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취:이남희
이근호
본문말씀: (룻기1:1~5) 사사시대의 특징
(1:1)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에 그 땅에 흉년이 드니라 유다 베들레헴에 한 사람이 그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 지방에 가서 우거하였는데 (1:2) 그 사람의 이름은 엘리멜렉이요 그 아내의 이름은 나오미요 그 두 아들의 이름은 말론과 기룐이니 유다 베들레헴 에브랏 사람들이더라 그들이 모압 지방에 들어가서 거기 유하더니 (1:3)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이 죽고 나오미와 그 두 아들이 남았으며 (1:4) 그들은 모압 여자 중에서 아내를 취하였는데 하나의 이름은 오르바요 하나의 이름은 룻이더라 거기 거한 지 십 년 즈음에 (1:5) 말론과 기룐 두 사람이 다 죽고 그 여인은 두 아들과 남편의 뒤에 남았더라
오늘 이 시간부터 룻기를 시작하겠습니다. 룻기 1장에 보면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에 그 땅에 흉년이 드니라’ 그렇게 되어 있지요.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에, 사사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고자 했던 그 때는 어떤 때인가 하면 우리가 지난 시간에 알다시피 사사기21장 마지막에 보면 ‘그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각 그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그런 시대였습니다. 사람들이 제 멋대로 제 소견에 자기 마음 끌리는 대로 자기 멋대로 생활했던 그런 시대, 사사들이 다스리던 시대가 하나님 보시기에 만족스런 시대가 아니고 대단히 타락하고 저질인 그런 시대였다고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세상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보실 때에 좋게 보느냐 나쁘게 보느냐 하는 그 문제는 우리가 뭐 착한 일 하나 했다고 해서 좋게 보시는 게 아니고 인간의 그 마지막이 어디로 골인되느냐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인간 과정에서 약간의 좋은 점이 있다 하더라도 모든 인간은 마지막에 죽도록 되어 있습니다. 죽음으로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걸 볼 때에 인간이 죽는 것은 인간 속의 죄가 누적이 되어서 그렇고 날 때부터 인간은 죄를 타고 났기 때문에 인간은 죽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사람이 죽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죽이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인간의 모든 활동과 행동, 자기가 가지고 있는 소유, 재산 그 어떤 조건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사람을 좋지 않게 보고 하나의 흙으로 간주 한다 이렇게 보시면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이렇게 하나님 보시기에 죄가 많고 죄의 지배 아래 있는 인간이기 때문에 인간의 행동 하나하나가 다 하나님 보시기에 만족스럽지 못한 그런 죄악된 행동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런 인간들이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믿는다고 한다는 것은 정말 기적에 속하는 문제인 것입니다. 우리가 특히 교회가 교회답지 못하다는 그런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마는 왜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지 않을까 이렇게 불평하는 목회자나 그런 교인들이 많이 있을 줄 압니다. 그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어떻게 하나님을 믿게 되는냐 말이죠. 죄인 주제에 죄인 같으면 자기만 생각하고 날 때부터 자기 몸만 편한 것만 생각하는 인간인데 그 인간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께 반하고 예수님을 의지하고 예수님을 추종하고 예수님께 꼴딱 넘어가고 예수님 말이라 하면 곧이곧대로 다 듣고, 어찌 세상에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그러니 하나님을 안 믿는 것이 정상이 아니라 죄인으로 태어나서 하나님께 순종하고 예수님을 믿는 것이 사실은 대체적으로 통계적으로 볼 때 이것이 비정상인 것입니다. 그래도 예수님이 하신 말씀에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네가 넓은 길로 가지 말고 좁은 길로 가라 그 곳은 찾는 사람이 적다고 했습니다. 사람들이 영생을 찾는다는 것은 드문 경우입니다. 아쉬울 때만 영생을 찾지 배부르고 편할 때 누가 하나님을 찾고 누가 영생을 찾습니까? 그러니 하나님을 안 믿고 하나님을 부정하고 하나님 존재를 인식하지 않는 것 이런 것은 죄인인 인간의 극히 정상적인 모습이다 이렇게 생각하시면 틀림이 없습니다.
