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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과 믿음

'잠언'속의 그리스도 65 - 현실화의 착각 161017 본문

구약 설교, 강의(이근호)/잠언

'잠언'속의 그리스도 65 - 현실화의 착각 161017

정인순 2016. 10. 17. 22:17

음성                  동영상

 

 

 

[16 대구강의] '잠언'속의 그리스도 65 - 현실화의 착각 
                                                                                 
                                                         

16,10,17  강의 이근호,  정리 구득영

 

오늘은 교재 179페이지부터 살펴보자.

** 예수를 믿는 것이 도를 닦는 생활이 아닙니다. 세상살이에 충실하게 살다가 예수를 믿고 난 다음에 세상살이를 보는 관점에 어떤 차이가 나는가를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만일 차이가 남을 모르면 다시 세상으로 돌아가 버립니다. 

 

◈ 도를 닦으세요 !!

여기에 "예수를 믿는 것이 도를 닦는 생활이 아닙니다" 라고 되어있는데, 제가 왜 이런 말을 언급했는고 하니, 사람들이 교회에 와서 말씀을 듣게 되면 자동적으로 도를 닦는 쪽으로 방향을 틀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도를 닦으면 자가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자아가 더 커지는 계기가 된다는 말이다.  

말씀이 없을 때는 서로 친하게 지내다가, 성경말씀이 오게 되면 이상하게도 개인구원의 성향을 보이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신에 대해서 자기 자신의 발걸음을 옮기게 되는데, 자기를 버리는 것이 아니라, 탈피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주섬주섬 자기가 괜찮은 존재로 변환될 수 있는 자료들을 끌어 모으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신의 세계가 여기에 있고 인간의 세계가 이렇게 있다고 하면, 교회에 가던지 누구를 통해서 말씀을 제공받게 되면, 갑자기 어떻게 되는가? 이 '나' 라는 것이 점점 더 확장되고 커진다는 것이다. 사실 이것이 하나님의 전략인데, 평소에는 자기가 이렇게 작아 보이다가, 말씀이 오게 되면, 말씀에 이끌린다기보다는, 그 말씀을 이용하면서 자기가 신으로 인정받고 싶어하는 충동을 발휘하게 된다는 말이다.

왜 그렇게 되는고 하니까, 인간 군상들이 이렇게 있다고 하면, 우리 인간 내부에는 각자 무슨 요소가 다들 들어있는고 하니, "니가 신이 되어라" 라고 하는 속성이 공통적으로 잠복이 되어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그 잠복되어있던 자기 절대성이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유감없이 바깥으로 발산을 하게 된다는 말이다. 

 

◈ 권력층, 혹은 권세층 !!

그러면 이것은, 즉 인간이 이렇게 있다가 신의 세계로 가게 된다면, 여기의 이 빈자리가 진공상태가 아니라 다른 무엇이 들어있는데, 그 다른 것을 무엇이라고 하는고 하니, 그것이 바로 권력인데, 성경에서는 이것을 권세라고 한다는 것이다. 저는 이것을 글자를 하나 더 붙여서 '권력층', 혹은 '권세층' 이라고 표현하고 싶은데 말이다. 

우리 인간의 입장에서 신을 찾아갈 때는, 반드시 거쳐갈 수밖에 없는 중간과정과도 같은 것이 있는데, 그게 바로 권세층이라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이 권세층을 뚫고 개인을 만나는데, 마치 두꺼운 먹구름과도 같은 것인데 말이다. 예수님께서 이 두꺼운 먹구름을 뚫고 찾아오셨을 때,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고 하니, 인간들이 이 두꺼운 먹구름 아래서 통제를 받고 있고 지배받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이 신을 향할 때는 맹탕으로 유유자적하게 통과하는 것이 아니라, 이 권력층을 뚫고 가게 되어있다는 것이다. 그게 확실히 맞다는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 예수님께서 자기 백성을 구원할 때, 그 사람은 개인구원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상을 개인구원이 아니라, 그 개인에게 무엇이 함께 있는고 하니, 두꺼운 권력층을 아울러서 보여준다는 말이다. 

 

◈ 다시 시작하면 !!

새로 오신 분이 있어서 다시 시작하겠는데, 하나님께서 말씀을 주시게 되면, 인간들은 여기서 반응을 나타내게 되는데, 그냥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말씀을 따라서 신을 찾아가겠다고 나선다는 것이다. 여기서 필연적인 것이 무엇인고 하니, 도를 닦는 경우들이 발생하게 된다는 말이다. 

물론 인간들은 이것을 모르는데, "지금보다 더 괜찮은 내가 되어서, 이왕 하나님을 만나는 것, 더 괜찮은 존재로 변화가 되어서 만나겠다" 라고 하지만, 막상 진짜 하나님 쪽에서 내려온 예수님의 그 과정을 보니, 거기에 두꺼운 권력층, 혹은 성경대로 하면 두꺼운 권세층이 함유되어 있다는 것이다. 

 

◈ '정치적' 이라는 의미는?

이 권세층을 우리가 아는 말로 표현하면, '정치적' 이라고 할 수 있는데, 힘이 모이면 정치가 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정치적' 이라는 것이 무슨 말인지 쉽게 설명을 해드리면, 정치라는 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옳고 그름의 문제가 말이다.

개인적으로 자기가 도를 닦게 되면, 사람들은 "하나님, 제가 옳은 일을 했습니까? 아니면 나쁜 일을 했습니까?" 라고 하면서 신경을 바짝 쓴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기 때문에, 자기가 선하고 착한 일을 해야만 천국에 갈 수 있다고 여긴다는 말이다.

 

◈ 부자청년은 이것을 몰라 !!

