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 설교, 강의(이근호)/룻기

(룻기4:7~17) 죽은 자의 기업

정인순 2017. 6. 27.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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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취:이남희

룻기 1996 (7)

이근호     

 

본문말씀: (룻기4:7~17) 죽은 자의 기업


(4:7) 옛적 이스라엘 중에 모든 것을 무르거나 교환하는 일을 확정하기 위하여 사람이 그 신을 벗어 그 이웃에게 주더니 이것이 이스라엘의 증명하는 전례가 된지라
(4:8) 이에 그 기업 무를 자가 보아스에게 이르되 네가 너를 위하여 사라 하고 그 신을 벗는지라
(4:9) 보아스가 장로들과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내가 엘리멜렉과 기룐과 말론에게 있던 모든 것을 나오미의 손에서 산 일이 너희가 오늘날 증인이 되었고
(4:10) 또 말론의 아내 모압 여인 룻을 사서 나의 아내로 취하고 그 죽은 자의 기업을 그 이름으로 잇게 하여 그 이름이 그 형제 중과 그곳 성문에서 끊어지지 않게 함에 너희가 오늘날 증인이 되었느니라
(4:11) 성문에 있는 모든 백성과 장로들이 가로되 우리가 증인이 되노니 여호와께서 네 집에 들어가는 여인으로 이스라엘 집을 세운 라헬, 레아 두 사람과 같게 하시고 너로 에브랏에서 유력하고 베들레헴에서 유명케 하시기를 원하며
(4:12) 여호와께서 이 소년 여자로 네게 후사를 주사 네 집으로 다말이 유다에게 낳아 준 베레스의 집과 같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4:13) 이에 보아스가 룻을 취하여 아내를 삼고 그와 동침하였더니 여호와께서 그로 잉태케 하시므로 그가 아들을 낳은지라
(4:14) 여인들이 나오미에게 이르되 찬송할찌로다 여호와께서 오늘날 네게 기업 무를 자가 없게 아니하셨도다 이 아이의 이름이 이스라엘 중에 유명하게 되기를 원하노라
(4:15) 이는 네 생명의 회복자며 네 노년의 봉양자라 곧 너를 사랑하며 일곱 아들보다 귀한 자부가 낳은 자로다
(4:16) 나오미가 아기를 취하여 품에 품고 그의 양육자가 되니
(4:17) 그 이웃 여인들이 그에게 이름을 주되 나오미가 아들을 낳았다 하여 그 이름을 오벳이라 하였는데 그는 다윗의 아비인 이새의 아비였더라


하늘을 두루마리 삼아도 주님의 사랑이 엄청나다 하는 것을 우리가 말씀을 통해 다시 한 번 깨닫고 이 세상의 어떤 것보다도 주님의 사랑 안에서 구원을 얻는다는 확신을 갖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서 이 세상의 살아있는 모든 것들을 다 정죄하고 부정해 버립니다. 하나님은 살아있는 것들을 심판하기 위해서 지옥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러니까 살아있다는 그 자체를 잘나서 살아있는 것으로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훌륭하기 때문에 착한 일을 더러 했기 때문에 살아있다고 생각하시면 큰 오산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살려주는 이유는 우리가 이 살아가는 동안에 살려주신 하나님을 위해 살지 아니하고 자기 자신의 자존심만을 위해서 챙기며 살아간다는 것, 그 죄를 철저하게 깨닫게 하시기 위해서 이제 살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살려주신다고 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아니고 아들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오직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은, 원래 아들이란 말은 아버지를 쏙 빼닮았다 그런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아들이 뭐냐? 사람이 아버지를 쏙 빼닮아야 아들이지 아버지를 안 빼닮았는데 무슨 그런 아들이 있겠습니까? 안 그렇습니까? 아들이라는 것은 그 아버지의 자식이 그 아버지의 아들이 돼야지 뭐 존재한다고 다 아들이 되면 안 되잖아요. 그렇다면 요한복음8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사람보고 하기를 너희들은 아들은 아들인데 무슨 아들이냐? 놀랍게도 마귀의 아들이라 했어요. 너희 하는 행세 보니까 어쩌면 마귀하고 똑같은가 이 말입니다. 그러니까 너희는 날 때부터 마귀의 자식이다 이렇게 규정하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마귀의 자식이라 해가지고 나쁜 짓만 골라하고 마귀의 자식이라고 간음하고 간통하고 도적질하고 사람 때려죽이고 그렇게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마귀라 하는 것이 그냥 뭐 나쁜 일만 하고 돌아다니는 것이 마귀가 아니예요.