여기 1절에 보면,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에 그 땅에 흉년이 드니라’ 흉년이 들었습니다. 옛날에 농사짓고 사는 입장이기에 흉년들면 그건 곧 죽음이죠. 그러면 그 해결책이 뭡니까? 그 땅을 보따리 싸서 이사 가는 겁니다. 이사를 가는 거예요. 그럼 이 사람들은 어디로 도망갔습니까? 2절에 보니까 모압 지방에 들어가서 거기 유했다 그래서 10년 쯤 살았더라 그래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흉년이 들었으니까 먹을 게 없잖아요 먹을 게 없으니까 보따리 싸고 풍족하고 농사 잘 되는 땅으로 이사 가는 것, 이것이 지극히 정상적인 인간의 모습이다 이거죠. 그럼 그게 뭐가 잘못되었습니까? 성경은 인간이 보통 살아가는 이 모든 것을 다 죄라고 이야기하기 위해서 성경이 기록되었습니다. 이것은 상식이며 이렇게 사는 것은 인간답게 사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모든 것이 몽땅 다 죄라고 까발리기 위해서 성경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편하게 생각하고 편하게 사는 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하나님 눈에 전부 다 죄고 불만스러운 것이고 저주받은 짓이고 비난받을 것이고 전부 다 지옥 갈 것이다를 얘기하기 위해서 성경이 기록된 것입니다. 흔히 말하기를 ‘인심은 천심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 말은 정말 다른 말입니다. 인심은 천심입니다. 다시 말해서 여기서 천심이라는 것은 하늘의 뜻 이라 말이죠. 사람의 뜻은 곧 하나님의 뜻인데 성경은 그걸 가지고 진짜 하나님의 뜻이라 보지 않고 우상의 뜻이라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다는 것은 무엇을 거슬리는가? 흔히 사람들이 생각하는 천심을 거스리는 것이고 이것은 일가친척의 인심을 스스로 깨는 것을 말합니다. 한 집안에서 예수 믿는다는 이 말은 그 집안에서 탈출하는 것이고 도피하는 것이고 그 집안의 모든 우대와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가문의 모든 원칙과 진리와 법칙을 스스로 파기 처분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도발이고 도전입니다. 이것은 전쟁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가족들 향하여 총을 대는 것과 똑같은 행동입니다. 가족들이 말하기를 “니가 교회 나간다며?”, “네 , 교회 나갑니다”, “니 인심도 모르나? 언제 우리 집안이 교회 나가는 집안이더냐?”, “맞습니다. 저는 인심도 모르는 인간입니다” 그래야 이게 정상입니다. 그게 하나님 보시기에 정상입니다. 보이지도 않는 신을 믿는다는 것은 이것은 자기 자신을 파괴하는 행위입니다. 지금까지 살아왔던 모든, 학교에서 배워왔던 것들, 모든 것을 일체 다 집에 가서 유리창 깨듯이 고려자기 깨듯이 자기 그릇 깨듯이 깨는 그러한 투기며 모험인 것입니다. 그저 제가 이 말씀 드리는 것은 하나님 믿지 말라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을 안 믿으면서 교회 나오지 말라 이 말입니다. 헷갈리잖아요! 하나님을 안 믿으면서 교회 나오면 다른 사람 보기에 천당 가는 사람으로 오해 받잖아요. 그러면 진짜 예수 믿는 사람의 마음이 안일해질 수가 있는 겁니다. 아, 저래 믿어도 천당 간다면 내가 구태여 애쓸 필요가 없겠구나. 저 사람은 저래 믿어도 장로 되고, 저래 믿어도 목사 되고, 저래 믿어도 권사 되는데 나는 집사라도 이 정도 신앙 가지고 있는데 나도 그러면 농땡이 치자! 혹시 옆에 사람 이렇게 피해 주고 안일한 신앙 가질 수 있다 말이죠.