마태복음 19장에 나오는 부자청년이 그러한데, 그 부자청년을 무엇을 의식하지 못했는고 하니, 자기가 권세층을 이룬다는 생각은 하지 못하고, "내가 어릴 때부터 십계명을 지켰습니다" 라고, 즉 하나님이 보시기에 바르게 살았다고 나온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자기는 옳고 그름에서 자기는 옳은 쪽에 속해서 살았고, 나쁜 쪽은 항상 배타시하면서 살았다는 말이다. 하지만 정작 부자청년이 자기가 속해있는 것은 무엇인고 하니, 옳고 그름을 뛰어넘는, 그것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정치적인 권세에 휘말려 있었는데, 하지만 그것을 부자청년은 전혀 알지 못했다는 것이다.

 

◈ 주님께서 무엇을 뚫고서 나에게 찾아오셨는가?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리는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 예수님을 믿는 것이 도를 닦는 것이 아니라고 하면, 즉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고 하면, 그러면 무슨 문제인지, 그러한 이슈를 우리가 던지면서, "내가 신을 향해서 어떻게 가는가?" 라는 것보다도, "주님께서 무엇을 뚫고서 나에게 찾아오셨는가?" 라고, 그것부터 먼저 정립이 되어야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진도를 나가기 전에 언급하고 싶은 것은, 이 '정치적' 이라는 것이 얼마나 실제적이고 현실적인지를, 그것을 몇 가지 예를 통해서 설명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평소에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산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정치적 노름에 불과한지를 말이다. 이것은 성경에 나오는 것이 아니고 세상의 정치적 이야기이니 그냥 들어놓으면 도움이 되지 싶은데 말이다.

 

◈ 이상적 기독교 국가, 남아프리카 !!

'만델라' 라는 유명한 분이 있는데, 아프리카의 제일 남쪽에 있는 나라인 남아프리카의 대통령을 역임하신 분인데 말이다. 바로 그 남아프리카라는 나라는 1880년도에 네덜란드의 기독교가, 그게 개혁주의이고 곧 장로교인데 말이다. 그들이 아프리카의 땅을 접수해서 거기에 이상적인 기독교 국가를 건설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그러니 벌써 시작부터가 무엇인가? 기독교인데, 그러니 진리의 문제인데, 즉 옳고 그름에 있어서 자기들은 옳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 옳음은 이 땅에서 결국은 무엇으로 나오는고 하니, 정치적인 모습을 띌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런 정치적인 모습을 띠는 것이 흔히 말하는 공동체 운동인데, 옳고 그름 가운데서 옳은 쪽, 즉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자의 집단이 되면, 이게 공동체가 되고 정치적이 되고 만다는 것이다.

이 옳고 그름을 그 이전에는 성경말씀이 결정했는데, 그런데 이제 공동체가 형성되고, 거기서 정치적 의식이 발달하게 되면 어떻게 되는가? 무엇이 옳은 것이 되는고 하니, 자기들의 모임을 유지해주는 것은 옳은 것이 되고, 자기들 모임에 대해서 공격을 한다든지 흠을 내게 되면 무조건 옳지 않은 것이 되고 만다는 것이다.

 

◈ 어둠의 권세 !!

그것이 바로 유대나라인데,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말이다. 여기에 대해서 예수님은 뭐라고 하시는가? 어둠의 권세라고 하는데, 그것은 곧 권력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권력은 반드시 정치적 모습을 띌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미 정치적 모습의 공동체나 조직이 되어버리면, 성경말씀에서의 옳고 그름은 그만 다 날아가 버리고, 우리 조직, 혹은 우리 집단, 혹은 우리 교회, 그렇게 되고 만다는 것이다.

(마 16:18)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그러니 아무리 봐도 건전하기 짝이 없는 자기들의 집단에 대해서 공격을 하게 되면, 그것은 사탄에 속했다고 하는, 그런 의식을 각자가 분배받게 된다는 것이다. 지금 늦게 오셨지만, 아니 우리가 빨리 시작한 것 같은데, 아무튼 지금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말이다.

 

◈ 너무나 두꺼운 비계 덩어리 !!

그렇게 예수님께서 뚫고 왔을 때, 사람들은 말씀대로 바르게 살면 하나님을 만났다고 했지만, 그런데 그들은 중간과정을 놓치고 말았다는 것이다. 권력을 한 마디로 말하면, 두꺼운 비계 덩어리라고 할 수 있는데, 매우 조밀하고 아주 두꺼운 지방질이라는 말이다. 그러니 우리는 그 권력층을 도저히 통과할 수가 없는데, 너무 두꺼워서 아무리 잘 드는 칼이라고 해도 자를 수가 없다는 것이다.

하다가 하다가 그만 숨이 막혀서 그만 갇히고 마는데, 제 아무리 노력해도 "여기까지가 끝인가 보오" 라고 하면서 마치고 만다는 말이다. 그러니 결국은 예수를 잘 믿는, 그러한 집단화가 되는 것이 인간 노력의 마지막 형태로서, 우리는 그렇게 갇히고 만다는 것이다. 그러니 주님에게 가지도 못하고 자기 중심의 권력층에 머물고 만다는 말이다.

그런데 1880년도에 네덜란드의 개혁주의자들이 아프리카에 와서, 그 당시 아프리카는 주인이 따로 없었는데, 그냥 차지하는 사람이 곧 임자라는 것이다. 물론 원주민은 있었지만 무시하니 말이다. 그렇게 해서 남아프리카라는 나라를 세웠는데, 그렇게 해서 장기 집권을 한 것이 국민당이라는 것이다. 
  
이들이 1950년에 인구 규제법을 만들어서 흑인들이 사는 지역과 백인들이 사는 지역을 구분했는데, 그것은 창세기 9장에 의해서 말이다. 창세기 9장에 무엇이 나오는가? 함의 자손은 저주를 받는다고 되어있는데, 함이 노아의 아들인데, 아버지가 포도주를 마시고 벌거벗은 것을 보고 덮어주지 않아서 그렇게 되었다는 말이다.