마귀라 하는 것은 한 마디로 이야기해서 하나님 없이도 살아갈 수 있는데 우리가 무엇 때문에 하나님을 필요로 하는가? 사람들아 우리 하나님으로부터 독립하자. 이게 마귀예요. 못 들었습니까? 다시 한 번 슬로우 버전 해 드릴까요? 마귀가 예수님하고 예수님 광야에 갔을 때 마귀가 만났습니다. 마귀가 예수님한테 내세웠던 세 가지의 조건들이 뭐냐 하면은 아름다운 선진 조국을 건설하자 이거예요. 즉 이 세상은 우리가 실수투성이이긴 하지만 실수 줄이고 우리 지혜와 참신한 아이디어 끄집어내면 얼마든지 이 세상은 유토피아 이룰 수 있고 살만한 세상으로 만들어낼 수 있다. 구태여 그 나라와 그 의를 만들어 낼 필요가 뭐가 있냐 말이죠. 현재 이 나라 이 땅에 있는 세상에서 우리는 지혜를 짜내어서 착한 품성들과 고상한 인격들과 격조 높은 생활을 해나가면 그것들로 뭉쳐져서 보다 살기 좋은 세상을 이룰 수 있다. 그래서 인간 나라는 영원하다. 이 세상은 지옥도 필요 없고 하늘의 불심판도 필요 없고 예수의 재림도 필요 없고 그냥 이대로 살다보면 점차점차 보다 나은 향상된 생활을 할 수 있겠다. 그러니 예수여, 우리와 손잡자. 이것이 바로 마귀가 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순복음적인 로이드 존스 목사님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가장 윤리적인 사람이 십자가의 원수다’ 아주 의미심장한 말을 했습니다. 이 말을 한국교회가 못 알아듣습니다. 한국교회가 전혀 이해를 못 해요. 하나님께서 지옥을 만든 이유를 모르기 때문에 복음을 이해 못 하는 거예요. 쉽게 말해서 우리가 복음, 기쁜 소식이라 하는 것은 배부를 때 한가할 때 침대에서 심심해서 할 짓 없어 침대에서 뒹굴고 있을 때 복음이 아니라, 우리가 지옥이라는 불구덩이에 앉았을 때 복음이라 하는 것이 우리한테 얼마나 고귀한 것인가 새삼 깨닫게 되는 거예요. 현재 우리가 지옥에 왔다고 생각하고 지금 뭐 지옥에 안 왔다고 생각하는 것이 문제지만 지옥에 왔다고 생각하고 뜨거운 유황불 안에 앉아 있을 때 우리가 어떤 수로 구원받겠습니까? 주여 착한 일 했습니다. 이거, 주여 제가 교회 헌금했습니다. 제가 봉사했습니다. 이런 것 가지고 그 사람들 구원 받을 수 있겠어요?

그 때 진짜 기쁜 소식이 뭡니까? “주여!” “와?” “살려주이소!” “뭐 했다고?” “그러니 불쌍히 여겨 주이소” “오이야, 불쌍히 여겨줄게” 불쌍히 여겨 달라, “다윗의 자손이여,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그렇게 외치는 그 문둥병자에게 그런 사람 마음속에만 진짜 기쁜 소식이 제대로 기쁜 소식으로 접근되는 것입니다. 기쁜 소식이라 하는 것은 이 땅에서 우리 욕망을 달성하기 위해서 기쁜 소식이 아닙니다. 서울의 어떤 큰 교회 목사는 땅 값 올라가는 것이 기쁜 소식이라고 참 좋으신 하나님이기 때문에 땅 값 올려준다고 그런 식으로 설교를 합니다만은 그 쪽에 땅 값 올려줘 버리면 다른 사람에게는 슬픈 소식이 되거든요. 못 살고 어려운 사람들 힘든 사람들 세상 물정 모르고 농사만 짓는 사람에게 하루아침에 갑자기 물건 하나 사려해도 물가 올라서 못 사고 남의 혜택(?) 못 얻는 사람에게는 그 좋으신 하나님이 깡패 같은 하나님밖에 더 되겠습니까? 그러니 기쁜 소식이라 하는 것은 그저 세상적인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지옥에 와 있다고 생각할 때에 우리가 뭐를 자기 것 내세우고 그러겠습니까? 오직 “주여,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니 뭐했는데 자꾸만 불쌍히 여기라 그러노 귀찮은데” “했는 거 없으니 부르지요. 했는 거 없으니 그냥 불쌍히 여겨 달라 하지요” “어떻게?” “그냥! 그냥 불쌍히 여겨 주이소” “니가 예수를 아는구나. 니가 복음을 아는구나” 그게 기쁜 소식 아닙니까?