그러니 아까 장로님 기도한 내용처럼 그렇게 초대 교회는 순교 먼저 할라고 아등바등 치면서 천당 먼저 가려고 애를 썼는데 오늘 날에는 교인조차도 소위 신자라는 사람조차도 죽으면 안 되지, 좀 더 살아야지 하는 그런 맘으로 교회 나오니 어떻게 교회를 교회라고 할 수 있습니까? 이게 지금 그냥 장난치는 데죠...
창경원에 가면 원숭이를 우리에 가둬 놓고 구경한 적 있습니다. 오늘 날 현대인들은 하나님을 구경합니다. 어디 가둬놓고? 철장에 가둬놓고 요리 보고 조리 봅니다. 이 하나님을 구경하는 거예요. 안에 있는 원숭이가 들어오라고 얘기 합니다. 철장 속에 어느 미친놈이 거기 들어갑니까, 고생하러. 죽을 때 되면 들어갈께요. 나 나중에 올께요. 하나님 스톱! 나중에 실컷 세상 재미 즐기다가 나중에 임종 쯤 되어서 천당 가기 위해 올께요. 그런 식으로 하나님과 철장으로 격리시켜 놓고 살아가는 것이 현대인들입니다. 목회자부터 사람들 안 온다고, 교회 부흫 안 된다고 가슴앓이 하고 있잖아요. 목회자부터 사람들 안 모인다고 신경쓰면 그 사람은 지금 무엇을 불신하고 있느냐 하면 주님께서 살아 계시다는 것을 모독하는 목회자입니다.
주님만 살아계시면 됩니다.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못 들은 분을 위해서. 여러분, 예수님만 살아계시면 되는 겁니다! 있는 사람 없어도 괜찮아요. 왜? 교회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아니고, 예수님이 길이고 진리고 생명입니다. 교회가 아닙니다. 북적북적 많은 사람 모인 곳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아니예요. 그 사람들은 언제 왔다가 흩어질 가능성이 농후한 사람들입니다. 10년 다니다가 안 믿겠다고 도망칠 사람들이예요. 그 사람들은 제가 언젠가 주일학교에 대해서 6년 전부터, 올 때부터 주일학교에 대해서 얘기 했습니다. 주일학교 없애라. 왜? 주일학교라 하는 것은 원래 없던 거예요. 온 식구가 다 같이 교회 나오는 겁니다. 그래서 한 자리에서 자식도 목사 설교 듣고, 엄마도 아버지도 목사 설교 들어 가지고 집에 가서 목사 설교 앞두고 말씀 앞두고 서로서로 견제하면서, 서로서로 아, 이래서 안 되겠구나 하는 거예요. 그런데 애를 아무 본 적도 없는 총각, 처녀한테 맡겨 가지고 저거끼리 가르친다하니 그거 뭡니까? 내 손으로 내 자식 신앙교육 시키는 것이 아니고 나는 신앙심을 못 지키겠다는 겁니다. 왜? 신앙교육을 내 자식한테 시키려고 하니까 아버지 엄마가 행동을 본받을 수 있는 모범이 돼야 되는데 모범될 게 있어야지. 교회 나올 때만 신자지, 밖에서는 신자가 아니니까... 자식들도 그걸 다 알고 있는 입장에서 아버지 엄마한테 배울 게 없는 거예요. 그러면서도 아버지 엄마는 또 내 신앙심 없다는 게 걱정될까 싶어서 애 앞장세워서 교회 보낸다구요. 주일학교가 제대로 있으려면 주일학교 아이들이 있어야 되는 게 아니고, 그 보내는 부모들 위해서 주일학교 있어야 됩니다.