(창 9:24) 노아가 술이 깨어 그 작은 아들이 자기에게 행한 일을 알고
(창 9:25) 이에 가로되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
(창 9:26) 또 가로되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가나안은 셈의 종이 되고
(창 9:27) 하나님이 야벳을 창대케하사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 가나안은 그의 종이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

 

◈ 계몽운동 !!

이 함의 자손들이 지금의 흑인들인데, 그러니 흑인들은 축복을 받는 계열로부터 반드시 저주를 받는 것이 하나님의 합당한 뜻으로서, 그래서 창세기 9장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백인들은 흑인들을 필히 굴복시켜야하고, 그 방법이 무엇인고 하니, 복음전파이고, 또 하나는 계몽이라는 말이다. 

계몽이라고 하면 우리는 생각나는 것은 심훈의 '상록수' 인데, 즉 무식한 조선의 백성들을 계몽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무식해서 일본에게 그만 잡아먹혔기 때문에 말이다. 그래서 글을 깨우치고 해서 새로운 선진문물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대학생들이 시골에 가서 글을 가르치고 하는데, 그 장소가 예배당인데, 아이들은 그게 궁금해서 바깥에서 나무에 올라가서 예배당 안을 들여다보고 말이다. 상록수라는 영화를 보면 그런 장면이 나온다는 것이다. 그게 바로 1900년 초반에 3.1운동이후에 일어난 운동인데, 그러니 소극적인 독립운동의 일종으로서 계몽운동이었다는 것이다.

아무튼 그런 핑계를 대면서 그들이 흑인거주지역과 백인거주지역을 구분했는데, 바로 여기에 반발한 사람이 바로 만델라라는 것이다. 노벨평화상을 받았는데, 얼마나 그들에게 핍박을 많이 받았는지 모르는데 말이다. 그들은 그게 하나님의 뜻이라고 했지만, 결국은 그것이 민주화운동에 의해서 꺾여졌다는 것이다.

 

◈ 민주주의, 그 본질은?

그런데 이 민주주의라는 것이 무엇인고 하니, 여기에 대해서 제대로 이야기한 사람이 있는데, 바로 '함석헌' 이라는 분인데, '씨알의 소리' 라고, 즉 민중의 소리라고 할 수 있는데 말이다. 민주주의라는 것은 무엇인고 하니, 그 권세가 위에서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밑에서 모아서 위로 올라갈 때, 그것이 가장 이상적인 국가체제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민주주의의 가장 기본은 무엇인고 하니, 종교, 이념, 직업, 성별 등, 그 모든 차별을 없앤다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이게 가능하냐는 말이다. 인간이 태어나게 되면, 그 태어난 자체가 이미 자기가 원하는 것과 원하지 않는 것을 차이가 나게 밀어내는 타인을 누가 생산한다는 말인가? 자기가 생산하게 되어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자기가 생산하는 타인, 즉 남을 동일하게 보는 것이 이상적인 권력체제이고, 인간이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정치체제라고 하는 것이 민주주의인데, 그런데 그게 과연 가능하냐는 것이다. 우선 자기부터 좋은 쪽과 싫은 쪽을 만들고 당기고 밀어내는데 말이다. 

그런데 전 세계의 229개국 치고 이 민주주의가 이름에 붙지 않은 나라가 거의 없는데, 이 민주주의 이념적으로는 모든 것이 평등하다고 하지만, 사실 노리는 것이 있는데, 그게 바로 경제적 평등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경제적 평등이 과연 가능하냐는 말이다. 사람들은 가능하지도 않은 것을 자꾸만 내세우는데, 제가 보기에는 악마적이라는 것이다.

정주영 회장이 무엇이라고 했는가? 백명에게 돈 2천 만원을 주고 20년 뒤에 보게 되면, 재벌은 재벌이 되고 거지는 거지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결국은 인간의 개인적인 성향과 환경에 따라서, 거지가 될 자는 거지가 되기 마련이고, 매일같이 노름을 하면서 다 날린다는 것이다. 그리고 열심히 노력해서 부자가 될 사람은 부자가 된다는 말이다.    

민주주의는 이념적으로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 라는 것인데, 1789년에 귀족을 물리치고, 인민에 의해서 인민을 위한 새로운 국가를 만들자고 해서 프랑스에서 혁명이 일어났는데, 그리고 이 혁명은 1775년에 일어났던 미국독립운동의 영향을 받았고 말이다. 그런데 그렇게 해서 평등하게 된 것이 아니라, 어떻게 되었는가?

상공인들이 주동이 되어서 귀족을 물리치기는 했지만, 그러나 이제는 그 주동자들이 귀족을 자리를 차지하고, 이제는 무식한 농민들이 그들 밑에서 억압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러자 그들이 또 들고 일어났지만 그만 눌리고 말았는데, 그래서 부르주아가 그만 지배자가 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러니 민주주의라는 이념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돈이 중요한데, 즉 돈이 있고 없음이 이 세상의 현실을 구성하는 기본적인 힘이 된다는 것이다.

 

◈ 인간조건 !!

마태복음 4장에 보면, 악마가 예수님을 먼저 만나는데, 이 악마가 가장 먼저 제시하는 것이 무엇인가? 바로 "경제적 여건을 갖추어라" 라는 것인데, 저는 이것을 4글자로 '인간조건' 이라고 부르고 싶은데 말이다. 그게 세 가지라는 것이다. 그 첫 번째 조건이 마귀가 제시한 것이 경제적인 것인데, 그리고 두 번째가 남과 어울려서 살아가는 것이고, 세 번째는 인간의 욕망은 세상전부를 인간화시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악마의 세 가지 유혹이 인간조건의 전부인데, 이 세 가지 인간조건이 달성되지 않으니 이것을 발전시켜서 인류조건으로, 즉 인류사회가 구성해야하는 조건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민주주의나, 모든 경제이론들이 다 여기서 나왔다는 말이다. 이 땅을 지배하는 악마가 제시한 이론이 인간조건에 의해서 다 나왔다는 것이다.  