아무 것도 주님 앞에 한 것도 없지만 그냥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장차 지옥 가서 부르면 소용없는 것, 지옥 가기 전에 우리가 이 자리에서 그 심정으로 불러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 심정으로 예수를 찾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주여, 저는 구원받을 선택권이 없습니다. 저는 구원받을 선택권이 없기 때문에 저는 주님을 선택해 제 목숨을 바칩니다’ 우리는 주님을 구원할 선택권이 없어요. 없지만 주님의 선택의 자비로운 선택이 우리를 맞고 삽니다. 그 기쁜 소식 하나가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소소한 일들을 다 커버할 수 있는 거예요. 모든 것을  커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한국 교회에 하나님, 하나님 찾는 사람이 그리 많은데 심판의 하나님으로 이해 못하는 사람은 그 사람 불신자입니다. 분명히 장담하는 거예요. 심판의 하나님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그건 하나님이 아니예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양 쪽에 파리바게뜨 그 뭐꼬 카스테라나 생과자 들고 온 게 아니예요. 십자가 피 묻은 손으로 왔습니다. 왜? “주님!” “와?” “어디서 터졌습니까? 누구 어느 깡패한테 맞았습니까? 어디 킬러한테 맞았습니까? 에이, 이 나쁜 최민수 이거 내 가만두나 보자. 누구한테 이리 얻어터졌습니까? 와, 세상 나쁘네. 예수님을 이렇게 처참하게 아구창 돌려가지고 이렇게 처참하게 십자가에 못 박다니, 이런 나쁜 세상!” 주님 뭐라 하는지 아십니까? “너나 잘 해, 너나 잘 해! 너 때문에 나 죽었어” “아, 내가 주님 오면 나는 따뜻히 잘 챙겨서 먹여서 보낼 텐데 누가 우리 예수님을 모질게 했어?”

우리가 방금 이 시근 없는 생각은 우리가 마태복음 처음 읽는 사람들 다 느껴요.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려 죽이니까 그거 본 사람들이 한결같이 “야, 나쁜 유대인들. 내가 그 때 살아 있었으면 이 비켜라 유대인들아! 우리 착한 예수님을 왜 이렇게 괴롭히느냐? 나는 독수리 부대다  짜자잖! 주여, 내가 주의 보디가드가 되겠습니다. 으아 나가라! 누가 우리 예수님을 헤칠까!” 아마 그러한 정의감에 불타가지고 예수님을 지가 지키겠다고 한 병신 같은 인간이 있었어요. 이름도 베드로라. 이 베드로가 “주여! 제가 칼, 단도 칼이 있습니다. 제가 압구정의 단도 아닙니까? 내 단도 하나는 끝내줍니다” “베드로야, 너나 잘해 너나!” 결국은 베드로가 예수님 잡힐 때 뭐라고 했습니까? “저 사람 니 알제?” “모릅니다!” “알잖아 니” 조금 있다가 여자 애가 “아저씨, 알잖아요!” “ 요 계집아가 어디 어른 앞에서 툭 튀어나와가지고 모른다 나 저자는 모른다!” 그 때 예수님께서는 뭡니까? 싹 돌아봤잖아요. 가까이 하기에는 너무나 먼 당신... “니가 뭘 가까이 한다고 날? 가장 가까이 한 니가 날 저주해?” 인간의 한계입니다.

성령이 오지 않고서는, 십자가의 영이 오지 않고서는 그 십자가의 피가 나에게 어떤 소용이 있다는 것을 의미를 몰라요. 우리는 성령을 받은 사람만이 그 피가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출했던 문설주 발랐던 그 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 양의 그 피. 그 피가 바로 예수님 흘리신 속죄의 피라는 것을 알고 그 피로 말미암아 우리의 지은 모든 죄가 깨끗하게 용서받는다는 거예요.  그걸 여러분 아시게 될 꺼예요.

사람이 살면서 교회 다니면서 제일 시험 들기 쉬운 유혹이 뭔지 압니까? ‘템테이션(Temptation)' 제일 큰 시험이 뭔지 압니까? 그건 교회 만들기, 참한 교회 세우기, 훌륭한 참한 공동체 운동하기. 그걸 이기지 못해요. 예수의 피가 아니고 우리끼리 괜찮은 교회 만들자 중생된 거듭난 사람끼리 참한 교회 한 번 시작해 보자. 니 돈 내고 내 돈 내어 가지고 개척 교회, 참하게 한 번 해보자. 이런 쓰잘 데 없는 생각하고 그런다니까요.