특히 교사들은 애들 가르치지 말고 그 부모들 찾아가서 내가 이런 식으로 애를 교육 할테니까 집에서 이렇게 도와 달라고 요청하는 것이 교사예요. 교사는 이렇게 해야 합니다. 그 부모를 만나야 됩니다. 안 믿는 애들요? 구경삼아 놀기 삼아 나와요 밥 안 주고 쭈쭈바 안 주면 다 떠날 애들이예요. 결국 다 떠납니다. 남는 애들 없습니다. 심지어 믿는 애들도 않나옵니다. 그러면 그 자식을 믿게 하는 방법 있습니까? 없지요. 그래서 자식이든 부모든 간에 다시 얘기 합니다만, 예수를 믿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이건 비밀 형태의 믿음입니다. 이것은 기적이 유발된 믿음의 형태입니다. 믿음의 기적이 일어났나 싶어 제가 의심스러운 정도예요. 안 믿어도 될 사람을 그래도 밥 먹고 사는 세상에서 미쳤다고 손해 보면서 십일조 하면 손해보고 돈 받치면 손해보고 미쳤다고 그래 하나님 믿습니까? 그렇다면 좀 똑똑해지시고 영악해지시고 영리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제 말 말고 정말 하나님이 계십니까? 그렇다면 앞으로 세상에 나가서 걱정 불평하지 마세요. 정말 예수님 믿습니까? 그럼 있는 것으로 족하시고 예수님위해 목숨 바치는 것 영광스럽게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세례요한처럼. 그러면 그 사람은 신자로 인정하겠습니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아무 것도 아니예요.
예수님이 살아계시면 결국 우리에게 영생이 주어집니다. 지금은 아프지만 아픔이 없고 죽음이 없는 곳으로 가게 됩니다. 그것보다 큰 보험, 그것보다 큰 생명보험, 그것보다 큰 행운이 어디 있습니까? 그렇다면 세상에서 고생하는 것 그런 고생이야 예수님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죠. 예수님 이 땅에서 어떤 고생을 해도 아버지가 하늘에 계시다는 생각만으로 든든하게 과감하게 십자가 지시고 가셨습니다. 가셨어요. 그렇다면 지금도 예수님이 믿던 그 아버지가 계시다면 우리도 같은 아버지 아닙니까?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주기도문 외우고 있잖아요. 그렇다면 우리가 더 이상 걱정일랑 하지말자 이 말입니다. 사태가 어떻게 진전되든지 간에 결국 가는 곳이 영생이라면 일이 잘 풀리고 있는 것이고 잘 되고 있는 거예요.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에 이름이 이상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엘리멜렉”이란 뜻은 ‘하나님이 나의 왕’이란 뜻입니다. 하나님이 나의 왕이란 가정에서 꼴 좋습니다. 흉년들었다고 그만 그 하나님 약속의 땅을 차 버리고 이방 나라 가서 살았습니다. 이게 하나님을 왕으로 찾는 사람의 특징입니까? 나는 아버지한테 반했다, 나는 내 아내한테 반했다, 나는 내 남편한테 반했다 하면 그렇게 할 수 있습니까? 아버지한테 반했더라면 아버지와 함께 고생하는 것을 낙으로 여겨야지, 아버지한테 반했다고 해놓고는 아버지 사랑한다 해놓고는 아버지 없는 세상에 그걸 좋아하는 거예요. 시편84편을 보면 내가 세상에서 천 날보다도 내가 하나님 문지기로 하루 있는 것이 낫다고 했습니다 다시 한 번 얘기 드리면 자기 아내한테 하나 밖에 없는 아내한테 홀딱 반한 남편이 세상 여자 모두가 내 아내가 안 되었다는 것 때문에 걱정하겠습니까? 짜증내겠습니까? 세상 여자 열 트럭, 오십 트럭 와도 나는 내 아내만으로 족하다는 그런 마음이 있으면 아무리 예쁘고 젊고 미니스커트 입은 아가씨 있다 하더라도 거기 눈 돌리지 않고 당신만을 사랑해 하고 손잡아 줄 겁니다.