 

◈ 인간은 존엄하다 !!

그 인간조건의 이념이 무엇인고 하니, "인간은 존엄하다" 라는 것인데, 어느 정도로 존엄한고 하니까, 중세 때는 존엄하다는 말을 누구에게 사용했는가? 하나님에게 했는데, 그런데 근세에 들어오면 인간도 존엄하다고 하면서 다같이 나간다는 말이다. 그런데 초창기에는 정작 흑인들은 존엄하지 않는데, 누구만 존엄한가? 백인들끼리만 존엄하다는 것이다.

이것이 1880년에 남아프리카에 있었던 정치적 운동인데, 그런데 만델라가 나와서, 그게 간디로 서로 연결되어지는데 말이다. 이들이 주장하는 것이 무엇인고 하니, "왜 백인만 존엄하고 백인끼리만 평등한가?" 라는 것인데, 그러니 흑인종과 황인종도 좀 넣어달라는 것이다.

그러면 백인들은 조금 전에 이야기한 창세기 9장을 근거로 해서, 즉 "함의 자손은 저주를 받고 셈과 야벳의 자손은 창대해야한다" 라는 것인데, 그렇게 흑인과 황인을 억압하는 정당성을 성경에서 찾았다는 말이다. 그런데 민주주의 이념 속에는 무엇이 들어있는가? 모든 종교는 차이가 없고 평등하다는 것인데, 그러니 성경만이 경전이 아니고 불교나 이슬람교의 경전도 역시 경전이라는 것이다. 

 

◈ 간디의 민족주의 !!

간디가 내세운 것이 바로 그것인데, 그런데 간디는 민주주의보다도 더 우선적인 것이 있다는 것인데, 그것이 바로 민족주의라는 것이다. 그 민족주의가 1914년도에 간디에 의해서 시작이 된다는 말이다. 그래서 지금의 민주주의는 민족주의의 바탕 위에서의 민주주의라는 것이다. 

간디의 민족주의에는 무엇이 포함되는고 하니, 시크족과 모슬렘, 그리고 힌두교, 이 모든 것을 인도종족을 위해서, 그들이 아리안족인데, 사실 이들도 본토족이 아니고 위에서 밀려서 내려온 자들인데 말이다. 아무튼 우리 아리안족을 위해서 종교적인 차이를 접어두고 단합해서 영국을 몰아내고 인도를 독립하자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3.1운동의 정신인데, 즉 기독교든 불교든 천도교든 간에 우리 한민족은 일본의 압제에서 이겨내야 한다는 것이다. 제가 처음에 뭐라고 했는가? 이 모든 것이 '권세적' 이라고 했는데, 그러니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뭔가 천국에 가겠다고 하는데 말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무엇을 모르는고 하니, 자기 쪽에서 천국에 가는데 있어서 그 중간과정을 생각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말씀대로 가보니, 여기에 권력층이라고 했고, 그것을 예를 들어서 비계 덩어리라고 했다는 말이다. 그런 빡빡한 비계 덩어리에 그만 갇히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러니 자기가 믿는 종교에 의해서 자기가 믿는 경전을 선택했고, 그래서 자신의 자리를 정당화하고 합법화를 하는데, 그러니 옳고 그름에 있어서, 자기 것을 건드리면 무조건 그른 것이 되고, 자기 주장은 무조건 옳다고 하는, 이런 모습들이 결국 무엇을 형성한다는 것인가? 그런 자들의 집합이 권력을 형성한다는 말이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을 죽였던 유대교의 권력층인데, 이런 과정을 우리가 생략할 수가 없는데, 우회를 해서도 안 되고 말이다.

 

◈ 세계1차대전과 아르메니아 !!

1914년에 1차대전이 일어났는데, 이것은 무슨 전쟁이고 하니까, 민족주의가 퍼지면서 민족과 민족의 전쟁인데, 국가와 국가의 전쟁은 2차대전이고 말이다. 1914년 6월 28일에, 당시 오스트리아 영토였던 보스니아의 사라예보에서 오스트리아의 황태자 부부가 세르비아의 민족주의자에게 암살을 당한 사건이 벌어지고 만다는 것이다.

그것이 그만 계기가 되어서 1차대전이 터지고 마는데, 오스트리아가 세르비아에게 선전포고를 하면서 말이다. 물론 그 이전에 공업이 급속도로 발달하면서 식민지 등으로 인해서 각 나라마다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 분위기가 별로 좋지는 않았지만, 하지만 아무도 이것이 세계대전까지 이어질 줄은 몰랐다는 것이다. 

그런 가운데 '아르메니아' 라고, 그들의 종교가 무엇인고 하니, 그리스정교라는 것이다. 로마제국 때 동과 서로 분리가 되면서 동쪽에 속한 것이 그리스정교라는 말이다. 이것이 조금 더 오래갔는데, 이들의 배후에는 러시아가 있었다는 것이다. 러시아도 그 당시에는 민족주의를 표방했었는데, 그 다음에 국가주의가 등장한다는 말이다. 그게 제국주의 식민지 경제원칙으로 인해서 그렇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러시아가 배후에 있어서 그들이 그리스정교를 믿게 되었는데, 옛날에는 어떻게 종교를 결정하는고 하니, 그게 무슨 책에 보면 나오는데, 책제목이 기억이 나지 않는데 말이다. 그때는 일가친척이 믿는 종교를 그냥 수용했다는 것이다. 그러니 왕이 믿는 종교가 곧 자기 종교가 되는데, 이것을 '국가종교' 라고 하는데 말이다. 