교회가 우리를 구원하는 게 아닙니다 여러분. 교회가 우릴 구원하는 게 아니고 십자가 피가 우릴 구원합니다. ‘아이고 목사님 지금까지 이야기 한 거야 박사교회 7년 동안 이야기 하는 데 우리 모릅니까?’ 아마 그렇게 할 꺼예요. 아는지 모르는지 오늘 아침에 일어난 일을 내가 소상히 이야기 할게요. 내 지금 초등부 교사 욕을 하려 하는 게 아닙니다. 그분들 욕하려는 거 본인이 먼저 알아요. 여름 성경학교 하나 마나라는 소리를 교사한테 들었습니다. 교사회 한다고 달랑 네 명 떡 앉아가지고 인상 푹 그려 가지고 네 명 앉아 있어요. 하기 싫은데 뭐 한다고 하노? 고생 우리 여름 성경 학교 교사 해봐야 장로님이 알아 도와주노 전도사님이 한 번 봐주나 목사가 한 번 봐주나 우리끼리 달랑 앉아 가지고 완전 소외된 이방인처럼 소외된 우리 교사 네 명 앉아 가지고 해봐야 누가 알아주나 누가? 아무도 안 알아주는데. 하나마다다 이 말이죠. 그래서 뭐하고 있냐 물었더니 여름성경학교 모여 가지고 회의하고 있다 말이죠. 주동자가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기가 막혔어요. 흥보가 기가 막혀 내... 달랑 아 아홉 명 놔두고 무슨 주동자가 뭐가 필요해? 아이 부모한테 전화 걸어 가지고 여름성경학교 박사교회에서 하는데 애 보낼꺼요 말꺼요 하면 보이 스카우트 가는데 우에 가겠노 그러면 때려 치워버리고 안 하면 되잖아.

그런데 이 교사들이 가장 나쁜 점이 여름성경학교를 안 하면 되는 생각을 안 하고 있는 거예요. 왜? 자존심이 세어 가지고. 하나님께서 왜 부장집사를 박사교회엔 왜 부장집사가 없습니까? 왜 남들이 장로님 전도사님들이 관심도 없습니까? 그것은 교사 자체가 평소에 얼마나 사람 남들 눈치 보면서 교사 하느냐 아니면 살아계신 주님 눈치 보면서 살아가느냐 본인 스스로 OOO사진 앞에서 스스로 자신의 본질을 밝혀내라고 그렇게 한 거예요. 절대로 핑계가 아닙니다. 이건 절대로 핑계가 아니예요.

다른 교회처럼 부장 집사가 있고 다른 교회처럼 담임 전도사가 있어 가지고 시켜버리면 시켜서 하는 것은 남 보기에 봉사한 거 같지요? 그러나 갑자기 전도사나 부장 집사 빠져 버리면 그 사람들 안 할 사람이라 이 말이죠. 그러니까 기존 교회에서 부장 집사, 전도사님 있으면 자기 본질을 몰라요. 자기는 지금 주님을 사랑하지 않지만, 지는 알지만 다른 사람 보기에 티가 안 나잖아요. 시킨 대로 하니까 목사가 칭찬하지요 전도사님 칭찬하지요 부장 집사가 칭찬하지요. ‘세상에 바쁜데 공부 안 하고 아들 위해서 이렇게 일부러 휴일까지 반납해가면서 여름성경학교 땀 흘리면서 봉사 하는구나 율동해서 하나 알아 무지도 않고 설교 해봐야 듣지도 않는 거 잠자고 앞에 코고는 사람, 손가락 다트고 이렇게 기타 치면서 고생하는구나’ 남들 보기에는 그런 칭찬만 받을 것이 뻔하다 말입니다. 그렇다면 사람 하나 배리는 그런 제도 뭐한데 하냐 이 말입니다. 그냥 빼뿌고 부장집사 빼버리고 한 번 해보라 이 말입니다. 해보면 관심있는 교사 같으면 전화할 겁니다. “내 자식 아니고 당신 자식인데 여름성경학교 우할꺼요?” “아이고 보이 스카우트 가는데 우에 가겠나?” “때려 치와 뿌고 오지 말고” 다음 부모한테 “우에 할 건데?” “아들 가봐야 재미도 없다 카는데” 때려 치와 뿌고 그 다음, “그 다음은 우에 할 건데?” 이 졸 빼고 차 빼고 포 빼고 다 빼뿌이 그럼 하나도 없다. 그럼 안 하면 되잖아요. 안 한다고 지옥 갑니까? 안 한다고 지옥 갑니까?

