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이웃 / 220102
참된 이웃 220102
설교:이근호
녹취:정인순
오늘은 진짜 이웃에 대해서, 제목이 그렇게 되어 있지요. 선한 사마리아인 이야기로 또 유명해졌는데 누가복음 10장에 나온 이야기입니다. 어떤 사람이 길을 가다가 강도한테 맞았어요. 강도가 자기 원하는 것을 갖기 위해서 그 사람을 때려서 그 강도는 죽은 줄 알았죠. 그냥 때려 죽여버렸어요. 죽이고 그 사람이 갖고 있는 물건을 가져갑니다.
왜 그 사람에 대해서 원하는 관계도 없는데 왜 때리고 왜 그 물건을 가져갑니까? 그것부터 한번 생각해봐야 돼요. 왜 사람은 물건이 왜 필요하죠? 본인이 안 죽기 위해서 하는 거예요. 물건이 있어야 단백질 지방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이 있어야 살고 사람은 양식을 먹고 살고 그걸 살려면 돈이 있어야 되고 물건도 있어야 되고 자기가 살기 위해서, 살기 위해서 남의 것을 자기한테는 그게 없으니까 살 수가 없으니까 뺏는 거예요.
그래서 누가복음 십장에서 주께서 그 말씀을 끄집어내는 것은 인간이 살기 위해서 산다면 이건 에브리바디 누구나 강도입니다. 강도예요. 우리 어린 학생들은 착하게 살면 복 받겠지라고 생각하는데 이 세상에 딱 나오면 니가 살면 내가 죽고 내가 살면 내가 살기 위해서 니가 죽어야 돼. 그런 그러한 모자이크의 퍼즐 관계로만 맞물려 있어요. 혼자 섬에서 사는 게 아니에요. 남이 갖고 있는 자리에 침범해서 내 자리 만들지 않으면 그 자리에서 생산하는 내 생존의 방식 생존에 유리하게 작용하지 않습니다.
만약에 신이가 만약에 나중에 서울대학 들어갔다. 니 때문에 누구 던졌어. 니 때문에 누구 떨어졌다고요. 나중에 건희가 나중에 만약에 사법고시에 합격했다. 그때 사법고시가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지만 없어질 수도 있는데 니 때문에 누가 하나 판사 못 됐어. 세상은 남 좋아라고 해가지고 내가 못 살아요. 오랜만에 참 좋은 오랜만에 바른 이야기 지금 하고 있는 거예요. 제가 늘 바른 이야기 하고 있지만.
강도, 본인이 산다는 것 자체가 강도예요. 준강도예요. 준강도, 노골적은 아니지만 잠재적 강도예요. 산다는 게. 그러니까 만약에 그 강도 맞은 사람이 마동석이라면 강도 맞았겠어요? 마동석 알아요? 아는구나. 난 공부만 할 줄 알았지. 마동석이 강도 맞았겠습니까? 가진 힘이 없어서 강도 떼쓰리를 만나서 가진 거 다 빼앗긴 거예요.
그러니까 강도 입장에서는 그건 성공한 겁니다. 인생 성공한 거예요. 승리한 거예요. 예수님께서는 강도 만난 사람을 이야기하면서 강도 맞은 사람 강도, 강도 강도 둘을 주께선 둘을 무시해버립니다. 강도 맞은 사람 생각 안 하고 강도 니 나쁜 자라 생각 안 합니다. 그 틈, 틈에 그 사이에 여러분들 보기에 강도가 와서 강도 맞은 사람 생겼고 강도는 희희낙락 하면서 물건 가지고 도망쳤다. 그 사이에 틈이 있을까요, 없을까요? 아무 틈이 없어 보이죠. 그 틈에서 나타난 것이 뭐냐? 진짜 이웃이에요. 그 틈에서 이웃이 발생됩니다.