이것은 국교는 아니고, 국교가 되면 종교국가가 되는 것이고, 이것은 온 백성이 다 믿고 신도가 되는 것이고, 그게 아니라 민족을 단위로 해서 우리가 거의 같은 종교이니, 마치 집안이 교회에 나가면 다 같이 나가듯이 말이다. 그게 곧 국가종교인데, 그렇게 아르메니아의 배후에는 러시아가 있어서, 그게 카스피해 지역인데 말이다.

여기서 전쟁이 일어났는데, 북쪽의 러시아와 남쪽의 이슬람 국가인 오스만 투르크와 붙었다는 것이다. 이때는 러시아가 이겼는데, 그런데 그들이 전쟁을 하는 과정에서 아르메니아 사람들이 무려 150만명이나 학살을 당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1차대전 때 이 오스만 투르크가 망하고 터기 공화국이 세워지는데, 물론 여기에 대해서 터키 쪽에서는 150만명이 아니고 30만명이라고 하는데, 하지만 그 숫자도 엄청나다는 것이다.  

그러니 종교문제가 결국은 땅 문제와 권력 문제와 정치적 문제가 결부되어서 150만명이라는 엄청난 숫자가 살해를 당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리스정교니까, 그들을 기독교를 믿는 자들이라고 할 수도 있는데 말이다. 만약에 우리가 거기에 살아서 그런 일을 당했다고 한다면, 그것을 누구에게 하소연을 할 수 있겠는가? 물론 하나님에게 하소연을 할 사람도 있지 싶은데 말이다.

 

◈ 1947년에 대만에서는?

1947년도에 대만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고 하니, 5.18 민주화운동과 같은 것이 일어났는데, 그때 5만명이나 죽었다는 것이다. 그때 대만에서는 국민당의 장개석이 쫓겨서 대만에 왔는데, 대만에는 이미 본토인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들을 '본성인' 이라고 하는데, 그리고 모택동에서 쫓겨서 장개석과 같이 온 자들을 '외성인' 이라고 하고 말이다. 

그런데 권력을 누가 잡았는고 하니, 외성인들이 잡았다는 것이다. 국민당이 말이다. 그런데 국민당이 권력을 잡아서 본성인들을 차별하니 데모가 일어났는데, 1947년 2월 28일에 무려 5만명이나 죽이고 말았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광주에서 죽은 숫자는 여기에 비교도 안 되는데, 그렇다고 해서 그게 덜 비극적이라는 것이 아니고, 전두환이 간첩이 개입되었다고 하면서 유언비어를 퍼뜨려서 그런 끔찍한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대만은 희생을 당한 숫자가 무려 5만이나 되는데, 이것이 바로 민족주의라는 것이다. 정치에 있어서는 민족이 우위가 아니고 종교가 우위였던 시절이 있었다는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종교도 아니고 민족도 아니고 국가가 우위에 있는데, 이렇게 국가주의가 되면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 그런 경제적인 문제가 생기게 된다는 것이다.

 

◈ 1970년의 '칠레 전투' !!

또 한 가지의 예를 들면, 1970년에 '칠레 전투' 라는 것이 벌어지는데, 미국이 남미전체가 공산화가 되는 것을 반대해서 일어났는데 말이다. 그 당시는 미국에 남미를 상대로 해서 엄청난 이익을 챙기고 있었는데, 그들 나라의 원료를 싼값에 가지고 가서 비싼 값으로 물건으로 만들어서 팔아먹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20만명의 정예요원을 미국에서 훈련을 시키고 하면서 말이다.

그러다가 보니 미국과 손을 잡은 엘리트들은 너무 너무 잘 사는데, 반면에 일반 국민들 중에서는 무지무지하게 가난하게 사는 자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이 반란을 일으켰는데, 이들이 본토인들인데 말이다. 유럽에서 이민을 온 자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아르헨티나나 브라질도 그렇고 말이다.

그래서 남미가 미국의 제국주의에 염증을 느껴서 공산화가 되기 시작하는데, 경제적 평등을 요구하면서 말이다. 그래서 칠레에서는 사회주의자가 과반 이상의 득표로 대통령으로 당선이 되었는데, 그런데 미국에서 자금을 제공해서 쿠데타를 일으켜서, 그만 미국의 자본주의를 옹호하는 대통령을 세웠다는 것이다. 사회주의가 퍼지는 것을 두려워해서 말이다.

 

◈ 1960년의 베트남 전쟁 !!

1960년의 베트남 전쟁도 역시 그러한데, 그 당시 베트남이 사회주의를 표방했는데, 그래서 베트남이 중국으로 돌아설까 싶어서 미국이 무슨 짓을 했는고 하니, 국민들의 지지도 받지 못하는 자를 대통령으로 해서 남쪽에 국가를 세웠는데, 하지만 결국 호치민에 의해서 공산화가 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국민들의 지지를 전혀 받지를 못하니 아무리 미국이 어떻게 하려고 해도 되지 않는데, 그야말로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것이다. 물론 지금의 베트남은 공산사회주의적 입장에서의 자본주의 국가라고 할 수 있는데 말이다. 물론 체제는 사회주의 국가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리고 남미의 엘살바도르의 경우에도, 미국의 자본에 의해서 수십 만명이나 죽고 말았다는 것이다. 거기에는 여기에 저항했던 유명한 '로메로' 라는 카톨릭 대주교가 있는데, 1980년 3월 24일에 예배를 드리던 중에 무장괴한에게 암살을 당하고 말았는데 말이다. 아무튼 미국이 공산주의자들을 처벌한다는 미명 아래서 그런 야만적인 짓을 저질렀다는 말이다.

이러한 일들을 보게 되면, 미국은 알다시피 개신교 국가인데, 개신교가 공산화를 막기 위해서 자본을 가지고 들어와서 억압을 했고, 그래서 그 나라의 국민들을 저항을 했는데, 그러니 기독교를 반대해서 종교를 무시하는 공산주의 국가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거기서 잘 먹고 잘 사는 자본가들이 결국 내세우는 것이 무엇인고 하니, 그만 기독교라는 이름의 권력층이 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 우리끼리의 지상천국을 건설해보자 !!