그 당시에 이름 자체가 하나님이 왕이다, 말만 왕입니까? 정말 나는 당신이 필요합니다. 나 당신에게 반했습니다. 이런다면 흉년이 들었더라도 그 땅을 안 떠나야죠. 하나님 없는 곳에 안 가야죠. 제가 이렇게 하면 다른 사람들이 미쳤다고 합니다. 목사야, 밥 먹고 살아야 교회 챙기지, 배고프면 어느 놈이 교회 기어 나오겠노? 그렇게 생각하는 것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그건 맞습니다. 옛날 우리나라에 이런 게 있습니다. ‘아침에 우는 새는 배고파서 울고, 저녁 때 우는 새는 님 그리워 운다’ 저녁 때 님 그리워 우는 새가 있어요. 무슨 새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마는... 아침에 우는 새는 배고파서 울고 저녁 때 우는 새는 님 그리워 운다는 겁니다. 일단 사람이 배가 불러야 님을 그리지, 배가 고픈데 무슨 님이 왜 필요합니까? 그러나 또 제가 예수 믿는 것이 기적입니다라고 얘기하는 이유가 어디 있느냐? 배가 고파도 님 보고 싶어 우는 새가 되어 달라. 그래서 제가 기적이란 말을 붙이는 겁니다. 배고파도 님 그리워 우는 새, 예수님 보고 싶어 우는 새...
요한복음 6장에 보면 오천 명을 먹였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스타로 만들어서 야, 이거 떡 주고 빵 주는구나. 이제는 나 일 하지 않아도 되겠네 하고 그 사람은 줄기차게 예수님 따라 다녔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휙 돌아봤습니다. 그러니 멈칫 했겠지요. 너 왜 따라 오는데? 너희 내 떡 먹고 배부른 까닭이지? 너희 예수 왜 찾냐 말입니다. 정말 님 그리워 찾고 있습니까? 아니올시다입니다. 그러면 예수한테 기도하면 복 주고 몸 건강하게 해 주고 축복 해 주고 출세하게 해 주고 이 땅에서 성공할 줄로 여기고 따랐다 말이죠. 그러니까 그런 예수는 가짜 예수입니다.
예수는 말씀하셨습니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셔라. 너희들에게 진정 내가 너희들 그렇게 떡 바치고 돈 바치고 출세 바치고 이 땅의 성공, 축복 바쳤기 때문에 나는 이렇게 십자가에서 살이 찢어지고 피를 흘려야 했다. 그 피다 말이죠. 그 피를 마시면서 네 죄가 무엇인지 알고 그 살을 먹으면서 대체 내가 왜 이 예수의 죽은 살을 먹어야 되는가 그 이유를 알라 이 말입니다.
영생이라 하는 것은 양식 해결한다고 주워지는 것이 아니라 왕 되신 하나님은 어떤 일이 나도 왕께 반해버리고 홀딱 반한 상태, 예수님만으로 나는 족합니다하는 기적을 소지한 사람, 그런 사람에게 진정한 영생이 오는 겁니다. 목회자에게 우상이 뭡니까? 교회입니다. 교회가 없어야, 목회자에게 교회가 없어야 됩니다. 예수님이 있어야 됩니다. 장로님들께 우상이 뭡니까? 역시 교회입니다. 내가 장로인데 왜 우리 교회 않 크나, 저 교회 내 친구가 장로인데 저 교회는 크는데, 아이고 죽을 힘도 없어, 같은 장로인데. 이게 무슨 우상입니까?
자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아비멜렉을 모압에 보내었던가. 그들은 자기 멋대로 했죠. 왜? 아까 다시 이야기 하겠습니다.잊어버렸죠? 사사시대는 모든 행동을 어떻게 처리합니까?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자기는 옳죠. 하나님 보시기에 부끄러울지언정 자기 멋대로 해버리는 겁니다. 에이 배고픈데 이사 갔다가 다시 오면 될 것 아닌가 이런 식으로. 올 수 있습니까? 다 죽어 버렸는데. 남자들은 다 죽어 버렸는데. 남은 것은 과부들 밖에 없어요. 다 죽었어요. 옛날에 여자가 혼자 산다는 것은-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기절초풍할 지경입니다. 여자가 안 되어봐서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마는 제가 백 번 이해하는 것은 여자분이 이 세상을 험난하게 살아간다는 것은-정말 이 세상은 험합니다-여자한테 고통을 줄 만큼 이 세상은 험난해요. 왜? 이 세상은 힘과 힘의 대결이기 때문에. 연약한 여성이 자기 밥벌이 하며 자기 자식 키운다는 것은 이것은 죽을 맛입니다. 지옥입니다. 그건 그동안 남편이 방패막이 해주고 돈 갖다 벌어 주니 배부르니까 바가지라도 긁을 힘이 생기고, 양식 주니까 철 따라 옷 해줬냐 하면서 따지고 얘기하지 나중에 그 방패막이 남편이 죽어버리면 그 자식 어떻게 키웁니까? 공주병 들어 마나님 행세하다가 나중에 남의 식모살이해야 할 형편인데 그 자존심을 어떻게 합니까?