주님께서, 인간은 악마로부터 강도를 만났어요. 하나님이 원래 하나님의 형상이 있었는데 형상이 빼앗겨 버렸어요. 이게 없어졌어요. 악마는 강도고 우리는 강도 만난 사람입니다. 그러면 여기에 그 뿐이에요. 아무도 이거 끼어들 수 없고 그걸로 끝났어요. 강도가 우리를 속였어요. 악마가 우리를 속여가지고 우리는 속일임수에 넘어갔으면 이게 끝난 겁니다. 더는 우린 어떤 대안이라든지 희망이라는 게 없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누가 끼어드는가? 예수님 본인이 끼어들었어요. 그러면 예수님 본인이 끼어들려면 우리는 뭐가 되어야 하느냐 하면은 우리는 강도이면서도 강도 만날 사람의 그걸 양산하는 이 세상의 강도의 세계의 일부로서 우리는 여기 있어야 돼요. 때로는 우리가 강도 만난 사람일 수도 있고, 때로는 우리는 강도일 수가 있고.
만약에 여러분 로또 같은 거 그거는 신자는 로또 하면 안 돼요. 그런 거. 그런 도박하면 안 되죠. 하늘나라를 봐야지 땅의 보물을 얻으려고 할 필요 없어요. 그런데 만약에 로또를 한 게 아니고 그냥 바람에 날려 와가지고 얼굴에 딱 갖다 붙여가고 했는데 그게 일등 되가지고 이십억 됐다고 봅시다. 그러면 그 이십억 돈은 어디서 나왔습니까? 횡재를 바라는 푼돈들이 모아져서 이십억 된 거예요. 그러니까 이십억 안에는 내가 탄 일등 안에는 뭐냐? 남들의 돈을 내가 강탈한 겁니다. 그들의 욕망을 내가 강탈해서 내 혼자 욕망을 지금 즐기고 있는 거예요. 그걸 제로섬 게임이라고 하는 겁니다. 플러스 마이너스 어떤 것도 새는 거 없이 손해 본 자가 있기 때문에 이익을 본다는 원리예요. 이 경제 원리가.
우리는 경제에서 돈 벌라고 하는 말을 쉽게 하면 안 돼요. 뺏으라는 말과 똑같은 소리예요. 그러면 돈 안 벌면 되잖아. 돈 안 벌면 다 빼앗겨요. 바보도 아니고. 그러니까 우리가 잘 살기 위해서 열심히 취득하고 공부하고 노력하는 게 아니고 안 죽으려고 노력하는 거예요. 안 죽으려고. 최선 우리는 최악을 버리고 최선이 아니고, 악한 것 중에서 그것도 덜 악한 걸 덜 악하다는 생각을 하는 그 짓을 하고 있는 거예요.
우리는 안 죽으려고 일해요. 현재 초등학교 1학년한테 물어봐요. “니 장차 뭐 될래?” 딱 정답 나와 있어요. “집주인” “왜?” 하니까 “일 안 하고 돈 쓰면 되잖아요.” 그러니까 집주인이 되게 되면 일 안 해도 돈 써요. 인간의 희망은 지는 노동 안 하고 돈만 그냥 써재끼는 그게 희망이에요. 그거 되기 위해서 얼마나 강도질을 해야 되는 걸 모르고. 나는 착한 사람 될래. 이 땅에 착한 사람은 없고 안 죽으려고 애쓰는 사람이 있고, 욕심내는 사람이 있고, 안 죽으려고 애는 사람이 있고 그래요. 한 달 수입이 하루 수입이 20만 원이다. 그거 가지고 요새 물가 오르는데 그거 밥 못 먹고 삽니다. 이십만 원인데 어떤 사람은 이십만 원 가지고도 버틸 데까지 버틸 수 있다. 아침에 라면 저녁에 라면 하루 두 끼로 라면 때우면서 버텨보자. 버텨보자, 라고 있는 사람도 있을 거예요. 근데 한 달 수입이 이십억이다. 오십억 벌기 위해서 남을 뺏는 사람이 있어요. 유천대윤가 뭔가 그거 하는 사람이 있다니까요. 그러니까 어떤 인간이든 제일 최소 그냥 살려만 달라고 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살려달라고 빌 게 아니고 내가 나서서 살아야지 하는 순간 우리는 100% 강도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강도 만난 자도 강도고 강도도 강도고 인간 세계에서는 거기에 대해서 묻지를 않아요. 묻지 않고 “내가 왜 왔느냐? 너희들 둘 다 강도인데 내가 왜 왔겠어?”라고 묻는 게 뭐냐? “내가 이웃이야. 예수님 내가 이웃이야.” 그 이야기하려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거예요.
