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나의 사명 200419
요나의 사명 200419 설교:이근호 녹취:정인순 오늘은 큰 물고기하고 만났던 그 일이 있었던 구약이야기입니다. 구약이라 하는 것은 예수님 오시기 전을 구약이라 하고 예수님 오시고 난 것을 신약이라고 합니다. 구약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옛날 약속을 구약, 신약이라는 것은 새로운 약속이라기보다는 그 옛날 약속을 다 실현 시켰다, 다 이루었다, 더 이상 인간이 손댈 것은 없다, 인간이 거기다가 더 추가할 것은 남아있지 않다, 그게 바로 신약의 복음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구약에 보면 그 옛날 약속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구원을 일방적으로 해주시는 것이지 인간이 나서서 설친다고 되는 게 아니라는 그런 이야기가 구약에도 있었어요. 구약에도 있을 때에 사람들은 태어나면서 자기의 본성이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내가 내 일은 내가 보태겠습니다, 하는 그러한 마음들이 있겠어요? 없겠어요? 다 들어있는 거예요. 아예 학교에서 시험을 치는데 사십 명 시험 치는데 일학년 때도 사십 명 중에 사십 등, 이학년에도 사십 명 중에 사십 등, 3학년에도 사십 등 같으면 걔는 제일 편해요. 왜냐하면 사십 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더 이상 뭘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어느 날 자기가 분명히 사십 등이라고 꼴찌라고 알고 있는데 전학 온 애가 걔가 사십 등 되고 내가 39등이 된다면 화가 나겠지요. 꼴찌 자리는 내 자리인데 니가 차고 들어왔다고 가만 두지를 않을 겁니다. 이처럼 사람들은 혼자 있을 때는 마치 굉장히 유유자적하지만 옆에 다른 사람하고 비교하고 경쟁한다면 인간은 눈에 불을 켜고 자기 뜻대로 자기 계획대로 추진하려고 노력을 하는 겁니다. 그 중에 한 사람이 뭐냐? 그 중에 많은 사람 중에 선지자가 그 중에 한 사람이에요. 원래 선지자는 그래서는 안 돼요. 원래 선지자는 하나님이 시키는 대로 “가라 하면 가고 오라 하면 오나이다.” 이렇게 해야 선지자인데 이 선지자가 하나님보다는 다른 사람들이 자기가 선지자라고 오냐 오냐 해주는 데 거기에 맛을 너무 들여 버렸어요. 그래가지고 선지자라고 대우해주니까 거기에 자기가 뭐가 된 양, 진짜 남보다 더 뛰어난 사람인 줄 알고 자기가 대단한 사람인 양 그렇게 여겼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자기가 선지자라고 대접을 해주니까 선지자가 교만해졌어요. 그 사람 이름이 요나 선지자입니다. 요나 선지자가 “나만 편하면 되지. 꼭 전해야 돼?”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선지자에게 “니는 가서 저 니느웨라는 곳을 가거라.” 니느웨라는 곳이 어디냐 하면 지금 이라크거든요. 예루살렘은 어디 있느냐? 지금 이스라엘이에요. 지금 이스라엘에서 이라크 쪽으로 가가지고 거기 니느웨라는 수도가 있는데 그 성에 가서 니가 거기에서 하나님께서 사십 일 지나면 하나님께서 불 심판 내린다, 그 이야기를 전하라고 하니까 귀찮은 거예요. 가기 싫고. 또 자기 나라 일도 아니고. 그래서 “예” 해놓고는 반대 방향이 어디인가 보니까 반대 방향이 스페인이에요. 그 당시에는 스페인이 없었지만,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탔습니다. 배를 타가지고 반대 방향으로 간 거예요. 요나가. 요나가 왜 그렇게 했느냐? 평소에는 뭐냐 하면 하나님도 중요하지만 내 불편한 건 자기가 싫어하는 거예요. 그래서 내 편한 대로 살겠다고 간 겁니다. 이게 아까 처음에 말씀드렸던,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신다고 할 때 왜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은혜를 주셔야 구원을 받는가? 인간은 자신이 그 만큼 자기 맘대로 살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을 요나 선지자를 통해서 그리고 북이스라엘을 통해서 지금 성경은 말하고 있는 거예요. 구약에도. 이런 인간도, 선지자라는 인간이 지 맘대로 살았다, 하물며 다른 사람이야 말 할 것도 없다, 지 맘대로 사는 인간 내가 은혜를 주어야 비로소 너희는 천국 백성 되는 거예요. 그러니 요나 이야기 들어보면 이게 남의 이야기가 아니고 우리 자신의 이야기입니다.
