 왔기 때문에 책 처음부터 끝까지 안들은 사람 위해서 다 해야 되는가라는 생각이 듭니다마는 그럴 필요는 없고 오늘은 여러분 이 그림 자주 자주 이렇게 보여줍니다. 이 그림. 말도 안 되지요. 사람이 바다를 통과한다는 게, 학교에서 이런 거 홍해 바다 물고기 막 튀는 거 이런 거 봤어요. 같이. 못 봤죠. 그러니까 이게 성경 말씀을 이렇게 받아들이는 것은 미쳤거나 아니면 진짜 특이한 새롭게 새로운 피조물이거나 둘 중에 하나예요.

 

지난 시간에는 뭘 했느냐 하면은 다니엘 했지요. 다니엘이 하나님이 주신 지혜로 하니까 다른 사람이 남 잘 되는 걸 못 봐가지고 모함해서 사자굴에다가 집어넣었는데 사자들이 다 같이 합죽이가 됩시다. !” 해가지고 입을 벌리지 않으니까 잡아먹을 수가 있어야지요. 그래서 사람들이 이 사자가 이게 뭔가 병 들었나 싶어서 다른 사람을 집어넣었더니만 기다렸다는 듯이 굶었는데 이제 양식이 들어오니까 아주 사정없이 다니엘을 모함했던 자들을 자기들이 다니엘을 죽이려고 파놓은 그 함정에 그들이 다 찢겨서 물려 죽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뭐 다니엘한테 돈 한 푼 얻은 것 그런 건 없고요. 아 참 하나님 무섭구나. 아 정말 하나님은 항상 하나님 입장에서만 생각해서 일하시는구나, 그걸 확인했을 뿐이죠.

 

오늘은 뭐냐 하면 요나, 이 요나라는 사람은 선지자입니다. 어떤 사람이냐? 이스라엘 선지자예요. 이스라엘 선지자의 특징은 오직 이스라엘만이 왜 구원이 되어야 되는가, 그걸 증명하는 사람이 선지자 이스라엘 선지자예요. 왜 이스라엘은 다른 나라와 다른가? 이스라엘이 다른 점은 뭐냐 하면 이스라엘은 위에서 보는 거거든요. 이스라엘을 관리하는 자가 이스라엘 내부에 지도자가 관리하는 게 아니고 이스라엘 말고 그 위에서 보시는 분이 이스라엘을 관리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걸 출애굽기 194절에서는 이게 뭐냐?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이끌었다. 독수리 날개. 독수리가 하늘에서 날지요? 그러면 독수리 날개로 본다는 것은 관점이 어떤 관점이냐 하면 아래서 위를 쳐다보는 관점이 아니고 위에서 내려다보는 관점으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이끌고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스라엘 사람들이 만약에 적들과 싸울 때 적들이 막 덩치도 크고 우람하고 이래가지고 이건 뭐 게임도 안 되겠네 우리 지겠네, 라고 좌절하거나 절망하면 안 돼요. 왜냐하면 위에서 보는 관점으로 보게 되면 일부러 큰 덩치 큰 것과 일부러 붙여 나와요. 일부러 붙여 놔가지고 덩치 큰 걸 겁내지 말고 쫄지 말라고 그렇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끄시는 거예요.

 

여러분들도 학교에서 또 한 등치 되니까 일부러 등치 큰 애가 또 와서 시비 거는 경우가 있는데 아예 작은 아이는 큰 아이가 안 건드리잖아요. 덩치 큰 아이 같으면 크게 한번 건드려보라고 하잖아요. 위에서 바라볼 때는 의도적으로 인간의 힘센 민족을 만들었습니다. 이것은 너희들이 보기에 이스라엘로 하여금 자체적인 힘으로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계속해서 심화시키기 위해서 내 힘으로는 갈 수 없는 나라가 천국이다. 이걸 계속 강조하기 위해서 일부러 불가능함 불가능함 이거는 안 돼. 이거는 있을 수 없어. 그런 사태를 계속해서 맞춰서 만나도록 만들지요. 그게 이스라엘이란 말이죠.

 

그 이스라엘이 요나 선지자가 있을 때는 이스라엘이 최고의 나라가 되었어요. 다른 나라들이 전쟁한다고 바빠가지고 이스라엘을 거들떠 보지도 않았어요. 이 틈에 이스라엘이 영토를 넓혔습니다. 그래서 북쪽 이스라엘의 여로보암 2세의 나라의 영토가 솔로몬보다 그때보다 더 넓었던 최고의 영토가 많았던 넉넉하게 살림살이가 넉넉한 대국을 이루었던 나라가 이스라엘이었어요. 이게 자기가 강한 자와 붙어야 되는데 그 강한 자가 자기보다 강한 자가 없을 때는 자만에 빠졌거든요. 자만에 빠졌으니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다른 식으로 계속해서 위에 있는 위의 관점을 유지하기 위해서 이스라엘로 하여금 오히려 망하게 만드는 방식으로 선지자 요나를 이스라엘에서 다른 나라로 가게 만들었어요.