그렇다면 처음으로 다시 돌아가서, 인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 예수님께서는 뭔가 두꺼운 비계 덩어리를 통과해서 찾아오셨는데, 그런데 인간들은 말씀을 듣고 추구한 것은 이상사회였다는 것이다. 기독교의 이상사회, 곧 공동체인데 말이다. 즉 "우리끼리의 지상천국을 건설해보자" 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명분을 내세워서 성경말씀을 이용한다는 말이다.

그 밑바탕에 깔려있는 것이 바로 자본주의, 즉 신자유주의 경제체제라는 말이다. 아담 스미스가 이야기한 것인데, 즉 "붙을 놈은 붙고, 떨어질 놈은 떨어져라" 라는 것이다. 그러니 게을러서 가난한 것은 부자에게 군말할 자격이 없고, 오히려 부자와 가난한 자가 구분되는 것은, 게으른 자에게 돌아갈 마땅한 하나님의 징계이고 저주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잘 사는 사람은 근면하고 성실해서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막스 베버가 이야기한 자본주의와 개신교의 구조인데 말이다. 개신교는 무엇인고 하니까, 장래를 위해서 미리 아껴서 저축하는 것인데, 그러니 버는 대로 마구 써버리는, 그런 짐승과 같은 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위해서 참으면서 절약하는 삶을 살아가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그것이 모여서 자본이 되어서, 그 자본이 자본을 낳고 낳고 해서, 그렇게 해서 잘 살게 되면, 그것은 하나님의 보상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자본주의와 신자유의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 정당화가 된다는 말이다. 그러면 교회는 그것에 필요한 성경구절을 계속해서 남발을 하고 말이다.

그러니 이 두꺼운 비계층을, 이 권력층을 우리는 반드시 통과를 해야하는데, 그런데 사람들은 이것을 비켜나서 그냥 십자가를 믿고 천국에 가려고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실상을 전혀 이런 법이 없는데, 반드시 마귀적인 자기의 세력확장을, 그런 잠복되어있는 본성을 노출하면서 천국에 간다고, 그렇게 휘파람을 부는 것이 우리의 근성이라는 말이다.

우리는 이것을 부정할 수 없는데, 그러니 이러한 점을 우리가 굉장히 주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기가 잘 사는 것을 정당화하고, 그리고 못 사는 것도 역시 정당화를 해버리면서, 이 세상에 그렇게 계급이 있다는 것을 당연시한다고 하면 도대체 어떻게 되겠느냐는 말이다.

 

◈ 다시 정리하면 !!

방금 이야기한 것을 다시 정리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데, 여기에 무엇을 집어넣는고 하니, 그게 말씀의 현실화인데, 이렇게 말씀이 현실화가 되면 그러면 착함과 악함이 있는데, 그런데 말씀이 현실화가 되면, 착한 사람은 복을 받게 되고 악한 사람은 저주를 받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저주를 받은 사람은 가난하게 되고, 복을 받은 사람이 부자가 되게 되어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부자와 가난이라는 것이, 이것이 하나님께서 말씀을 주신 증거라고, 즉 이 땅에 하나님이 살아있다고 하는 증거라고 여긴다는 말이다.

그러니 이런 이야기를 좀 살만한 사람은 인정을 하는데, 누가 반발을 하겠는가? 당연히 가난한 사람들인데, 그러면 가난한 사람들은 어떻게 하는가? 그들도 말씀위주가 아니기는 마찬가지인데, 가난하다고 해서 권력을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들도 역시 권력을 추구하기는 마찬가지인데, 여기에서 해방신학이 나왔다는 것이다.

 

◈ 해방신학 !!

해방신학의 근거는 말씀이 아니고 민주주의인데, 지금 제가 오늘 이야기하는 것은 "민주주의가 과연 하나님의 뜻인가?" 라는 것인데, 전혀 그렇지 않은데, 오히려 악마적이라는 것이다. 함석헌에 의하면 민주주의를 씨알의 소리라고 했는데, 즉 민중의 소리라는 말이다. 함석헌이 이런 이야기를 했을 때는 그냥 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말씀을 가지고 했는데, 함석헌은 기독교를 초창기에 받아들인 인물인데 말이다. 

이 사람의 스승으로 다산 '유영모' 라고, 일제시대 때의 한국의 신학자가 있었는데, 이 사람은 성경에다가 노자사상을 더했다는 것이다. 노자의 도덕경을 번역까지 했는데, 이 노자사상이 무엇인고 하니, 놀자는 알아도 노자는 잘 모르지 싶은데(ㅋㅋ), 이 노자사상은 무위사상인데, 즉 "모든 것은 스스로 돌아간다" 라는 것이다. 그리고 톨스토이의 영향을 받아서 무교회주의의 입장을 취했는데 말이다.

사람들은 이런 사상에는 관심이 없는데, 그런데 함석헌을 왜 좋아하는고 하니까, 그가 외친 것이 무엇인고 하니, 억눌린 자, 없는 자의 편에 서서 이 땅에 민주주의라는 이상적인 기독교 국가를 건설하자는 것이다. 그러니 그에 의하면 민주주의가 이 땅에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인데, 이 민주주의 산상설교를 접목을 시킨다는 말이다. 그게 마태복음 5장, 6장, 7장에 나오는데 말이다.

그리고 사도행전 2장의 말씀과도 결부를 시키는데, 45절과 46절에 보면 뭐라고 하는가?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고" 라고 하는데, 하지만 이게 무슨 의미인가?

(행 2:44)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행 2:45)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고

이게 나누어주는 것이 주님의 뜻이라는 말인가? 아니면 그렇게 나누어주어서 괜찮아 보이는 공동체가 주님의 뜻이라는 말인가? 사도행전 2장은 나누어줌에 있는데, 그런데 인간들은 그런 나눔을 통해서 이상적인 사회가 되는 것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보았다는 것이다.