요나가 배를 탔으니까 자기 마음대로 계획을 딱 잡은 거예요. 배가 반대 방향으로 갔으니까 이제는 니느웨하고는 관계가 없겠지, 나는 편안히 휴가나 즐기자, 하고 갔는데 그 배를 하나님께서 강제로 막아서 버렸어요. 폭풍을 일으켜가지고 배를 침몰 직전까지 몰아넣었습니다. 몰아넣으니까 요나는 자기는 죽으면 죽자, 하고 있는데 다른 사람들이 요나를 가만두지 않고 “니 하나님 버리고 도망쳤지?” 하고 다그치는 거예요. “니가 믿는 하나님은 뭐냐? 빨리 이실직고해라. 니가 믿는 하나님을 피해서 도망쳤지? 그래서 니가 믿는 하나님이 노해서 단체로 우리가 이렇게 힘들게 되었다. 니 때문에 우리가 벌 받아도 되겠어?” 이런 식으로 다그치니까 그때사 하나님이 끝까지 따라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지독한 하나님. 그러니까 하나님은 요나를 방치하지 않고 요나가 가는 곳을 끝까지 따라 와가지고 기어이 멱살을 쥐고 매가지를 쥐고 기어이 하게 하시는 거예요. 그게 얼마나 큰 복입니까? 나는 안 하겠다는 것을 기어이 하게 만들어요. 요나가 그 때 한계에 이르렀구나, 못 빠져나온다는 것을 알고 “제가 바로 내가 믿는 여호와를 버리고 도망친 사람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쩌면 좋으냐?” “저를 죽이세요. 물속에 빠뜨려 죽이세요.” “그러면 안 되지요.” “그렇게 해주세요. 내가 하나 죽어야 여러분이 삽니다.” 그래서 물속에 빠져 들어갔습니다. 여기서 한국에 보면 심청전이라는 설화 생각이 나지요? 아버지 눈 고치겠다고 보이시피싱한테 걸려가지고 그 때 중국 사람한테 걸려가지고 비싼 쌀 날리고 아버지 눈은 뜨지도 못하고. 옛날이나 지금이나 사기꾼들이 있어요. 그래서 심청이처럼 몸 바쳐서 몸 바쳐서 해가지고 바닷물 속에 빠졌는데 요나도 빠졌어요. 빠져가지고 다른 사람들이 “아, 요나 하나님도 무섭긴 무섭구나. 선지자라도 죽여 버리는구나.” 요나 본인도 죽는다고 생각했지요. 죽는다고 생각했는데 보니까 큰 물고기가 있어가지고 물고기를 가지고 요나를 삼켜버렸습니다. 죽어야 되는데 죽지도 않고 어디를 가느냐? 죽음을 찐하게 맛보게 하는 거예요. 찐 찐 알지요? 죽음을 찐하게 찐하게 맛보게 하는 겁니다. 죽음이라는 것이, 하나님께 버림 받는다는 것이 이토록 충격적으로 아플 줄 몰랐다는 거예요. 죽으면서, 살려달라고 기도했지요. 살려주니까 주께서 조건이 있어요. 살려주는데 그냥 살려주는 게 아니에요. 물고기가 세상에 버스도 이런 버스가 없어. 딱 육지에 니느웨 성이 가장 가까운 거기에다가 톡 하고 토해버렸어요. 요나만. 그것도 요나만 토해가지고 그러니까 물고기가 누구 지시를 받느냐 하면 하나님의 지시를 받고 움직이는 거예요. 그러니까 인간보다 누가 더 우세하느냐? 받은 사명이 더 우세한 거예요.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살려주는 것은 여러분에게 주신 사명이 있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여러분 안경 썼다고 공부 잘한다고 그래서 살려주는 게 아니고 하나님께서 사명이 있기 때문에 살려주는 겁니다. 요나는 그 때부터 그 사명이 우선이고 요나는 뒤따라 갈 판이에요. 이제는 두 번 다시 사명 어기면 니는 죽어. 진짜 죽어. 그러니까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나와서 니느웨에 가가지고 구차없이, 하나님이 너무 무서웠으니까 외칠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사십 일간 전해야 되는데 그것도 귀찮아가지고, 우리하고 똑 같아. 귀찮아가지고 삼일 만에 후딱 전하고 “하나님 내 할 일 다 했습니데이. 나는 망하는 것만 보겠습니다.” 하고 산위에 올라가가지고 가장 방청석 중에서 뷰가 좋은, 멸망하는 모습을 가장 가까운 데서 볼 수 있는 멋진 산위에 올라가가지고 멸망하는 그 시점만, 그 땐 시계 없지만, 시계 보면서 있었어요. 그런데 분명히 멸망한다고 이야기해놓고 하나님께서 멸망을 안 시키는 거예요. 하나님께 받은 지시하고 자기 말이 거짓말쟁이가 되고 만 거예요. “하나님, 제가 거짓말쟁이가 되었습니다. 제가 선지자 노릇하면서 본의 아니게 거짓말한 셈이 되었는데 이건 일을 틀어지게 하신 건 내가 아닙니다. 분명히 하나님이 잘못 되었습니다. 나는 잘못 없습니다. 이런 하나님하고 나는 일 못하겠습니다. 차라리 내가 죽겠습니다.” 내가 부끄러워서 못 살겠다, 하고 스스로 자결하려고 했어요. 요나가. 하나님 뜻과 같아야 자기가 가오가 사는데 뜻하고 자기가 다르니까 하나님께서는 요나한테 하는 이야기가 이겁니다. “니느웨 사람들 봤지? 죽인다 하니까 진짜 죽음이 오는 줄 알고 그들이 회개했잖아. 금식 했잖아. 그러면 이미 죽은 거야. 이미 죽었다 하는 말대로 죽은 거야. 그런데 요나 너는 뭐고? 너무 나대잖아. 죽은 것을 전하기는 했지만 본인은 내가 죽었다는 사실을 인정 못하잖아. 이번에 니 차례야. 니가 한번 죽어봐라.” 해서 요나로 하여금 자살하려고 하는 것을 못하게 하시고 그 다음에 뜨거운 땡볕에 쬐여가지고 더워죽겠다고 난리예요. 더워서 못 살겠다고 난리예요. “그봐. 니가 더워서 못 살겠다고 그렇게 닦달내지? 그런데 니느웨 사람들은 내가 살려줬잖아. 죽은 데서 살려주는 이것이 바로 나의 은혜다. 그런데 너는 일단 살아놓고 내 보따리 내놓으라는 식으로 살만 해서 살았다고 우기잖아. 너라는 인간은 그런 게 아니야. 죽어도 되는데 살려준 거야.” 주님의 사명이 오늘날 우리를 살립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살고 싶어서 사는 것이 아니고 주님의 사명이 허락되어야 산다는 것을 새롭게 깨닫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