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으로 고발 210829
믿음으로 고발 210829
설교:이근호
녹취:정인순
그림을 보여드릴 텐데 이 그림인데 이것이 무슨 그림이냐? 군인들이 있지요. 군인이 뭐냐 하면 싸움 잘 하는 군인이에요. 전쟁할 때 적들이 오게 되면 적들은 나쁜 자이기 때문에 적을 죽여야 우리 국민들이 살기 때문에 우리 국민을 지키기 위해서 적들을 잡고 죽이고 하는 그러한 재주를 갖고 있는 무기를 갖고 있는 칼을 갖고 있는 무시무시한 군인, 군인인데 군인이라 하면 원래 하는 일이 딱 정해져 있어요.
뭐냐 하면 나를 지키기 위해서 적을 죽여야 된다는 이 정신 하나가 철두철미하게 있어줘야 군인 노릇을 하는 거예요. 사업하는 게 아니에요. 군인은 흥정하고 장사하는 게 아닙니다. 좋은 게 좋은 게 아니에요. 시키는 대로 하는 거예요.
그런데 군인인데 로마 군인이에요. 로마 군인은 얼마나 전쟁을 잘 하는지 로마가 그 당시에 주요 문명 지역을 거의 다 차지했다 이렇게 보면 됩니다. 로마 당시에 아프리카 사람도 있었겠지만 아프리카 사람은 오오오 밀림 속에서 자급자족한다고 바빠가지고 신경 못 쓰거든요.
로마 시대 때는 대부분이 문명은 로마한테 있었어요. 이 로마를 지키기 위해서 군인들은 지켰고 이 로마 군인들은 철저하게 명령에 따르고 명령에 시키는 대로 해야 될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로마 군인이, 중대장인데 백부장이니까 백 명의 부하를 통솔하는 지휘관이 백부장이잖아요. 백부장인데 예수님을 알게 된 거예요. 예수님을 알면서 뭘 생각했는가 하면 자기가 군인이라는 직업이 자기에게 영생을 주질 못한다는 사실을 발견한 겁니다. 내가 군인으로 명령대로 따른다고 해서 내가 천국 가는, 하나님을 섬기는 제대로 섬기는 사람일 수는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거예요.
자기 직업은 뭐냐? 그냥 밥이나 먹고 살기 위해서 하는 거예요. 밥이나 먹고 살기 위해서 일은 안 할 수 없지요. 일은 해야 되니까. 일을 하지만 내가 하는 이 일이 나의 전부가 될 수 없다는 겁니다. 사령부에서 이야기하는 대로 움직여야 되지요. 하지만 정작 내 마음은 나를 지배하는 마음은 다른 분이 나를 지배한다는 사실을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본인이 그걸 받아들인 거예요. 믿은 거예요.