 

◈ 무정부의자, '생시몽' !!

19세기 말에 '생시몽' 이라는 무정부주의자가 있었는데, 즉 정부를 없애버리자는 것이다. 모든 인간은 존엄하다는 말이다. 그러니 남에게 해꼬지를 하지 않고 평화롭게 사는 것이 최고인데, 그러니까 "능력대로 일하고 필요한 만큼 얻을 수 있다" 라는 것이다.

정수라의 '아, 대한민국' 이라는 노래에 나오듯이, 그렇게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가질 수 있는, 또한 일도 자기 능력에 따라서 하면 되는데, 몸이 약한 사람은 약한 일을 하고, 또 강한 사람은 강한 일을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이상적인 공산주의 사회이고, 지금도 이것이 중국 공산당의 모토가 되어있다는 말이다.

로메로 신부부터 시작해서, 이 해방신학이라는 것이 가진 자로부터 억울한 일을 당함이 없도록 하는 것이, 그것이 곧 이 땅에 주님이 오신 뜻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해방신학의 주제는 하나인데, 하나님은 하늘에 계신 것이 아니라, 이 땅에 오셨는데, 그것도 낮고 천한 곳으로 오셨다는 것이다.

그런데 가진 자들은 어떻게 한다는 말인가? 위를 바라보라고 하는데, 하지만 실제로 오신 예수님은 너무나 비천한 곳인 마구간에서 태어나셨다는 것이다. 그러면 그 의미가 무엇인가? 없는 자의 친구이며 억눌린 자의 위로자로서, 그런 예수님은 지금도 살아있는데, 어디에 말인가? 억울하게 수모를 당한 그 현장에 말이다. 그러한 모임에 주님께서는 성령을 통해서 함께 하신다는 것이다.

 

◈ We are the world ♬

12제자를 보면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는데, 그런데 왜 가진 자들은 부자 예수를 이야기하느냐는 것이다. 그러니 뒤집어야 하는데,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고, 이것이 이 땅에서 복음을 전파하는 진정한 진정한 선교라는 것이다. 이것이 통합측이나 감리교의 W.C.C. 정신이고 말이다.

그게 바로 '세계기독교협의회' 라고 하는 일종의 기독교 연합체인데, 여기에서 나오는 유명한 노래가 무엇인고 하니, 마이클 잭슨이 부른 "We are the world ♬" 라는 것이다. 이것은 주기도문을 가지고 만든 노래라고 할 수 있는데 말이다. 
 
그러면 방금 제가 이야기한 해방신학이 복음적인가? 마귀적인가? 당연히 마귀적인데, 그들은 성경말씀에 관심을 두지 않는데,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신체+돈' 이라는 것이다. 우리의 신체가 가지고 있는 욕망은 무엇인고 하니, 가진 자의 돈을 빼앗아서 자기 욕망을 충족시켜주신다면, 그러면 하나님에게 감사와 찬양을 드리겠다는 것인데, 그러니 지상천국을 시도한다는 말이다.

여기서 잠언서 7장 1절과 2절을 살펴보자.

(잠 7:1) 내 아들아 내 말을 지키며 내 명령을 네게 간직하라
(잠 7:2) 내 명령을 지켜서 살며 내 법을 네 눈동자처럼 지키라

 

◈ 다시 정리하면 !!

지금까지 이야기한 것을 정리해보면, 인간이 여기에 있고, 그리고 신은 여기에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신에게 나아가는데 있어서, 지금까지의 자본주의는 가진 자의 하나님으로 나아갔지만, 하지만 우리는 낮은 자, 억눌린 자의 편에 서서 나아가겠다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둘 다 무엇을 의식하는가? 이 비계와도 같이 두꺼운 권력층이고 정치적인 요소를, 즉 권력층 안에서 안에서 신의 뜻을 찾아내고자 하는 것에 있어서는 둘 다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가난한 자의 나라가 되던, 부유한 자의 나라가 되던, 일단 모이게 되면 정치적 색채를 띌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현대의 정치사를 공부함에 있어서, 그것을 남의 이야기로 보면 안 되고, 자기가 그 나라의 현장에 있다고, 그 나라의 시민이라고 여기고 해야하는데, 즉 "얼마나 억울함을 느끼겠는가?" 라는 감각을 가지고 현대사를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현대사의 특징이 무엇인고 하니, 대부분이 기독교 국가인데, 남미는 전체가 천주교인데 말이다.

 

◈ 해방신학의 창시자, 구티에레츠 !!

앞서 이야기한 해방신학이 남미에서 나왔는데, '구티에레츠' 라고 해방신학의 창시자라고 할 수 있는데 말이다. 이것이 1980년의 제2차 바티칸 선언에, 즉 천주교의 교리에 이 신학이 들어가게 된다는 것이다. 즉 현재 모든 천주교의 교리에 해방신학이 포함되어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한국에 있는 천주교 신부들이 틈만 나면 민주화운동을 하는데, 제주도의 강정 마을에 가서는 해군기지를 반대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대북관계를 대화로 풀라고 하고 말이다. 물론 그렇게 정치적으로 나서는 신부들은 천주교의 일부인데, 대부분의 신부들은 물론 좌파이지만 그냥 목회만 하는 자들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중에서는 일부 신부들은 여당에도 붙어있는데, 그것은 교회라는 부동산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친여당적 성향을 띌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들은 교회라는 부동산만 가지고 있는 게 아니고, 자선사업단체도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병원도 엄청나게 많은데, 종합병원인 성모병원이 우리나라에 한 두 군데가 아니라는 것이다.