십자가 피로 영생을 얻는다고 제가 누누이 설명했건만 여름성경학교 안 한다고 지옥 갑니까? 왜 남의 자식을 제 자식처럼 생각 합니까? 남의 자식은 부모 책임에 놔 둬 버려야지. 날이 갈수록, 날이 갈수록 아이들 주일 학교에 관심 없어요. 관심 없으면 관심 없는 그 모습 그대로 교회가 보여줘야 됩니다. 교회는 계시만 보여주면 되지 아이들 억지로 재미나게 율동 해 가지고 아이들 억지로 불러 모아서 이 만큼 끌어 모았다 남한테 과장되게 하는 건 교회가 아닙니다. 교회라 하는 것은 세상이 악하면 악한 데로 못나면 못난 데로 그 못남을 보여줘야 교회 아닙니까? 못남을 보여줘야.

마지막 때에 믿는 자를 보겠느냐? 믿음을 보겠느냐? 마지막 때에 믿음을 안 보이면 교인수가 줄어져야 되고 줄어지도록 교회가 노력해야 됩니다. 어떤 데 강의 하면서 목사의 임무는 교회를 부수는 거라 하니까 다른 사람들 이해를 못해요. ‘어휴 목사의 임무가 왜 교회를 부수는 기가. 다독거려가지고 우야든지 교회에 오도록 해야지 심방 들려가지고 집사님, 왜 캄니까? 다른 교회보다 우리 교회 오이소. 우리 교회는 공짜로 점심 줍니다. 우리는 우동 안 주고 국수 안 주고 이 완전이 국밥 줍니다. 이천 원 합니다. 꼬셔가지고 뭐 나눔의 맨 날 놀러가고 꼬셔가지고 모다야지 모다야지 그래야 많은 사람 천당 가야 하나님 기뻐하시고 아이고 선교 많이 했구나 전도 많이 했구나 칭찬 할 건대 이거 뭐 목사가 교회를 뿌사야 교회라 하니까 이거 뭐 이게 무슨 목사고 이런 식으로 뿌수는 기. 이 이야기를 이해를 못하는 거예요.

왜냐하면 결국에는, 결국에는 천국 안 좋아 하는 사람을 뭐 할라고 억지로 손에 붙드느냐 천국 안 갈 사람들을. 안 갈 사람들을 놔줘야 본질을 알 것 아닙니까? 천국에 가지도 못할 사람들 쭉 불러 모으니까 세례주고 학습주고 목사 안수주고 권사 장로 시켜 주니까 자기는 권사 되었다고 천당 간다고 착각하고 있고 또 목사 되었다고 천당 간다고 착각하고 있으니 남들 보기에 남들 속이고 지 속이고. 이 무슨 꼬라지 이런 꼬라지가 다 있습니까?

여러분 봉사하려면 외롭게 하시기 바랍니다. 외롭게. 왜? 예수님도 외롭게 일을 했습니다. 외롭게. 무슨 봉사하고 성가대든 뭐든 봉사 하려거든 알아주는 사람 없고 무슨 상 없다는 것을 각오하고 외롭게 시작 하시고 외롭게 끝내세요. 그 외로움 속에서 주님의 외로움에 동참하시기 바랍니다. 그 주님의 외로움에.  왜 봉사를 안 합니까? 안 외로울라꼬. 편하게 살라꼬  하는 거 아닙니까? 그러면 계속 자기는 위선자로 남고 자기의 본질을 가리는 것이라 이 말이지요. 좁은 길로 가는 사람이 적어요. 이거는 분명한 말할 수 없는 진리입니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목사님, 성경공부를 계속 해야지요” 아, 계속할 것 같으면 열 시 반까지 나오세요. 열 시 반에 전도사님이 열 명 놓고 하든 두 명 세 명 놓고 하는데 일찍 성경공부 오면 될 것 아닙니까? 저, 기도하고 싶은데요. 기도하고 싶으면 새벽기도 나와 하면 되잖아요 얼마든지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외롭지 않기 위한 투쟁을 벌이고 있어요. 나 외롭기 위해 천당 간다 하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아니고  좀 이왕 천당 가는 거 즐겁게 흥겹게 편하게 한 번 가보자 하는 그런 인식이 꽉 들어있기 때문에 그런 현상이 벌어지는 겁니다. 그렇다면 교회는 뭐냐? 그런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 본질을 분명히 드러내 줘서 현재 내 위상이 어디고 위치가 어디쯤 되는가를 까발리는 것, 이것이 바로 교회의 할 일이 아니냐 이 말이죠. 목사의 임무가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성경은 교회 만들기 해가지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지옥 갔는가를 보여주고 하나님은 교회 만든 사람들을 찾는 것이 아니고 참된 성도를 찾는다 이것을 이야기하기 위해서 성경이 있습니다. 참된 성도, 다시 말해서 같이 호응해 주는 사람 없다 할지라도 주님 사랑하면서 외로운 길을 마다하지 않고 갈 사람이 누구냐를 찾고 있는 그것, 그것이 바로 교회입니다.

