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이 누구십니까? 170820
이웃이 누구십니까? 170820
설교: 이근호 녹취: 정인순
예수님께서 하신 이야기인데요, 예수님은 하늘에서 계시는 분인데 이 땅에 오셨어요. 땅에 올 때 하나님처럼 와버리면 사람들이 무서워서 다 도망가요. 그래서 이야기를 하려면 하나님이지만 사람하고 똑같이 사람의 모양으로 그렇게 오셨습니다. 사람이 되셔서 이 땅에 오신 거예요.
사람하고 같이 사니까 사람들은 그 분이 하나님인지 자기와 같은 사람인지 분간을 못했어요. “아, 저 사람은 우리하고 보통 사람일 거야. 밥 먹는 거 봐. 밥도 우리하고 똑 같은 밥 먹잖아. 잠도 주무시고 잠도 자네.” 그래서 “같은 사람인데 똑똑하니까 우린 이제 선생님이라 부르자.” 그래서 “랍비여, 선생님이여. 선생님이여.” 선생님이라 불렀어요. 하나님을 가지고 자기를 만드신 분을 가지고 “선생님, 선생님, 훌륭하신 선생님. 우리한테 한 수 가르쳐 주세요.” 이렇게 한 겁니다.
그렇게 선생님으로 따르다가 하루는 바다에 풍랑이 막 치는 거예요. 그 바다에 마침 배를 타고 가고 있었는데 풍랑이 너무 쳐가지고 배가 뒤집어지려고 해요. 배가 막 뒤집어지려고 한 거예요. 그래서 사람들은, 제자들은 물 퍼내고 이렇게 했는데 그래도 배가 막 뒤집어지려고 한 거예요.
그럴 때 “예수님, 죽겠다. 예수님 깨워서 빨리 조치하자.” 그래서 예수님 깨웠을 때에 예수님께서 물바가지로 물을 퍼낸 게 아니고 “바다야, 바다 왜 까불어! 바다, 조용히 해. 조용해.” 이러니까 바다 물결이 H2O라 하는 거예요. H2O, 물. 화학식으로, 방정식으로 H2O가 ”예“ 갑자기 바다가 잠잠해졌어요. 그러니까 사람들이 바다보고 놀란 것이 아니고 누구보고 놀랐느냐 하면 ”누구십니까? 너! 누구지, 너? 그냥 선생님 아니네. 왜 바다도 저렇게 조용하게 있지? 지금 우리가 누구하고 같이 지내는 거지?” 하고 깜짝 놀라고 말았어요. 그래도 그래놓고도 돌아서면 다 잊어버리고.
이렇게 해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실 때 사람들은 자꾸 헷갈리는 거예요. 보통 똑똑하신 선생님인지 아니면 하나님인지, 제자들은 헷갈려했는데 다른 사람들은 그런 거 무시하고 그냥 사람이라고 한 거예요.
그런데 예수님을 싫어하는 사람들 중에서 자기 딴에 하나님 말씀 잘 지켰다고 우등생이라고 우기는 사람이 있었어요. 그 사람이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당신이 많이 아나, 내가 많이 아나 한 번 붙어보자 해가지고 “예수님, 성경 말씀이 있는데 성경 말씀 중에서 어느 게 제일 중요합니까?” 하고 물었어요. 하니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 하니까 그 사람이 “우리하고 생각이 같네. 맞췄네. 그런데 한 가지 더 물어봅시다. 이웃을 사랑하라고 했는데 그 이웃이 누굽니까?” 이렇게 물었어요.
그러니까 그때부터 예수님이 이야기가 길어졌어요. “니가 이웃이 누군지 궁금한 모양인데. 내가 이웃을 설명하지”라고 설명하면서 한 이야기가 어떤 사람이 길을 가는데 강도를 당해가지고 있는 걸 몽땅 빼앗기고 또 강도한테 보복이 두렵다고 강도가 패가지고 거의 죽을 뻔 했어요. 이제는 시간만 조금 지나가면 골든타임 지나가면 이제는 곧 이 사람이 죽을 판이에요. 죽을 판인데 그때 저 멀리서 따그닥 따그닥 말 타고 오든지 걷든지 누가 온다 말이죠.
보니까 누구냐 하면 제사장이에요. 제사장은 요새 같으면 목사님입니다. 목사님은 예배를 드려야 돼요. 지금 시간이 11시인데 벌써 10시 40분, 20분밖에 안 남았어요. 보니까 빨리 가야되는데 여기 어떤 사람이 아파 누워있거든. ‘하나님이 알아서 하시겠지. 나는 예배드리는 게 중요하기 때문에 예배드리러 가야지.’ 하고 ‘아저씨. 미안. I'm sorry.’ 하고 지나갔어요. 그러니까 듣고 있는 사람이 ‘누가 이웃인가?’ 분명히 옆에 근처 이웃이 지나갔는데 아픈 사람을 건너갔는데 지나가면서 돌보지 않았어요.