믿어서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인 걸,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 그 자체인 것을 알게 되고 난 뒤에는 군대 생활 그냥 신나게 하는 거지요. 군대 생활 사표 내고 떠나는 게 아니고, 사표 내고 뭘 해도 마찬가지니까 자기 일에 충실하면서 항상 자기가 이렇게 군인으로 살아가는 것조차도 예수님에게 뜻이 있어서 예수님의 뜻이 있어서 내가 이렇게 살아간다는 것을 자기 자신은 알게 된 겁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자기가 믿음 있었는데 이 사람에게 종이 하나 있었는데 종이 죽게 되었어요. 종이 죽게 되었을 때에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지만 예수님 믿는데 자기 집안에 안 좋은 일이 생기면 그 때부터는 뭐냐 하면 예수님한테 부탁해가지고 예수님 우리 집에 오셔가지고 종들을 좀 낫게 해 달라 충분히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백부장도 종이 아팠을 때에 예수님한테 부탁해야겠다는 마음을 가졌어요. “예수님. 우리 종이 아픈데 예수님이 좀 낫게 해주실 수 있지 않습니까? 한번 봐 주세요.”라고 하면서 뭐라고 하느냐 하면 “예수님이 직접 올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말씀만 해도 됩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세상이라고 하는 것은 이 세상 모든 것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내 종이 아픈 것도 말씀에 따라서 아픈 것이고 내가 군인이 된 것도 말씀 따라 군인이 된 거고, 내가 예수님을 알게 된 것도 내 뜻이 아니고 예수님의 말씀의 내용이 담겼기 때문에 내가 예수님을 알게 되었고 따라서 내가 하는 것은 뭐냐 하면 예수님께서 나에게 지시와 명령만 하시면 됩니다. 저는 예수님을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나도 내 부하한테 이야기할 때는 내가 갈 필요가 없이 지시만 해도 부하가 따라 주는 것처럼 주님은 나의 대장이고 나는 주님의 지시 때문에 살게 된 사람이기 때문에 가라 하면 가고 오라 하면 오나이다이기 때문에 내 종 아픈 것도 주께서는 말씀만 하시면 됩니다.”라고 하니까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이 백부장한테 이야기하기를 “백부장아. 니가 믿음이 훌륭하구나.” 이렇게 이야기 하지 않고 그 백부장을 어디다가 비교를 하느냐 하면 소위 믿는다고 자부하는 사람들 있잖아요. 믿는다고 자부하는 사람들. 그 사람들 앞에 이야기합니다.
“너희들 소위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하나님 믿는다고 섬겼던 믿음의 최고 고수라는 너희들아. 이 이방 사람, 순순한 이방 사람의 순수한 믿음을 너희는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에 너희들은 천국을 차지한다 할지라도 그 천국에서 다 쫓겨날 것이다. 나와! 빨리 자리 비켜줘. 비켜줘! 왜? 너희들이 있을 곳이 아니야. 다 나가! 나가! 이 이방인 백부장이 너희들이 말하기를 지옥 간다는 그 백부장이 천국을 차지할 것이다.” 그렇게 주님이 이야기했어요.
그 말은 뭐냐 하면 주님께서 백부장에게 이 군인에게 믿음을 주신 것은 백부장을 구원함을 위함이 아니고 그 당시 사람들이 얼마나 거짓되고 잘못된 믿음을 갖고 있는지를 드러내기 위해서 이방인에게 예수님이 믿음을 주신 거예요.
진짜 믿는 자는 이처럼 자기 자신을 완전히 버리고 주님 소유로 자기 자신을 주님의 소유 된 대상으로 본 거예요. 주님이 주인이고 나는 따라 가면 된다는 거예요. 그게 얼마나 살기 편한 겁니까?
그 다음 이야기, 그래서 그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자랑했고요. 그 다음 이야기를 하나 더 하면 풍랑 이야기입니다. 배를 탔는데 배에 누가 타고 있느냐? 열두 명의 제자들이 타고 있어요. 열두 명 가운데 누가 있느냐? 바로 예수님도 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거기서 주무시는데 나머지 열두 제자는 되게 바쁘게 생겼어요.
왜냐하면 갑자기 그 바다에 풍랑이 일어나가지고 곧장 배를 덮칠 기세입니다. 바람 불지요 파도치지요. 사람들이 여기서 뭘 느끼는가? 죽음의 공포를 느낀 겁니다. 죽으면 되는데 문제는 죽으면 되는데 죽는 게 무섭다는 거예요. 이 말은 뭐냐? 안 죽어야 되겠다는 생각이 갑자기 강렬하게 밀려오는 겁니다. 안 죽어야 된다는 거예요. 나는 안 죽어야 된다는 거예요. 그래가지고 살기 위해서 자기의 본 모습을 드러내는 거예요. 난 평생에 살아오면서 이 제자들은 안 죽기 위해서 살아남기 위해서 열심히 열심히 노를 젓듯이 평생을 자기가 애쓰고 노력해왔던 겁니다.