 

요나 선지자가 넉넉한 나라의 선지자라서 뭐 월급도 많이 나오겠다. 아쉬운 게 없으니까 나 안 합니다. 남의 나라 망하는 거 내가 왜 갑니까? 나는 이스라엘 선지자지 남은 나라 걱정 안 합니다 하고 도망쳤다 말이죠. 내뺐다 이 말이죠. 어디로 내뺐느냐? 가장 이스라엘에서 가장 거리가 먼 지금의 스페인 쪽으로 다시스로 내뺐거든요. 배를 탔는데 이 배가 다시스로 가줬으면 좋겠는데 중간에 고장 나버렸어요. 풍랑이 일어나가지고 배가 파손에 이르기 직전에 있었습니다.

 

그때 요나가 자기 뜻대로 하나님께서 뜻대로 자기가 안 된다는 것을 알았어요. 이게 뭐냐 하면 하나님이 선지자로 하여금 네가 내 권력 밖에서 내 지배 망 바깥에서는 절대로 너는 벗어날 수 없다. 끝까지 선지자 노력을 해야 된다는 그런 원칙 때문에 선지자가 도망쳐도 도망칠 수가 없었습니다. 선지 알았죠. 자기 때문에 애궂은 다른 사람들이 같이 배에 같이 죽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았어요.

 

이때 요나 선지자가 어떻게 하느냐? 나 하나만 희생하면 되지. 내가 잘못했으니까 하고 자기 하나 희생하고 다른 사람 살리기 위해서 자진해서 자기를 배에서 집어 던져라. 희생물로 던져라. 심청이가 아버지 살리기 위해서 자진해서 자기 몸을 바다에 빠뜨린 것처럼 그냥 몸을 그냥 던졌어요. 참 무모하기 짝이 없는 거죠.

 

그럼 물에 빠지면 그 물에 누가 기다리고 있습니까? H2O가 기다리고 있죠. H2O가 살려줍니까? 안 살려주잖아요. 그러니까 이 말이 결국 자기는 인생을 끝난 걸로 여겼어요. 끝났어. 끝났다고 여겼어요. 요나를 하나님께서는 제물로 해서 다시 풍랑이 잔잔해지고 다른 사람은 다른 사람이 괜히 요나한테 미안해하고 이랬어요. 미안해. 미안해. 친구 미안해. 우리 살아야 해. 할 수 없어. 미안해 하면서 발 가지고 어떻게 해가지고 바다 속에 집어넣어서 미안해. 하고 가자. 가자. 빨리 우리 집에 가자. 하나 죽였습니다. 이것도 바로 요나의 표적이라는 게 이런 거예요.

요나의 표적이 바로 예수님의 표적입니다. 내 하나 죽어서 너희가 산다는 거. 이걸 요나가 미리 요나는 그런 거 몰랐죠. 미리 앞서서 자기 신세타령하면서 빠졌죠. 빠졌는데 이게 풍랑이 일어 가지고 배에서 어찌할지 몰라 했을 때에 여기 요나를 집어넣는 그 장면입니다. 번개 치는 거 보세요. 지지직 치잖아요. 번개 치고 빠졌는데 여기서 이제 요나는 죽었어요. 인간은 인간의 아는 상식으로서는 인간은 죽으면 끝이에요.

 

그런데 여기에 무슨 이런 거대한 고기 혹등고래 혹등고래 우영우에 나오지요? 이렇게 하는 거. 거꾸로 해도 우영우 바로 해도 우영우, 고래가 등장해가지고 이 고래가 나이스 캐치. 떨어진 요나가 물속에 빠진 걸 알고 요나에게 급파해서 요나를 자기 요나를 삼켰습니다. 요나도 본인 생각에 진짜 내가 재수 없는 인간이다. 그냥 곱게 물에 빠져서 숨 막혀 죽을 수도 있는데 이제는 그걸로 모자라서 이제는 고래한테 죽는 씹혀 죽는 아주 잔인한 죽음을 맞이까지 해야 되느냐 이렇게 생각하고, 이제 죽었는 거 하고 냄새 나니까 하여튼 이렇게 잡내 나니까 코 하고 요나가 뱃속에 들어갔죠.