그러면 이웃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이웃이 아닌 자를 설명해야 되겠죠. 이웃이 아닌 자가 누구냐? 자기가 지금 직업이 뭐냐 하면 제사장이라. 그럼 제사 드려야 자기가 그게 직업이니까 남한테 욕 안 먹고 자기는 거기서 봉급 타고 사는데, 제사장이 가는데 자기 할 일을 하러 가는데 지금 놀러 가는 게 아니에요. 제사장 일을 하러 가는데 뭔가 강도 만난 사람이 누워 있어요. 이거는 뭐냐 하면 내 사는 거하고 직접 관련 없잖아요. 내 사는 거. 나는 직업이 있고 저 사람 직업이 강도 만났지만 저 사람이 죽는다고 해서 내 직업이 달아나고 그런 거 없다 이 말이죠. 그러나 혹시 관여했다가는 내 직장이 잘릴 수가 있어요. 그래서 제사장도 그냥 가버렸어요. 제사장 보좌한 사람이 레위인들입니다. 레위인도 그냥 갔어요.
근데 세 번째 사람, 세 번째 사람은 하나님하고 그 이스라엘을 믿는 여호와하고 아무 상관없는 사람이에요. 아무 상관없는 사람, 기존의 하나님 믿지 않는 사람, 기존에 하나님 보시기에 개 같은 존재라고 내친 사람 사마리아 사람 이방인이죠. 이방인. 그 이방인이 보고 그 강도 만난 사람을 보고 그 강도 만난 사람하고 자기 신세하고 똑같이 본 거예요. 그거는 너무나 그거는 머리가 뛰어난 게 아니고 너무나 당연한 거예요. 그런데 이 지옥 같은 세상에서 강도 맞는 순간에는 내가 피해자가 되고 내가 좀 여유 있다고 살려고 한 순간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알지도 못한 사이에 내가 인식하지 못한 사이에 나로 인하여 피해 본 사람이 한둘이 아닐 것이 분명하고, 그렇게 되거든요.
그러니까 그 강도 만난 사람, 그 사람이 내하고 자기 현재 입장과 똑같은 거예요. 그래서 나를 도와줬다고 생각하고 그 사람을 도와준 겁니다. 도와준 그 사람은 자기 입장 생각해서 도와주는 거예요. 니나 내나 똑같다고 도와준 거예요.
그리고 예수님이 이야기합니다. 이 사람 중에 누가, 그 세 사람 제사장 그냥 지나간 제사장 그냥 지나간 레위인 그냥 이렇게 도와줬던 그 사마리아인 셋 중에서 누가 그 강도 만난 사람의 이웃이 되겠느냐라고 물어요. 답변 딱 나오죠. 3번이죠. 정답은 거의 3번이에요. 모르거든 3번 찍으세요. 그게 마지막 정답입니다. 예수님이 이야기하고 예수님 자신이 이야기 하는 게 뭐냐 하면은 내가 너희들 벌해도 마찬가지고 지옥 보내도 마찬가지지만 주님의 아버지의 특별한 지시를 받아서 니가 당하는 이 땅에 당하는 그 신세를 내가 고스란히 나한테 넘겨받기 위해서 나는 강도 만난 자로 이 땅에 내가 왔다. 내가 십자가 죽을 때 사실은 니가 저주받아야 죽어야 돼. 니가 지은 죄를 죄값을 대신 그 처벌을 내가 처벌을 니한테 있지 않고 나한테 옮겨 놓기 위해서 내가 처벌 받으러 왔다. 나만이 진정한 이웃 사랑이다. 이것이 바로 율법에 보면 하나님 율법에 보면, ‘이웃을 내 몸 같이 사랑하라’라는 것을 이룰 사람은 이 예수님밖에 없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강도 만난 이야기를 하신 겁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 잘난 체 하지 말고 예수님께서 무슨 일을 하러 오셨는지를 알게 하옵소서. 살려고 지을 수밖에 없는 죄를 주께서 다 담당하셔서 진정으로 우리를 영생으로 살려주신 주님만 섬길 수 있는 저희들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