바로 하나님께서 엘리멜렉, 다시 말해서 다른 가정이 아니예요. 하나님이 자칭 하나님은 나의 왕이다 하는 그 가정이 정상적으로 인간적인 상식 수준에서 그 약속의 땅을 떠나거 말았습니다. 하나님 없는 곳으로 갔습니다. 갔는데, 그 가정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남편 죽이고 자식 둘 죽였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이유는 하나. 하나님이 바로 이게 왕이다, 네가 상관했던 왕은 엉터리 환상적인 왕이었고, 진짜 이게 왕이다, 이게 왕! 네가 그동안 하나님은 왕이다 왕이다 하는 것은 사실 하나님이 왕이 아니고 네가 왕이었어. 네 자신이 왕이다 이 말이다. 그래서 네가 모든 행위를 네 멋대로 네 마음대로 한거예요. 자기 어렵다고 해서 하나님 없이 슬쩍 타협하고 양보하고 , 안 믿는 사람에게 고개 숙이고 이런 식으로 요령껏 수단 부려 가면서 이 땅에서 남한테 기죽지 않아 가면서 나는 돈 벌었다 떵떵거리면서 살아보자, 기 안 죽고 살아보고 남 지배 하면서 살아보자 그래서 그런 일통해서 하나님께 영광 돌렸다는 소리 들어보자, 십일조 많이 해서 교회에서 야, 복 받았네 그런 좋은 소리 한 번 들어보자. 그런 식으로 살아왔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왕이 아니고 자기가 왕입니다. 자기가 왕...
예수님이 뭐라고 했습니까? 나는 왕이다 했거든요. 그러나 예수님이 왕이었습니까? 꼬라지 좋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살았던 그 행색보고 예수님 따랐던 사람 누가 있습니까? 아무도 없었어요. 그래서 아무도 안 따른 거예요. 십자가 죽을 때 아무도 안 따라 왔습니다. 보잘 것 없는 여인들만 몇 명 따라와 구경했어요. 참된 하나님은 안 죽었다 이 말이죠. 그런데 우리는 생각하기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하면, 전능하신 하나님을 오해하고 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내가 기도하면 다 이루어지는 줄로 이렇게 착각하고 오해하는 거예요. 한국 교회가 그렇게 잘못 가르쳐 준 거예요. 진짜 전능하신 하나님은 바로 네가 한 번도 왕이라 인정해본 적 없는 그 정도로 네가 왕이다는 겁니다. 부처님 오신 날이 5일 남았는데 그 부처님 가르침이 뭡니까? 요세 부처야 무당이고, 진짜 가르침이 뭡니까? 아무 것도 믿지 마라.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여라 욕심을 버려라 욕심을 버리는 그 마음조차도 버려라. 이것이 불교의 참 가르침입니다. 이게 왜 그러냐? 천상천하 유아독존. 이 세상에 아무 것도 믿을 것 없고, 네 마음이나 믿어라. 네 주먹이나 믿어라 이 말입니다. 그러니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다 부처예요. 다 부처라 이 말이예요. 다 중생들은 다 부처입니다. 제가 지금 무슨 설교를 하고 있습니까? 정신이 없어서...천상천하 유아독존. 바로 우리들 자신 하나하나가 다 왕이라 이 말이죠. 그 자존심을 포기하지 말고 그 삶을 승화시키고 해탈해라 이 말입니다. 부처는 믿을 대상이 아니라 모범의 대상이라는 겁니다. 나를 치는 모든 잡념을 버리고 나 스스로 신이 되었다. 너도 나처럼 따라오면 신이 될 수 있다.