그러니까 이들은 뭐냐? 예수님이 있으나 마나예요. 예수님이 있어도 자기 살기 위해서 노력했고 예수님이 없어도 자기 살기 위해서 노력했고. 그러면 예수 믿는 티가 어디서 납니까? 예수 믿는 게 아무 소용이 없어요. 믿었다고 하는데 전혀 믿은 게 아닙니다. 그냥 예수님 좀 이용해 보려고 하다가 실패로 끝난 거지요.
풍랑이 왔을 때, 예수 믿으려면 풍랑이 오더라도 예수님처럼 주무실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되거든요. 멀미나서 주무시겠어요? 그러지 못한 거예요.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풍랑을 일으키신 이유가 믿음 없는 전형적인 모습, 믿음 없는 자들은 바로 옆에 예수님이 있어도 있으나 마나하는 셈이 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그들의 자기의 본 모습 본색을 다 드러내게 하신 거예요.
그래서 그들은 노력을 다 합니다. 왜 처음부터 예수님을 안 깨웠느냐? 자기가 얼추 할 수 있는 것은 해보겠다는 거예요. 너무 예수님 힘들면 안 되고 우리끼리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는데 해보면 해볼수록 바다와 풍랑이 꼭 이 사람들을 놀리는 것 같아요. 바다와 풍랑한테 농락당하는 것 같아. “니가 우리를 이길 성 싶어? 풍랑아. 더 심하게 불자.” 배와 짝을 맞춰서 더 심하게 흔들었어요. 그러니까 그들은 드디어 뭘 포기했는가? 사는 걸 포기 했습니다. 사는 걸 포기하고 이왕 죽는 거 주님이나 깨워보자 해가지고 “주님. 우리가 죽겠나이다.” 우리가 죽겠나이다.
우리나라에서 유명한 강사가 있어요. 수학 강사인데 이름이 정성제라는 수학 강사가 있는데 그 정성제라는 사람은 학교 다닐 때부터 수학 선생님이 그 학과 마치게 되면 지가 수학 선생님인양 지가 강단에 올라가가지고 한 시간 동안 강의한 걸 지가 선생님 목소리 흉내 내가지고 지가 다 한 거예요. 애들은 수학 선생님 말 안 듣고 쉬는 시간을 기다렸어요. 그 정도로 걔는 수학에 대해서는 수학의 구세주, 수학의 메시아 기름부은 자.
그 사람이 하는 말이 있어요. 수학을 싫어한다는 것은 옳은 선생을 못 만나서 옳은 랍비를 못 만나서 그렇다는 거예요. 옳은 선생을 못 만나서 인간들이 수학을 못한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천국 못 가는 것도 훌륭한 선생님을 나 같은 선생님을 못 만나서 지옥 가는 간다는 거예요. 그 정도로 자부하는 거예요.
그 수학 강사, 그 강사가 하면서 수식을 쓰면서 방정식을 쓰면서 뭐라고 하겠어요? 죽겠나이다. 죽겠나이다. 2x+5=0 죽겠나이다. 모든 강의가 안에 뭐가 들어 있느냐? 죽겠나이다가 담겨있어요. 죽겠나이다. 니도 나중에 과외할 때 죽겠나이다, 이거 모르면 죽겠나이다. 이게 바로 인간의 본성입니다.
주님께서 나무랍니다. “이미 죽은 자만이 더 이상 죽지 않는다. 이미 죽은 자만이. 내가 함께 죽어줄게. 그러면 이제부터는 죽어도 괜찮게 되는, 내가 생명을 줄게.” 바로 이것 때문에 예수님이 오신 겁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예수님을 믿는 게 아니고 예수님이 우리를 찾아서 이끌어주신 그것이 믿음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죽겠나이다’에서 이제는 ‘죽어도 상관없는’ 사람으로 ‘이미 살았나이다’를 외칠 수 있는 저희들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