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순 2021. 8. 15. 13:49

말씀 기준 210815

 

음성

 

설교:이근호

녹취:정인순

 

오늘은, 지난 시간에는 병 고치는 예수님의 일을 주님께서 일을 하셨다면 오늘은 병 고치는 일 말고 말씀 전하시는 일을 주께서 하셨어요. 말씀을 전하시는데 예수님께서 원래 하나님의 율법 모든 말씀의 출제자입니다. 출제자는 문제를 낼 때는 목적이 뭐냐 하면 이 문제의 정답을 아는 쪽과 정답을 맞추지 못하는 쪽과 둘로 쪼개기 위해서 나누기 위해서 그렇게 하신 거예요.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신 이유는 창세기 3장 15절의 원리 때문에 그렇습니다. 여자의 후손과 뱀의 후손을 이미 주께서는 나누었어요. 이게 뭐냐 하면 바로 천국과 여자의 후손은 천국이고 뱀의 후손은 지옥입니다. 뱀의 후손인 자는 전부 다 지옥 가야 되고 여자의 후손은 천국 가야 돼요.

 

여자의 후손과 뱀의 후손을 나누는 결정권은 누구한테 있느냐 하면 하나님 자신에게 있어요. 피조물에게 인간에게는 어떤 결정권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인간은 선악과를 따먹었기 때문에 생명나무를, 선악과를 따먹었다 하는 그 순간 생명나무 열매는 빠이빠이입니다. 없어요.

 

두 개 다 못 먹어요. 두 개 다 먹을 과실이 아닙니다. 같이 먹을 수 있는 과실이 아니에요. 하나 먹었으면 하나는 포기해야 돼요. 그런데 인간의 대표자 되신 유일한데, 대표자를 잘 뽑아야 돼요. 유일한 대표 아담이 생명나무를 먹는 게 아니고 선악과를 먹는 그 순간 줄줄이 사탕 소시지 알지요. 소시지 사탕처럼 전부 다 죽으리라에 연속이 된 겁니다.

 

그렇게 되게 되면 문제는 뱀의 자손들밖에 없어요. 여자의 후손 천국 갈 사람은 아무도 없는 거예요. 아무도 없으면 주께서는 새로운 자기 백성을 새로 만들어야 되겠지요. 만드는 방식이 뭐냐? 첫 인간을 하나님께서 첫 인간을 만드실 때 하나님인데 하나님이 뭐로 오시느냐 하면 첫 번째 인간으로 이 땅에 오신 거예요.

 

하나님이시지만 첫 번째 인간으로 스타트 되는 모델로서 이 땅에 오시는 거예요. 오실 때는 기존의 남자들은 신용이 없으니까 이제는 여자의 후손으로 오시는 겁니다. 여자의 후손으로. 여자의 후손으로 오게 되면 기존의 모든 인간들은 남자의 후손이거든요.

 

남자의 후손들이 뱀의 후손들이 여자의 후손이 나타났으니까 이건 다른 종류가 되어버리는 거예요. 다른 종류가 되니까 그 다른 종류에 대해서 그들이 가만있지 않고 모든 역량을 다해가지고 그 분을 제거해버리기 위해서 노력을 했어요.

 

여러분들이 동방박사를 한번 생각해보세요. 동방박사가 그렇게 수모를 당하는 것은 동방박사가 학교 때 문제를 쳐가지고 학폭 해가지고 대표팀에서 탈락하고 이것 때문에 동방박사가 문제 되는 게 아니고 동방박사는 그냥 방향이 ‘예수님 여기 있네.’ 이것 때문에 왔다고 그렇게 악마로부터 표적이 된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구원을 어떻게 받아라가 아니라, 구원 받는 사람은 어떤 기준에 의해서 내가 졸지에 천국에 가게 되었는가? 구원을 받게 되었는가? 그 이야기를 예수님께서는 말씀으로 하시는 거예요.

 

그렇다면 이야기가 복잡해져요. 지난번에 병 고쳤지요. 병 고침 받았다 구원받았다 이건 아니라는 거예요. 이건 공식이 아닌 거예요. 병 고쳤다고 천국 간다 이건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질문하기를 구약에서 나쁜 짓 하는 사람은 지옥 갑니까 하는데 나쁜 짓 하는 사람은 지옥 가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은 자기 역할에 충실했을 뿐이에요.

