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음의 아들 210131
없음의 아들 210131
설교:이근호
녹취:정인순
오늘은 사무엘이라는 사람, 이 사람은 원래 이 땅에 없었던 사람이었습니다. 누구나 사람은 없다가 생기지만 특별히 이 사람은 없다는 것이 강조되는 사람, 남들은 아버지 엄마 있으면 자동적으로 생기기 때문에 없다는 것을 강조하진 않아요. 아버지 어머니가 있었고 나는 그 딸이고 그 아들이고. 딸은 아무도 없구나. 아들만 있고. 나는 그 아들이다. 아버지 어머니 있었고 그 아들이다. 그 중간에 없다는 게 성립이 안 되는데 사무엘은 아버지 엄마 있었는데 나는 없었다. 이게 강조 돼요. 아버지 엄마 있는데 나는 없었다. 그러면 없었으면 니가 아버지 엄마에게서 안 태어나고 어디서 태어났는가?
나는 하나님에 의해서 태어났기 때문에 아버지 엄마 자식이 아니어야 한다는 겁니다. 아버지 엄마가 있어서 자동적으로 내가 있는 게 아니고 하나님이 계셨기 때문에 아빠 엄마는 좀 빠져줘. “아빠 엄마 내가 되는데 있어서 아빠 엄마는 별 도움이 안 돼. 빠져 줘.” 하는 식의 “나는 불임, 임신을 못 하는 여자로부터 엄마로부터 태어났습니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게 사무엘인데 사무엘이 왜 태어났느냐 하면 그 당시 하나님의 나라 이스라엘이 엉망이었어요. 지난 시간에 삼손 이야기했지요. 삼손 근육질 보세요. 삼손은 근육질로 힘이 있는 게 아니고, 어디에 힘이 있다고 했습니까? 머리카락에 힘이 있어요. 머리카락에.
어떤 아가씨가 무려 TV 틀어놓고 현장에서 10인분을 먹어요. 10인분을 먹는데 다 억지로 먹는 게 아니고 자연스럽게 10인분을 다 먹어요. 우리 보기에는 그 아가씨가 몸집이 크다고 생각하겠지만 몸무게가 45킬로 나갑니다. 먹방이에요. 먹방 유튜브에 보면 그런 게 많아요. 그런 식으로 돈 벌고 하는 사람이 많은데 몸집이 크다고 많이 먹는 게 아니고 빼빼 애볐는데 위가 잘 늘어나서 10인분 먹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삼손은 힘이 센 게 아니고 머리카락이라는 이 말은 뭐냐? 힘으로 이기려고 할 때 이스라엘은 이미 이스라엘이 아니다. 하나님의 약속에 의해서 이겨야지 힘으로 적을 이기려 하는 것은 그건 이스라엘이 아니다. 비록 적들은 이스라엘에 쳐들어올 때 힘으로 쳐들어왔다면 이스라엘은 힘으로 마주할 게 아니고 하나님의 약속 하나님의 의로움 가지고 버텨야 돼요.
무슨 뜻이냐 하면 세상 사람들은 자기 잘남으로 왔다면 이스라엘은 나의 못남으로 무기가, 나의 못남으로 “주여. 나같이 못났는데 이렇게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런 감사가 있어야 되는데 적들은 감사가 아니고 나 잘났다. 나 힘세다. 그것 가지고 싸우지요. 그런 시대에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주셨는데 사무엘은 아까도 이야기한 것처럼 아빠 엄마가 없는 상태에서 사무엘은 등장을 했습니다.
결국은 아빠 엄마가 속해 있는 이스라엘은 하나님 앞에 구원 될 자격도 없다는 겁니다. 이스라엘은 한번 당해보라는 거지요. 하지만 사무엘을 줬을 때는 사무엘을 통해서 새로운 이스라엘을 내가 만들어내겠다는 하나님의 의지가 있습니다.
