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순 2019. 9. 1. 13:36


예수님의 살과 피 190901


음성



설교:이근호

녹취:정인순



지난 시간에 한 것 잠시 다시 한 번 해보면 가룟 유다라는 사람이 있어요. 계란을 열두 개를 모아 놓았는데 남들 보기에는 다 똑같은 계란, 달걀이 좋은 달걀이에요. 그런데 하나가 썩은 불량 계란이 하나 들어있었어요. 그러면 그게 하나로 모아놓으니까 좋은 계란이라고 우겼던 것마저 불량 계란을 닮아가지고 다 같이 썩어버렸어요.


사과가 한 상자 있는데 나쁜 사과, 썩은 사과와 좋은 사과가 있거든. 좋은 사과가 나쁜 사과를 이길 수가 없습니다. 나쁜 멍든 사과 하나 때문에 그 상자 안에 들어있는 사과가 다 썩어버려요.


그게 왜 그러냐 하면 노골적으로 나쁜 것도 나쁜 것이지만 우리 내부에 그 나쁜 것과 통하는 게 있어요. 우리 인간 내부에. 그래서 겉으로는 주님에게 영광 찬양 감사 하지만 사실은 그 나쁜 것에 대해서 우리가 굉장히 끌리게 되어있어요. 인간은. 사람들은.


너는 나쁜 친구가 좋아? 좋은 친구가 좋아? 좋은 친구가 좋겠지요. 그런데 아주 좋은 친구는 싫어. 왜? 내가 나쁜 친구가 되기 때문에. 그래서 사람들은 아무리 바르게 살아도 언젠가는 소위 우리가 나쁘다고 하는 것에 이렇게 기울어지고 넘어가게 되어있어요.


그래서 이 말은 뭐냐 하면 열두 제자 가운데서도 자기 힘으로서 가룟 유다가 한 그 사태, 그 사항을 바꿀 수 있는 위인은 열두 제자에게 아무도 없었습니다. 이건 이 땅에 누가 승리하게 되어있는가? 승리를 악에게 넘겨주세요. 승리를. 승리를 조국한테, 이거 정치적 발언인데. 승리를 악에게 넘겨주세요. 그리고 우리는 어디 가느냐? 우리는 떠나야 돼요. 간단하지요.

우리 어린이들. 이 땅에서 선이 승리하고 착한 게 승리한다는 생각은 아예 하지 마세요. 그건 예수님을 퇴학시킨 나라에서는 예수님이 장학생이 아니고 퇴학시킨 나라에서는 희망이나 기대할 게 없습니다.


예수님이 어떻게 돌아가셨어요? 사람들한테 사랑받으면서 돌아가셨어요? 처참하게 돌아가셨습니까? 예수님이. 처참하게 돌아가셨어요. 그 정도로 우리 인간들이, 여러분 나를 비롯해서 인간들이 사는 세상은 보통 악한 나라가 아닙니다. 우리는 “괜찮네, 살만하네.” 하고 웃지만 실제로는 무시무시한 동네예요. 지옥입니다.


이 땅에서 성공하고 출세한 친구 있거든 너무 부러워하지 마세요. 이 땅에서 출세해서 법무부장관 되고 그런 거 너무 부러워하지 마시고. 이 땅에 백 날 해봐야 차라리 거지 나사로를 더 부러워하세요. 천국 갔습니다. 우리 어린이들한테 쓸 데 없는 꿈과 희망을 주지 않는 게, 중요한 거니까 잘 들으세요. 미국에 가도 쓸 데 없는 희망 낙관적인 것 하지 마세요. 세상은 아주 무시무시한 세상입니다. 올라가면 뒤에서 나무 흔들어버리죠.


그래서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팔아먹었다고 했지요. 그래서 가룟 유다가 실패했습니까? 성공했습니까? 가룟 유다가 성공했지요. 성공했기 때문에 예수님은 진짜로 죽었어요. 인간에게는 사람에게는 죽는 게 끝이에요. 죽으면 끝이에요. 죽으면 최종 승자와 최종 패자가 결정 나버렸어요. 왜? 죽었으니까. 백날 해도 죽은 거, 사형을 왜 시키느냐 하면 너는 영원한 패배자라는 뜻이에요. 죽어버렸으니까 더 이상 이 땅에서는 큰 소리 못 치겠지요.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예수님이 죽고 난 뒤에 실례지만 며칠 만에 살아났습니까? 죽고 난 뒤에 며칠 만에 살아났어요? 그런 건 아직 안 가르쳐줬구나. 삼일 만에 살아났어요. 삼일 만에. 분명히 우리가 이겼고 마귀가 이겼고 예수님은 진짜로 죽었는데 사흘 딱 되니까 “누구야? 누가 이긴 자야? 너야? 누가 이긴 자야?” 살아났지요. 무덤이 빈 무덤이 된 거예요.


세상의 모든 무덤들이 다 주인공이 있는데 예수님 무덤만이 주인이 없어요. 왜? 살아났기 때문에. 죽음에 묶여있을, 죽음에 질 이유가 없다 이 말이죠. 그래서 예수의 영을 받은 사람은 전부 다 예수님과 같이 죽음을 겁내지 않고 죽음에 묶일 사람들이 아니에요. 특이한 사람들이에요. 성도입니다.