 

연극 할 때 끝나고 난 뒤에 연극 막 내리고 다 집에 가지 않아요. 막 내리고 있으면 관객들이 박수를 쳐요. 처음에 두덕두덕 이렇게 치지만 박수 많이 치면 착착 박자가 되어가지고 커튼 뒤를 향하여 그렇게 하게 되면 커튼 뒤에 있는 배우들이 하나 둘씩 다 연기 한다고 힘들었잖아요. 숨을 훅훅 쉬면서 땀 찔찔 흘리면서 앞에 나와요. 무대 앞에 나와요. 그걸 커튼콜이라고 합니다.

 

커튼 뒤에 있는 너 나와. 이렇게 되는 거예요. 커튼콜. 해가지고 마지막 인사를 해요. 뮤지컬 같은 경우에는 음악감독 있잖아요. 밑에 있기 때문에 밑에 있는 것도 손들고 이렇게 합니다. 인사를 다 하거든요. 그들은 나쁜 역할을 했을 뿐이고 어떤 사람은 좋은 역할을 했을 뿐이지 좋은 역할을 했다고 절대로 좋은 사람이 아닙니다.

 

요즘 이 점을 자꾸 놓치는 사람이 있어요. 나쁜 사람은 나쁠 수가 있고 좋은 사람은 원래 좋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아니고 나쁜 역할을 하는 사람이 좋을 수 있다 그건 인정을 하는데 사람들이 좋은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나쁘다 하는 것을 여러분들이 상상을 잘 안 하고 있어요.

 

원래 인상이 좋으니까 좋은 사람 없습니다. 역할 줬다고 전부 다 그 복장 그대로 하고 관객들에게 수고했다는 소리를 듣듯이 구약에 있는 사람들은 커튼콜 대상자들이에요. 전부 다. 전부 다 자기 역할 한 사람들이에요.

 

이제 신약에 오게 되면 그 역할도 끝나버리고 모조리 다 죄인들밖에 없어요. 죄인들밖에 없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그 기준, 이제는 어느 누구도 천국 갈 사람 아무도 없다는 기준을 주님께서는 말씀으로 하시는 거예요. 어디서 하는가? 산위에 올라가서 했습니다. 산위에 올라간다고 엘리베이터 산소통 메고 올라가는 게 아니고 가까운 야산에 올라가가지고 사람들 오라고 했어요.

 

이것은 뭐냐? 모세가 시내산에서 이야기를 내려오면서 하는 그것을 그대로 반복하고 있는 겁니다. 모세는 이야기를 이렇게 했지만, 모세는 예수님의 종이거든요. 모세는 이렇게 했지만 그것 다 잊어버리고 출제자 내가, 모세는 자기의 종이니까. 모세가 이렇게 이야기 했지만 이렇게 전달했지만 본인 내가 나는 너희에게 이렇게 최종적으로 이야기한다. 모든 말씀을 지키지 않으면 단 한사람도 천국에 못 간다. 못 간다. 딱 이야기했어요.

 

그러니까 여기 듣던 많은 사람들이 “와! 그러면 바리새인들은?” 이렇게 합니다.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잘 지킨다고 소문난, 평생 그것만 지키는 데 올인 한 모든 것을 다 투자한 바리새인은 어떻게 됩니까?” “바리새인도 못 간다.” 사람들은 “그러면 기준은 뭡니까?” “기준은 너희들 마음속에 있는 너희들도 관리가 안 되는 너희들 마음이 너희들의 기준이 된다. 누구든지 미워하는 자는 미워한다고 하지 말고 이제부터는 내가 바꾸겠다. 살인했다. 음욕을 품는 자는 그냥 마음만 품었다. 마음뿐이다. 이게 아니고 너는 실제로 간음했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니가 나쁜 짓 하면 반성하면 된다고 하는데 반성이고 뭐고 그 따위 소리 하지 마라. 니가 오른 눈이 범죄 하거든 그냥 빼라. 오른 팔이 범죄 하거든 텍사스 산 전기톱이 있거든요. 텍사스 전기톱으로 드르륵 해가지고 오른 팔을 잘라버려라. 그러면 나머지 왼 팔도 잘라버려라. 몸통 다 잘라버려라.” 엽기적 사건이 벌어질 판이에요. 전부 다. 온 몸 전부 다 다시 말해서 니 몸을 니가 모르고 있었다는 겁니다.