그러면 사무엘을 처음 만들 때 여기에 한나가 있는데 한나라는 이름은 교회에 보면 아주머니한테 한나라는 이름 많아요. 그게 뭐냐 하면 옛날에 신앙적으로 살라고 한나라는 이름 많이 지었는데 이건 사실은 앞뒤가 안 맞는 얘기예요. 한나 되려면 애기 못 낳아야 돼요. 그 생각 못 한 거지요. 이름은 이름대로 운명대로 간다면 이건 끔찍한 이야기입니다. 결혼했는데 애 없다면 곤란하잖아요.
그래서 어쨌든 한나에게 적이 있는데 순풍 순풍 애기를 잘 낳은 사람이 있었어요. 엘가나라는 한나의 남자에게 여자가 두 명이었습니다. 브닌나라는 여자와 한나라는 여자가 둘이었는데 브닌나는 애기를 잘 낳았고 아들이 있었고 한나에게는 아들이 없어요. 아들도 없고 딸도 없고 애기를 못 낳지요.
그러니까 아들 있다는 건 힘이 있는 엄마예요. 힘을 가진 일종의 동서지요. 자기의 같은 동기가 애기 없다고 본처지만 한나는 없다고 굉장히 비난을 했어요. 그런데 남편은 누굴 사랑하느냐? 애기 없는 한나를 더 사랑했어요. 이게 동정인지 사랑인지 그건 모호합니다만 그래도 자기 본처라고 더 사랑했다 이 말이지요.
그래서 한나가 너무 분해가지고 애기 없는 여자라고 너무 구박을 받아가지고 하나님한테 따지기 위해서 갔습니다. 성전에 가서 기도를 했지요. 기도를 해가지고 “하나님, 저에게도 아들 주세요.” 라고 기도할 때에 여기 옆에 있는 복장 촌스럽진 않지만 멋있는 이 남자가 그 당시에 제사장입니다. 제사장도 한나한테 별 도움이 안 돼요. 그 나라 자체가 망할 나라이기 때문에 이렇게 하나님한테 인정받지 못한 나라의 제사장이든 사사든 아무 의미 없습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할 때 없음부터 아무것도 없다는 것부터 늘 새로 시작하는 거예요.
그래서 놀리죠. “니 기도할 때 술 먹었지?” 이렇게 놀리는데 “저는 술 먹은 게 아닙니다.” 하고 기도했는데 어쨌든 간에 한나가 임신을 하게 되어가지고 임신을 하고 난 뒤에 아들을 한나가 제대로 신앙 있는 사람이에요. “이것은 나의 복수가 아니고 진짜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이스라엘을 세우기 위해서 하나님의 계획이었습니다. 따라서 내 아들을 내 사적인 내 개인적인 집안의 아들로 삼지 아니하고 하나님 뜻하신 대로 쓰시옵소서.” 하고 사무엘을 하나님께 바쳐요.
“이것은 나의 응답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나님한테 응답이 이스라엘에게 담겨있기 때문에 사무엘이 가는 그 길은 하나님의 뜻만이 펼쳐질 것이기 때문에 나한테는 따로 사무엘은 필요치 않습니다.” 하고 드려버려요.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기특해가지고 한나에게 아들 셋 딸 둘을 다섯 명을 더 주되 다섯 명에다가 사무엘을 분리시켜요. 그러니 자식 다섯 명 되지요. 아까 한나보고 욕했던 브닌나는 아들 달랑 하나지요. 힘으로 5:1로 밀리는 겁니다. 그 뒤 이야기는 모르지만.