기독교는 뭐라 합니까? 너는 쪼다야. 너는 죽어야 돼. 심판 받아야 돼. 너는 지옥 가야 돼. 네가 살 수 있는 것은 영생인 예수님 밖에 없어. 이게 기독교 아닙니까? 이거는 자기를 포기하라는 겁니다. 우리는 그렇게 교리를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 상황에서 진짜 하나님이 우리를 어느 정도 몰고 가는지 어떻게 우리를 인도하는지는 우리는 구경했습니다. 왜? 우리가 깨어질까 싶어서. 진짜 실패자가 실패자로 드러날까 그게 두려워서. 내 자존심 깨어지는 게 그렇게 안타까워서. 자기의 자존심 하나 만큼은 고이고이 간직하고 있다 이 말이죠. 인간은 양파 껍질 같아서 벗기면 또 죄가 나오고 또 벗기면 또 죄가 나옵니다. 아무리 벗겨도 끝도 없는 죄가 나오는데, 그 마지막 죄가 뭡니까? 나는 왕이다, 나는 신이다, 천상천하 유아독존, 이 세상에 나 밖에 없다, 내가 살아야 하는데 의미가 있다, 내가 진정 존재 하는 데 의미가 있는 거예요. 모든 것을 나 중심으로 생각하는 거 이겁니다. 바로 이 죄 때문에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피를 흘렸습니다. 니가 왕이 아니다, 내가 진정한 왕이다. 네가 심판할 권리가 있는 것이 아니라, 심판자는 너 때문에 창 찔려 죽은 내가 마지막에 다시 구름 타고 와서 너를 심판하리라 이것이 예수님의 주장이고 예수님의 뜻입니다. 너는 내가 없으면 끝이고, 내가 왕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나오미 가정의 문제가 뭡니까? 그 사사시대에 각각 그 소견에 옳은 대로 행했던 그런 시대에 오늘날과 똑같은 시절에 왕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 왕 되는 것은 다 죠져 버리는 겁니다. 자칭 왕이라는 것은 다 죽여 버리는 거예요.
제가 한 목사로서 여러분에게 기도하고 바라기는 실패하시기 바랍니다. 다 깨어지시기 바랍니다. 기도한 것 다 부서지기 바랍니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다 실패할 수 있습니까? 실패하고 있는데 뭐, 어떻게... 실패하고 있잖아요. 자기 소견대로 하고 있잖아요. 하세요! 자기 소견대로 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제가 하나 믿는 것은 주님 살아계시니까 반드시 택한 백성은 다 깨뜨리게 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왕이 아니구나, 바로 여전히 왕 되시는 주님은 여전히 살아계시는구나. 빙그레 주님께서 웃으시면서 너 신 아니지? 너 죽지? 너 흙에 불과하다 말했지? 이구, 진작 알아야지 진작. 왜 쓰잘떼기 없는 그런 짓거리들을 했는가... 진작 진짜 나는 실패해도 마땅한데, 지금까지 살아온 것은 내 덕이 아니라 다 왕 되신 주님께서 살려주신 덕인 줄 알아라. 사람 죽는 것도, 지 맘대로 사는 게 아닙니다. 오늘 밤에 내 영혼 데려가면 누구 것이 되겠습니까? 그러니 지금도 살려주고 살고 죽이는 것을 주관하는 하나님이 아직도 살아계시는구나. 왕을 여러분에서 하나님으로 바꾸시고 그 바꾼 하나님께 홀딱 반하시기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자기 멋대로 행동하고 자기의 소견대로 행동하는 시절이 오늘날 시절과 어쩌면 똑같습니까. 그러나 우리 보기에 가슴 아픈 그러한 사태가 벌어진다 할지라도 여전히 주님은 하늘에서 빙그레 웃으시면서, 때로는 비웃으시면서 계신 줄 압니다. 세상이 뭐라 해도 주님 보게 하시고 세상이 남이 비웃는다 할지라도 길이요 진리요 영생되신 주님을 포기하지 않도록 도와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