 

니가 옛날 율법을 니맘대로 해석 하니까 멀쩡한 게 지가 착해서 멀쩡한 줄 알고 있어요. 착해서 멀쩡한 게 아니고 그 몸 그대로 너를 너가 천국 가지 못 하는 몸인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그 몸을 만들었다. 내가 기준 말한다. 이 기준은 어느 누구도 이 기준을 따를 수 없다. 그 기준을 주님께서는 산상설교라고 해줍니다.

 

그것이 쫙 나와 있지요. 그러니까 십계명을 대체할 수 있는 말씀이에요. 십계명을. 왜냐하면 십계명은 우리 앞에 문자로서 이만큼 다가 왔지만 예수님의 말씀은 다가온 정도가 아니고 우리 속까지 집어넣어버려요.

 

그러면 예수님의 기준이 우리 안까지 쑥 들어와 버리면 우리는 어떤 사람이 되느냐 하면 바로 구약에서는 하나님께 저주 받은 사람은 문둥병은 저주받았다고 했거든요. 문둥병 들리면 치료 불가한 병에 걸린 것은 니가 저주 받았다는 하나님의 확정 때문에 니가 저주 받았다는 거예요.

 

그래서 산상설교 끝나고 난 뒤에 제일 먼저 구원 받은 모습을 보여준 자가 누구냐 하면 문둥병자입니다. 문둥병자는 자기가 행한 것을 아무것도 내세우지 않았어요. 그냥 뭐라고 하느냐 하면 “주님 저 알거든요. 저주 받는 게 마땅한 줄 알거든요. 그러니까 어떻게 좀 자비를 베푸시면 안 되겠습니까?” 이렇게 구원 받았어요. 문둥병자는.

 

주님 하신 말씀이 “그래. 니 고쳐줄 게.” 마태복음 8장에 나오는 말씀 니 고쳐줄게. 그 대신 니가 니 저주를 그냥 값없이 그냥 용서가 안 되고 내가 이렇게 저주에서 풀린 것은 누가 내 대신 희생을 대가를 치뤘기 때문에 풀렸다는 그 사실을 제사장에게 가서 니가 예물로 드리면서 말씀에 있는 예물을 드리면서 니가 통보해라. 예수님이란 분 때문에 내가 살았다는 사실. 그 예수님이 내 죄를 다 가져가실 분이라는 것을 니가 낫고 난 뒤에는 그들에게 이야기해라.

 

다시 말해서 예수님 자신, 모든 인간으로 하여금 어떤 인간도 행함으로 구원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경유해서 그걸 거쳐서 주께서 뿌리신 율법을 어디다 회수하느냐? 본인에게 다 회수해요. 본인에게 회수해버리면 거기에 뭐가 묻혀 있느냐 하면 이 뜻대로 살지 못 하는 자기 백성을 다녀왔던 말씀이기 때문에 이 말씀을 예수님 자신이 내뱉은 말씀을 예수님 자신이 지켜버리면 이것은 뭐냐? 그 말씀이 거쳐 와야 될 자기 백성들에게 그 결과가 다 완성했다는 결과가 주어져버리면 그들은 뭐가 되느냐? 죄사함이 되어버려요. 그 원리를 사용하시는 겁니다.

 

충분히 죽여서 충분히 살리시는 거예요. 살만큼 죽여주시는 것, 그래서 주께서는 마태복음 9장에서 나는 의인을 부르러온 게 아니고 죄인을 부르러왔다. 그 죄가 주께서는 이런 말씀 가지고 하십니다. 그 말씀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어요.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이니라. 나오거든요. 심령이 가난한 자는 천국이 저희 것이니라. 이런 말씀이 나온다 말이죠. 복 되도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 하늘나라가 저희의 것이다. 하늘나라는 가고 싶고 지 마음은 율법대로 못 살고 그러니까 우리가 누구냐 하면 저주 받아 마땅한 문둥병자, 그 자세로 주님 앞에 나오시면 되는 겁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저희들 우리 자신을 제대로 말씀을 통해서 알게 해주시고 왜 주님께서 십자가 피를 흘려야 되는지 그 이유까지 받아들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