어쨌든 사무엘이 하나님 일을 하는데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느냐? 어린 사무엘 아무것도 모르는 사무엘인데 엘리 제사장과 딱 붙여요. 그러면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통해서 일할 것이냐, 아니면 엘리를 통해서, 현재 말하는 종교적인 직분을 통해서 제도를 통해서 일할 것이냐, 딱 1대1로 붙여가지고 보게 하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사무엘에게 이야기합니다. “사무엘아, 사무엘아!” 부르니까 아무것도 모르는 사무엘, 사무엘은 없음의 신호이기 때문에 자기 게 없어요. 그래서 엘리 할아버지가 부른 줄 알고 “제사장님, 저를 불렀지요?” “안 불렀는데. 니 자리에 가거라. 안 불렀다.” “예” 또 불러요. “사무엘아!” 목소리가 분명히 엘리 제사장 목소리예요. “불렀잖아요?” 하니까 “나 안 불렀다. 얘가 왜 잠을 깨우나? 안 불렀어.” 또 갔어요. 세 번째 “사무엘아!” 부르니까 갔습니다.
갈 때 엘리 제사장 이 늙은 제사장이 감이 있거든요. 나 잘렸구나. 나 잘리고 나의 모든 일은 어린 사무엘에게 인수인계해야 되겠구나. 넘어가는구나. 엘리 제사장이거든요. 제사장이 잘렸다, 잘렸다는 말은 이스라엘이 잘렸다는 말이에요. 기존의 이스라엘을 하나님께서 일체 인정하지 않는다. 뭘 인정하느냐? 없는 데서 태어난 사무엘을 통해서 새로운 이스라엘을 하나님께서 친히 만들어나가신다. 그런 뜻에서 사무엘을 부르게 한 거예요.
사무엘을 부르고 난 뒤에 엘리가 “사무엘아, 하나님께서 너한테 무슨 이야기 하드뇨?” 이렇게 하니까 “할아버지 집안이 작살난답니다.” “그래? 할 수 없지. 뭐. 하나님께서 작살내겠다는데 할 수 없지. 그래. 내 시대는 끝났다. 이제는 너의 시대가 열릴 것이다.” 그렇게 했거든요.
이 사무엘이 어떤 역할을 하느냐 하면 사무엘이 장차 새로운 이스라엘의 왕을 지목하는, 딱 정해주는 일을 해요. 그 사무엘이 정해주는 인물이 누구냐? 바로 다윗이라는 왕입니다. 그래서 다윗이 왕이고 다윗이 왕으로서 했던 그 일대로 오시는 분이 누구냐 하면 다윗의 자손 되시는 예수님이고 그 예수님 오심을 기쁜 소식, 복음이라고 얘기해요. 복음이라 하는 것은 다 기초가 있어요. 어떤 기초냐 하면 뭐냐 하면 이 땅에 있는 것들은 싹쓰리 인정하지 않고 없는 데서 새로 시작한 그 새로움 그 새로움이 새로운 나라 새로운 천국을 만든다, 그것을 사무엘을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는 겁니다.
그렇다면 여러분들이 하루하루 살아가면서 여러분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하겠어요? 여러분 속에서 날마다 새로움이 나와야 하겠지요. 그 새로움이 뭐냐 하면 과거에 내가 이만큼 잘 났다가 아니라 오늘 하나님께서 주시는 게 뭐냐? 오늘 하나님께서 그냥 값없이 주시는 게 뭐냐? 거저 주시는 게 뭐냐, 왜 주셨을까? 주님이 주셨음을 감사하라고 주셨구나. 그럴 때 이미 여러분들은 이미 천국을 안 가도 이미 천국에 들어온 사람으로서의 생활을 벌써 이미 시작 된 거예요. 죽어서 천국 가는 게 아닙니다. 살아있을 때 주님께 감사할 때 이미 천국은 시작 된 겁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주께서 하는 일이 인간의 일과 다르다는 것을 우리가 짐작을 했지만 실제로 이 땅에서 예수님 보내셔서 모든 것을 새롭게 시작할 줄을 우리가 미처 몰랐습니다. 이제는, 전에는 나로부터 시작했는데 하루하루 일상을 예수님부터 시작하는 그런 어린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