그 다음에 보니까 레위 지파가 지나갔어요. 레위 지파라 하는 사람은 요새 말로 하면 집사예요. 교회 예배드리는 데 필요한 집사가 있는데 집사가 지나갔는데 ‘아휴, 저 사람 많이 아프네. 내가 도와줘야 될 텐데. 나는 바쁘잖아. 나는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는 하나님이 지켜보기 때문에 나는 사람 일 안 해.’ 하고 그냥 지나갔어요. 이 사람은 ‘Help me. Help me!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미안. I'm sorry.’ 하고 지나갔어요.
세 번째 사람인데 세 번째 사람은 남들한테 밉상 받는 사마리아, 이 사람이 지나가는 거예요. 이 사람은 평소에 하나님 안 믿는다고 욕 많이 얻어먹은, 제대로 안 믿는다고 욕 많이 얻어먹은 사람인데 지나갔어요. 지나가다 보니까 아파 누워있거든요. ‘아, 어쩌나. 왜 아픈 사람이 있지.’ ‘살려주세요.’ ‘살려주고말고요. 가만있어보자.’ 해가지고 그 사람을 자기의 나귀에 실어가지고 요새 말로 하면 병원에 가서 보호자로 갔고 그 사람에 대한 모든 수술비용 그 사람의 모든 입원비용을 자기 돈으로 다 내어가지고 다 비용을 갚아줬습니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자, 1번, 2번, 3번. 이 병든 사람에게 있어서 누가 진정한 이웃입니까? 1번 목사님, 2번 집사님, 3번 지나가는 도와준 사람. 몇 번입니까?” 정답은 하나뿐입니다. 유감스럽게도. “몇 번입니까?”라고 하니까 사람들은 그 이야기가 무슨 뜻인지 알아듣고 “3번요. 자비를 베푼 사람, 자비를 베푼 사람입니다.“라고 했거든요.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자비를 베푼다. 자비를 베푼 사람, 그 사람이 바로 여러분의 이웃입니다.”라고 이야기했어요. 그러니까 제자들한테 그 이야기할 때 제자들이나 묻는 사람들이 “저게 무슨 뜻이지? 우리 중에 아픈 사람 있는가? 없는데, 있지도 않은데 왜 아픈 사람 이야기하지?” 그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사실 여기 강도 만난 사람은 누굴 이야기하느냐 하면 자기 힘으로 도저히 일어설 수 없는 사람, 자기 힘으로 천국 갈 수 없는 사람, 자기 힘으로 구원 받을 수 없는 사람, 바로 누구냐 하면 여러분들, 여러분들. 여러분들이 자기 힘으로 일어설 수가 없어요. 하나님께서 일부러 여러분들로 하여금 자기 힘으로 구원받지 못하도록 죄에 뒤집어쓰도록 만들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태어날 때부터 너는 죄를 안고 태어난 거예요. 태민아. 혹시 너 죄 지은 기억이 있나? 나는 이게 죄란 생각이 드나? 이건 나쁜 짓이라는 생각이 들어? 그런 게 없어? 자기 의를 챙기는 것 봐라. 그런 것 앞으로 생각나더라도 그건 아무것도 아니야. 계속해서, 계속해서 계속 나쁜 짓이 생겨 날 거예요. 왜? 처음부터 우리는 죄 속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나쁜 짓 하는 것이 정상이야. 오늘 애들한테 좋은 것 가르친다마는. 나쁜 짓 할 때 “아하, 내가 이렇게 나쁜 인간이구나. 나 어떡하지? 이거 다음에 또 저지를 텐데.”
예수님께서는 바로 자기 힘으로 구원될 수 없는 아이들을, 여러분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모든 말씀 이웃을 내 몸 같이 사랑하라는 그 말씀을 예수님 혼자 지키는 거예요. 혼자. 우리는 사랑하라는 것을 위해서 어떤 역할을 맡느냐 하면 우리는 병들어서 강도한테 얻어맞는 역할을 하는 거예요. 죄 지으면서도 그 죄를 어떻게 처리할 수 없는 그런 역할, 회개해놓고도 또 다시 다른 죄를 또 동원시키는 역할, 그것을 우리가 하고 그 다음에 용서는 누가 하지요? 용서는 바로 사람들에게 밉상 받는, 아무 관심도 두지 않는 예수님이, 선한 사마리아 사람으로 오신 거예요.
따라서 이웃을 네 몸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은 누가 지킬 수 있느냐? 예수님께서 이미 우리에게 우리를 가지고 이 말씀을 다 지킨 거예요. 예수님의 십자가 피가 우리의 죄를 용서하기 위해서 흘리신 그 귀한, 대신 죽으신 귀한 피예요. 십자가의 피가, 피 속에 여러분의 죄가 들어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아셔야 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아무리 착해지려고 해도 가끔은 나쁜 짓 하고 가끔은 나쁜 짓 한 것이 생각나면서도 두 번 다시 안 하겠다고 마음먹어도 또 새로운 환경이 주어지게 되면 또 슬그머니 죄가 또 생각나요. 주님이여. 십자가의 피가 이것을 미리 익히 아시고 주님의 사랑을 받아들이는, 용서하는 사랑을 받아들이는 어린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