오늘 본문을 한 번 봅시다. 오늘 본문 끝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17절에 보면 ‘그 이웃 여인들이 그에게 이름을 주되 나오미가 아들을 낳았다 하여 그 이름을 오벳이라 하였는데’ 여러분, 여자가 자식 낳은 여자가 어디 한 두 명입니까? 여자가 자식 낳기 여사고 뭐, 특히 젊은 여자가 아기 낳기, 아들 낳기 여사 아닙니까? 세상의 반이 아들인데. 지금 반 좀 안 된다마는. 그러니 세상의 많은 여자들이 아들을 낳았지만, 세상의 낳은 아들은 아들 취급을 안 해요. 하나님께서. 그게 무슨 아들이고 그게. 그게 무슨 아들이야 그게 지옥자식이지  무슨 아들이고.

성경은 희한해요. 시비, 시비 거는 대장이라. 예, 하나님은 태권도 8단이라 카이. 양발차기 한다 카이. 오면 차 뿔고 삐지고 그렇다 카이. 그게 아니고 이 기고, 만날 성경이 그래 되어 있어요. 자기 생명을 얻고자 하면 잃어버릴 것이요, 뭔가 시비 거는 것 밖에 더 됩니까? 살고자하는 자는 죽을 것이요, 이 시비 거는 것 밖에 더 돼요? 그러니까 성경에서 나오미가 아들을 낳았다 이 말이 지금 우리 집안에 아들 낳은 사람 많잖아요. 우리 장로님 따님 OOO성도님께서 아들 낳았다고 감사 헌금 드렸죠. 나오미가 아들을 낳은 게 아니예요. 나오미의 자부 룻이 아들을 낳은 거예요. 그런데 이것이 무슨 사건이냐 말이에요. 이 아들 낳은 것이 무슨 사건이냐 말이예요. 제일 산부인과 가면 지금도 아들 푹푹 낳고 있잖아요. 주일날도. 여러분 나오미가 룻기 1장에 보면 아들이 둘 있었지요. 말론과 기룐. 1장2절에 보면 ‘그 사람의 이름은 엘리멜렉이요 그 아내의 이름은 나오미요 그 두 아들의 이름은 말론과 기룐이니’ 분명히 그 전에 나오미 아들 낳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게 무슨 아들이냐! 천당 가나 그게? 지옥으로 가는 놈이지. 어떻게 약속을 포기해, 약속을! 아들이라고 아들이냐 아들이면 아들이냐.

아들 낳았다고 다 아들이냐 말이지요. 하나님 보시기에 아들은 그런 아들이 아니예요. 하나님이 들어 있는 사람이어야만 아들이다 말이지요. 하나님이 들어있는 사람. 그 속에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했습니다. 어려운 사람 구제하고 자비하는 것은 승려들 불교 신자들 고승들 잘 하고 있습니다. 그런 것은 예수 믿는 것과 관계없이 저 인도 북쪽에 가면 그 뭐 네팔이나 티벳이나 그 동네에 가면요 성자들 그득 부어 놨어요. 자기 재산 다 팔아가지고 남 구제하는 사람 거기 가면 총 집합 해 놓았어요. 거기 가면 백 일씩 금식 기도하고 저 히말라야 길로 해서 두 번 가고 엎어져서 절하고 또 두 번 가고 엎어져서 절하고 그런 식으로 해서 15Km 20Km 40Km를 걸어 가지고 나중에 무릎이 낙타 무릎 되는 정도로 그렇게 했어요. 낙타 무릎 요새 뭐 한국 기도원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거가면 거기 길에 가면 아이고, 그것도 금식이요 그것도 기도요 이캄니다. 그 얼마나 도를 닦아 놓았는지 공중에서 붕붕 떠가지고 그것 또 사진 찍고 기를 모아서 공중 붕붕 뜨고요, 불 위를 막 걷고 이래요. 불 위를 걸어서 천당 간다 하면 우리도 교회 때려 치워버리고 여기 흑판 하나 놔가지고 주욱 해가지고  맨 발로 해 가지고 할머니부터 쭉 해서 나는 제일 뒤에 가서 안 죽을 라고 젤 뒤 가고.

그러니까 인간이 도 닦고 성품 고와져서 남한테 구제하고 뭐 밥 퍼 주는 사랑 그러는데, 밥 퍼줄 때 파출부만 있으면 되지 뭐 목사가 나가 밥 퍼 줍니까? 밥 퍼준다 하니까 최일도 목사 나와 밥 퍼주고 건강식품 팔고 상황버섯 해 가지고 사기 당하고 그 따위 짓 하고 있는데 그거, 그런 거 해가지고 천당 가면 그게 하나님 뜻 입니까?