 

고래가 얼마나 큰지 어떤 거는 20톤이 넘는답니다. 20. 흰 수염 고래인가 제일 큰 고래가 20톤에 넘어요. 고래에 이제 빠져 있었습니다. 빠져 있는데 요나가 지금 어디에 빠졌냐? 처음에 물에 빠진 곳이 뭐냐 하면 지금의 리비아 바다 앞바다 그쪽에요. 그런데 니느웨로 가려면 지금의 베이루트 근처 레바논 그쪽으로 다시 육지로 돌아와야 돼요. 수백 킬로가 넘어요. 수백 킬로가 뭡니까? 수천 킬로가 돼. 그 배를 고래가 개인택시도 아니고요. 신나게 헤엄쳐가지고 육지에다가 퉷 하고 나니까 요나의 고래의 힘 센 배출감에 의해서 요나가 육지에 턱 하고 해변가에 도달했어요.

 

돌아와 버렸어요. 돌아왔다 이 말이죠. 돌아오고 난 뒤에 보니까 가장 가까운 니느웨와 가장 가까운 바다에 도달했어요. 그래서 요나가 참 하나님도 나는 이스라엘 선지자지 이스라엘한테 잔소리하는 사람이지 어떻게 이방나라한테 그렇게 할 수가 있는가? 아직도 납득이 안 돼. 어쨌든 간에 살았으니까 시킨 대로 해야지. 해가지고 니느웨 사람들에게 앞으로 40일 지나면 당신 나는 끝입니다. “사는 방법은요?” “사는 방법은 없습니다. 사는 방법은 어제 끝났어요. 끝났으니까 나는 모르겠고 나는 당신들 멸망하는 구경할 거야. 나 저 높은 데 가서 구경할 거야. 팔짱 끼고.” 갔어요.

 

가고 저희들끼리 회의해가지고 결정한 게 뭐냐? “우리 끝났대. 임금님. 끝날 때 끝나더라도 우리 잘못됐다고 이야기하고 끝냅시다.” “그럴까?” 해가지고 모든 국민들이 한 마음이 되어가지고 심지어 가축들은 무슨 죄가 있습니까? 개 사료까지 안 줬어요. 개 사료 소까지 사료 안 주고요. 가축 다 하고 내가 죽는 바람에 개가 키운들 뭔 소용있겠어요. 개도 먹을 거 안 주고 소도 안 주고 다 같이 금식 다 시켰어요. 다 시켜가지고 이제 요나는 죽을 것만 딱 기다렸는데 40일 되어서 삼십구일 3923시간 드디어 554321초 완전 우주선에 올리는 것처럼 이렇게 카운트해도 아무 일 없었어요.

 

그때 요나는 자존심이 너무 상해서 나 이런 식으로 난 더는 동업 못 한다 해가지고 차라리 죽여 달라고 이야기했지요. 죽여 달라 할 때 하나님이 왜 살려줍니까라고 할 때 하나님 말씀이 그들 죽어야 될 그들을 살려주는 게 그렇게 기분 나쁘냐?” “그러면 너희 백성은? 너희 이스라엘은 죽을 백성 아니야? 왜 자기는 당연히 살 생각하고 저쪽은 죽을 사람이고 니는 나는 마땅히 살 사람이고, 어디 말도 안 되는 그런 차별이 있느냐? 내가 이스라엘에게 은혜 준 것은 선지자 준 것은 진짜 너의 원래 모습을 너가 잊어버렸다. 죽어도 마땅함을 내가 백성들에게 했는데 그 사실 잊어버렸으니까 다른 나라를 간접적으로 우회해 가지고 다른 나라 니 보기에는 죽어 마땅하지? . 죽어 마땅합니다. 똑같애. 너도 똑같애. 뭐 누구누구 더 나은 거 없어. 똑같은 인간인데 내가 너를 이 하나님을 알기 위해서 너를 살려줬잖아. 가서 전해라. 니 경험한 거. 예 하고 전한 거. 그게 바로 자기 나라를 자기를 지칭할 때 이스라엘이 너무나 잘 먹고 잘 살기 때문에 이게 당연하게 잘 먹고 잘 사는 걸로 그렇게 여기는 것을 생각할 때 우리는 십자가를 생각해 보세요.

 

주께서 고난 받는 거, 당연히 우리가 받아야 될 고난을 대신 받는다는 것은 우리가 이 모든 여유는 그냥 선물이고 그냥 공짜로 주신 은혜인 것을 항상 생각하고 잊지 맙시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 자신을 십자가를 통해서 알기를 원합니다. 당연한 게 없이 내가 잘나서 받은 것이 아니라 값없이 주는 은혜가 계속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