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1:5-6 / 자기의 아들들
에베소서 1:5-6 자기의 아들들 이근호 ‘거저 주시는 바’가 의도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아닌 자를 ‘하나님의 아들’되게 하시는 겁니다. 이는 ‘은혜 없이 아들 없다’가 됩니다. ‘은혜 안’에는 어떤 내용이 들어 있기에 ‘아들들’이 생겨나는 걸까요? 그것은 ‘은혜’란 예수님의 일에 의해서 만들어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만이 아버지 뜻을 압니다. 하나님의 뜻은 ‘예정’으로 완료되어 있습니다. ‘예정된 뜻’이 역사를 통해서 전개되는 겁니다. 이렇게 되면 역사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이 ‘아들들’ 만들기에 나선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소소한 일이라도 ‘아들들 만들기’가 무관한 것은 없습니다. 예수님의 은혜를 증명하기 위한 세상 흐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 세상에 ‘주님의 은혜’를 훼방하는 훼방꾼이 여전히 강력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즉 ‘은혜 주심’이 없이 스스로 ‘아들 되기’에 나서는 세력들이 있는 겁니다. 참으로 은혜 받은 자라면 ‘나의 하나님 아들되기’를 포기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주님의 은혜라는 것이 ‘십자가 사건의 반복’의 영향력으로 전달되기 때문입니다. 즉 ‘거저 주심’이 제대로 체험되려면 이 ‘거저 주심’과 방해가 되는 요소가 끊임없이 인간 내부에서 발산되게 됩니다. 주님의 은혜가 오게 되면, 왜 인간은 하나님에게 은혜를 요구할 입장이 아닌가가 병행해서 알게 됩니다. 은혜는 커녕 늘 은혜를 받지 못할 자라는 사실이 늘 발각되면서 은혜 작용에 모든 것을 맡기게 됩니다. ‘거저 주심’이 참으로 ‘거저 주심’ 그 자체로 드러나는 경우는 주님의 은혜가 인간에서 뿜어내는 온갖 방해를 극복하는 식으로 주어짐을 알 때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영광이 되는 경우입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는 은혜를 주시는 겁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자기 기쁨을 위해서입니다. 기뻐서 예정하시고 기뻐서 은혜주시는 겁니다. 그렇다면 그렇게 해서 발생되는 하나님의 아들되기는, 인간의 기쁨 이전에 주님의 기쁨의 작품이 됩니다. 따라서 성도는 자기 기쁨보다 주님의 이런 기쁨을 아는 안목을 지니게 됩니다. |
자기의 아들들 이근호 본문 말씀: 에베소서 1:5-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