성령이라 하는 것은 사람을 죽이는 재주가 있어요. 사람을 죽이는 재주. ‘너는 인간이 아니야’ 한 마디로 말해서 그거예요. 너 교회 왔어? 잘 왔다. 너 인간 아니야. 니는 다른 친구들은 지금 놀러갔는데 너는 안식일 지키려고 교회 왔다. 내가 잘 한다 할 줄 알았느냐? 놀고 있네. 안식일 지킨다고 구원받나. 너는 인간 아니야. 너는 새로 창조 되어야 돼. 새로 창조. 이것이 오늘 본문의 하나님 이야기 하는 거예요. 나오미가 아들을 낳았다. 그러나 그 아들은 달라요. 왜? 아비가 없어요. 아버지가 없어요. 아버지 없는 자식 이예요.

창세기 3장 15절에 보면 여자의 후손과 뱀의 후손이 싸운다고 되어 있습니다. 모든 아들은요 전부다 남자 족보에 이름을 다 올리게 되어 있어요.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이 야곱을 낳고. 아버지 날 낳으시고 어머니 날 기르시니. 어디서 많이 듣던 구절 아닙니까, 여러분? 정철이라는 사람이 했고 옛날에 그 유래는 저 중국에 있는 철학가 책에서 베낀 거지만. 아버지 날 낳으시고 어머니 날 기르시니. 아버지가 날 낳았다는 거예요. 모든 것에는 아버지 이름에 다 가는 거예요. 그것을 가지고 부계 사회라 해요. 부계 사회. 엄마 이름이 있는 것을 모계 사회라 하는데 그런 것은 옛날에 지은 이야기고 모든 자식은 부계로 아버지로 오는데, 그러나 남자의 후손이 아니라 여자의 후손이다 이 말은 아버지 없이 태어난 자식이 누굴 이긴다? 마귀를 이겨서 새로운 생명을 창조한다 이 말입니다. 아버지 없는 자식이.

그게 요한복음 1장에 나와 있거든요. 제가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뭐 이상한 소리 하나 이러는데 이상한 소리가 아니고 요한복음 1장에 나오는데 성경이 이상한 소리 같으면 저도 이상한 소리 될께요. 성경이 진짜 같으면, 요한복음 1장12절에 보면 그 유명한 말씀인데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여기서 하나님 자녀입니다. 사람 자녀가 아닙니다. ‘(13절) 이는-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자녀는, 사람의 자녀가 아니고 하나님의 자녀는-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제가 아까 처음에 이야기 했잖아요. 자식이라 하는 것은 아버지를 빼다 박아야 자식 이예요. 그 아버지에 그 자식이라 않캄니까. 그러니까 하나님의 자녀라 하니까 자꾸 우습게보지 마세요. 하나님의 자녀라 하는 것은 뭔가 구별되어야 되고 분리 되어야 되고 차별성을 갖고 있어야 돼요. 차별성. 세상 사람들과 차별성을 가지고 있어야 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어떤 분이 우리 교회 나오시다가 안 나오시는 어떤 분이 전화합니다. “목사님, 교회를 나올까요 말까요?” 그런 얘기 더러 해요. 그래서 했어요. “피조물은 창조주를 나올까요 말까요 선택 사항이 아니고 이거는 피조물이 되었으면 이거는 누가 눈총을 주든 안 주든 간에 마땅히 해야 될 일입니다. 그러니까 제가 하라 소리를 못해요. 왜냐 하면 하라 해서 해버리면 제가 하나님 되어 버리니까 이것은 하라고 할 제 자격이 없습니다. 다만 피조물이라면 마땅히 창조주를 섬겨야 돼요. 일이 되던 안 되던 관계없이 이거는 마땅히 해야 될 문제예요. 마땅히 해야 될 문제. 당연히 해야 될 문제라 말이죠. 그런데 그걸 어떻게 교회 다닐까 말까요 하나님 섬겨요 말아요 그래 하냐 말이죠. 하나님의 자녀라 하는 것은 이것은 하나님의 될까요 말까요 문제가 아니고 하나님께서 만들어 줘야 되지 지가 하면 되고, 되고 싶어서 되는 게 아니예요. 하나님 자녀는 하나님께서 새로운 창조를 해 주어야 되는 거예요. 어떻게 하면 되는가? 너는 인간도 아니고 내가 새로 만들어 내야 돼. 그렇다면 목사님 질문 있습니다. 뭐? 하나님의 자녀인 사람과 아닌 사람과 어떻게 구별됩니까? ‘나는 하나님이 나를 만들었어요. 나 같은 인간은 이미 죽었어야 마땅합니다’ 그걸 인정하는 사람, 다시 쉽게 말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 하는 사람. 지 자랑하는 게 아니고, 하나님의 사랑이 나한테 임해서 내가 새 사람 되었다는 것을 남한테 증거 할 수 있는, 행동으로 말씨로 증거 할 수 있는 사람. 그것이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자식이 되었으면 아버지를 자랑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너 누가 만들었노?” “우리 아버지가 만들었다” “그럼 너 너희 아버지 아들이냐?” “우리 아버지 아들이다” 그게 말이 되잖아요. 이게 뭐가 어렵습니까?