가룟 유다는 성공했습니다. 예수님을 죽이는 데 성공했는데 부활하는 것은 막지 못 했어요. 마지막을 못 막았어요. 마지막을. 죽이기까지는 했는데 죽고 난 뒤에 사흘 만에 그걸 막아보려고 애썼는데 실패했습니다. 따라서 이 세상은 실패한 거예요.


예수님께서는 마지막에 혼자 구원받는 게 아니거든요.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모아놓고 예수님은 알고 제자들은 전혀 못 알아듣는 이야기를 하셨어요. 그게 무슨 얘기냐 하면 예수님께서 빵을 주셨어요. 여기 빵 하나 있었으면 참 좋겠는데 빵 없나? 빵을 하나 들고 “이건 너의 빵이 아니고 내 빵이다. 각자 빵 놔둬. 손 데지 마. 이제는 내가 먹여주는 빵, (이게 빵이라면) 빵을 줄게.” 너 빵 좋아하나? “빵을 줄게.” 그리고 이 빵을 뜯어서 하나씩 내 빵, 예수님의 빵을 그들에게 먹으라고 입에다 다 집어넣었어요.


그리고 예수님께서 포도주를 들고 “이건 내 잔이다. 너의 잔이 아니야. 내 잔이야. 내 잔인데 너희에게 나눠줄게. 이래서 우리는 공유한 거야. 내 잔 너희 잔, 내 살 곧 너희 살. 그리고 이 잔은 포도주로 보이냐? 장차 이건 피가 될 것이다. 내 피가 너희 속에 흐르게 될 것이다. 이게 바로 하나님의 약속이다. 생명을 주는 약속이다. 이것 외에는 없다.”


주님께서 식사를 했어요. 하니까 제자들이 그 말을 알아들었을까요? 못 알아들었을까요? 전혀 못 알아들었어요. “예수님. 지금 무슨 이야기하십니까? 우리 지금 저녁 식사 시간입니다. 식사시간에 우리 떡이나 먹고 맛있게 포도주나 먹읍시다. 이것 먹어야 살지 않습니까?”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떡 먹고 하는 거예요.


예수님이 주시니까 “야. 스승님께서 친히 떡을 주시고 스승님께서 친히 잔을 주시니 우리는 영광이다. 우린 선생님을 떠나지 않을 거예요. 이런 사랑을 주신 선생님을 우리가 미워하지 않을 거예요.” 이런 식으로 나온 거지요.


떠나지 않을 것, 좋아하네. 주님께서 그 당시에 통치자에게 붙잡히니까 그 다음부터는 제자들이 자기의 본심을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예수고 뭐고 누가 제일 중요한 문제예요? 주님이 중요하지 않고 누가 중요해요? 내가, 내 목숨 살리는 것이 중요하거든요. 그러니까 제자들은 지금 약속을 안 믿은 거예요. 약속은 뭐냐 하면 하나님의 생명이 약속인데 약속을 안 믿으니까 어느 생명이 최우선이냐 하면 내 목숨이 최우선 된 거예요. 내 목숨보다 하나님의 생명은 전혀 안 중요한 게 되어버렸어요. 이건 2순위, 3순위, 내 목숨이 최고라고 본 겁니다.


도망갔습니다. 도망가서 옛날 하던 직업, 고기 잡으러 갔어요.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다시 나타났습니다. 항상 예수님께서 그들을 건져줘야 돼요. 알아서 오는 법 없어요. 건져줘가지고 “베드로야. 니가 아직도 사랑하느냐?” 이렇게 하니까 베드로가 하는 말이 “내가 예수님을 사랑한다는 말을 차마 못 하겠습니다. 해봐야 소용없고, 주님이 저를 사랑했잖아요.” 이 말, 이게 약속을 아는 거예요. 내가 주님을 사랑한 거 그건 헛방이고, 소용없고, 주님이 나를 사랑했잖아요. 못난 나를, 도망 친 나를, 비겁한 나, 내뺀 나를 사랑했잖아요. 그게 약속이에요.


여러분들이 부모 싫어서 가출하게 되면 부모님이 여러분들을 찾을까요, 안 찾을까요? 니가 가출했다. 찾을까요? 안 찾을까요? 엄마가. 엄마가 찾을까요, 안 찾을까요? “내 아들아. 잘 갔다. 이제 내 아들 아니다.” 이렇게 할까요? “우리 아기 어디 있어?” 이렇게 찾을까요? 찾으면 엄마고 안 찾으면 엄마 아니고. 계모라. 가짜 엄마. 진짜 엄마 아빠는 찾지요. 여러분들은 여러분을 찾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여러분을 찾을 때 그냥 찾는 게 아니고 “너 나 버리고 도망갔잖아.” 그것을 이야기하면서 주님은 여러분을 사랑하느냐고 묻고 있는 겁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께서 저희를 찾아주시니 감사합니다. 내 힘으로 천당 가는 거 버리고 포기하고 주님의 사랑 안에 가두어져서 구원 받는 것을 감사케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