그런데 하나님 섬길까요 말까요, 이 말은 뭡니까? 자기는 인위적으로 인간적인 방법으로 하나님 자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건 큰 오산 이예요. 그런 사람 백 날 남의 흉내 내고 교회 나오는 흉내 내도 그 사람 하나님 자녀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할까요 말까요에 대한  사항이 아니예요. 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 섬기지 않을 수가 없게 되어 있어요. 봉사할까요 말까요가 아닙니다. 외롭지만 아버지가 하라 하면 하게 되어 있는 것, 아버지를 사랑해서 하도록 되어 있는 겁니다. 그게 어디 거기다가 인간적인 논리적인 철학을 집어  넣습니까?

나오미가 아들을 낳은 것은 룻이 남편이 없습니다. 남편 없어 가지고 빌려 온 남편이지요. 남편을 빌려 와 가지고 죽은, 더러워서 죽은 말론과 기룐 그리고 남편 엘리멜렉 다 죽이고 새로운 나오미의 아들, 이름을 뭐라 하냐 오벳이라 하지요. 오벳 이예요. 나오미의 아들 이런 뜻 이예요. 오벳이란 이름으로 새로 등장한 그 아들은 전에 있던 되도 않은 디디한 말론과 기룐 그리고 엘리멜렉 그런 것들은 참 보도 않은 거예요. 너무너무 기쁜 거예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찾아왔다. 그 하나님이 찾아오신 증거가 오벳이다. 그러니 여러분들이 어떻게 신앙생활 할까요 하는 거 어렵게 생각하지 마세요. 내가 이러한 곤궁에 있더라도 주님의 사랑은 끊어지지 않는다. 아버지의 사랑은 끊어지지 않는다. 왜? 나는 아버지의 자녀이기 때문에. 그걸 인정하는 사람은 누가 뭐래도 그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끝으로 한 말씀 더 드리겠습니다. 뭐 여기 본인이 살아계신데 이런 얘기해서 죄송합니다만은 우리 전도사님이 아파트 문제 때문에 싸웠어요. 그때 내가 이래 얘기 했습니다. 누가 하나님의 종을 건드리는데, 누가. 거 참 겁 없이. 전도사로 보지 말고 하나님의 종으로 보자 이 말입니다. 오늘 전도사 뜨네. 완전히 뜬다. 그 사람을 볼 때에 예수님만 증거 하는 사람 같으면요 함부로 손대면 안 돼요. 왜? 하나님께서 그렇게 새로 창조했기 때문에. 나오미의 아들이기 때문에. 오벳이기 때문에. 여자의 후손이기 때문에. 그런데 함부로 뭐 평수가 어떠니. 우리가 예수님만 증거 하는 사람 무시하면 벌 받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 교회는 무엇입니까? 목사를 욕하면 벌 받고 목사한테 넥타이 사 주면 축복 받는다. 이 넥타이 내가 샀어요. 그런 미신이 말도 안 되는 미신이 한국 교회에 퍼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하면 주의 종이고 집사님 하면 주의 종 아니예요. 그걸 또 교인들이 그렇게 좋아하데요. 왜? 하나님의 신이 있다고. 뭐 할렐루야 케싸면서... 목소리 희한하게 변조 되가지고 사람들 홀리는.

주님의 종이라 하는 것은 개척 교회 열 군데 하고, 봉사를 주특기로 하고 선교 많이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나 부족한데, 나 지옥 갈 놈인데 예수의 유월절 어린 양 피 때문에 나 구원받았다. 예수님을 증거 하는 것이 주의 종이고 그 사람이 (이 부분부터 기도 초반까지 녹음이 잠시 잘렸다가 다시 재생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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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그것 때문에 예수님께서 피 흘리셨다는 걸 깨닫고 주님의 십자가 피 앞에서 그것이 아무 짝에도 소용없다는 것을 깨닫고 그것을 감추고 주님의 자녀된 것을 마음껏 자유를 누리게 하옵소서 .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