대구에 보면 천주교에서 운영하는 유명한 고아원이 있는데, 그 부동산이 수백억대에 이른다는 말이다. 그것을 언제 취득했는고 하니, 그 당시에 신부가 전두환 대통령과 가까이 있으면서 그것을 가지고 왔다는 말이다. 그러니 신부도 그런 정치를 하지 않으면 건물의 인허가 문제라든지, 여러 가지 이익을 취할 수 없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 움직이지 않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내부적으로 힘을 가진 천주교가 반대하고, 즉 좌파 신부들은 그렇게 데모를 하고 말이다. 그러니 돈은 돈대로 벌고 정권은 정권대로 이용하고, 그렇게 서로 명분을 쌓는다는 것이다. 이게 바로 권력층인데, 그런 권력이 없으면 천주교가 이렇게 클 수가 없다는 말이다. 김수환 추기경도 역시 마찬가지인데, 정치꾼이라는 것이다.

 

◈ 주님께서, 의도적으로 권력층을 마귀에게 넘겨 !!

그러면 과연 이게 하나님의 계명이냐는 말이다. 결코 아닌데, 그러면 하나님의 계명은 무엇인고 하니, 이 권력층을 주님께서는 어떻게 하시는고 하니, 마귀에게 넘겨버린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의도적으로 말이다. 그래서 마귀로 하여금 이 권력층을 가지고 걸러내기를 하신다는 것이다.

모든 인간은 자기가 잘 되면 옳은 것이고 손해가 되면 나쁘다고 여기는데, 그리고 자기가 그냥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얻게 되면 어떻게 된다고 했는가? 그것이 확장이 되면서 자기 자신이 그만 정치적으로 놀게 되는데, 즉 "이것은 하나님이 기적적으로 주신 공동체이기 때문에, 이것을 건드리면 이단이 된다" 라고 하면서, 자기의 권력을 놓치지 않으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십자가 마을도 역시 마찬가지인데, 우리 인간은 이러한 권력적인 인식이 자동적으로 나오기 마련이라는 말이다. 처음에는 복음을 이야기하다가, 그런 복음을 이야기하는 단체가 그만 복음을 대체하고 만다는 것이다. 신천지도 그렇고 안상홍도 그렇고, 기존교회도 역시 그렇고 말이다. 

 

◈ 그러면 하나님의 계명은 무엇인가?

그러면 하나님의 계명은 무엇인가? 여기서 방향이 중요한데 말이다. 처음부터 다시 하겠는데, 인간은 말씀을 들으면 어디로 찾아간다는 것인가? 신을 찾아간다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계명을 주셨다는 것은 맞는데, 계명을 준 그분이 하나님이라고 할 때, 그 신은 인간들이 지어낸 신이라는 것이다.

진짜 신은 반드시 권력층을 경유한 신인데, 그런데 이 신은 그런 신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 신은 권력층에서 악마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이 땅에 침투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권력층을 긍정하면서 신에게 나아가고자 하지만, 주님께서는 그 어떤 권력층이라고 해도, 그것이 건전하든 그렇게 않든 간에, 주님께서는 그것을 거부하신다는 말이다.

 

◈ 늘어나는 주님의 잔소리 !!

그리고 그러한 주님의 권력층에 대한 거부는, 그런 권력층과 밀착되어있는 우리 자신에 대한 거부이기도 한데, 그래서 우리가 무슨 의도로 성경말씀을 보았는지, 거기에 대해서 닦달을 하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주님의 잔소리가 점점 더 늘어나게 된다는 말이다. 

그런 잔소리가 늘어난다는 것은,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듣고 "이만하면 어떻습니까?" 라고 할 때, 계속해서 추가적으로 잔소리를 늘어놓게 되면 우리는 어떻게 되는가? 처음에는 말씀으로 하나님에게 나아가고자 하지만, 그게 나중에는 감당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주여, 이것까지는 제가 지키겠지만, 나머지는 남겨두겠습니다" 라고 한다는 말이다. 즉 "십자가를 믿는 것은 하겠는데, 처나 자식이나 아내를 더 사랑하는 것은 합당치 않다는 것이 주님의 말씀이 아닌 것이 아니라, 현재 저의 역량으로는 그게 감당이 되지 않으니, 그것은 나중에 믿음이 좋을 때 지키겠습니다" 라고 하면서 남겨두게 된다는 것이다.

 

◈ 요것은 나중에 지키겠습니다 !!

조금 더 부연설명을 하면, "돈을 사랑하면 일만악의 뿌리다" 라고 하면, 이게 지키기가 참 어렵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것을 돌려놓는데, "이것은 나중에 지키겠습니다" 라고 하면서 말이다. 그러면 과연 처음부터 지켰다고 한 것은 과연 제대로 지켰느냐는 것이다.

무슨 말인고 하니까, "예수님의 십자가는 믿고, 그것은 지키고 다른 것은 나중에 지키겠습니다" 라고 했는데, 그러면 뒤에 것은 그렇다고 치더라도 과연 앞의 것은 지켰다고 확정할 수 있느냐는 말이다. 그게 안 되는데, 그러니 뒤의 것을 지키지 못했다고 하면 앞의 것을 지켰다는 것도 자기가 그만 오해했다는 것이다.

 

◈ 우리가 지킬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어 !!

그러니 우리가 지킬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는데, 이게 오늘강의의 주제인데 말이다. 다시 강의처음으로 돌아가서, 우리는 말씀을 들으면 자꾸만 지킨다고 하는데, 정답을 이야기하면, 모든 말씀은 누가 지킨다는 것인가? 예수님만이 지키는데, 우리는 결코 지킬 수가 없다는 말이다.

그런데 여기서 지킨다고 해버리면 무엇이 튀어나오는가? 자기의 권력욕구가 그만 정당화가 되고 마는데,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마귀에게 우리를 넘긴 이유라는 것이다. 지켰다고 하게 되면, 그 지킨 자기는 그만 잘난 자기가 되고 마는데, 그러면 그 잘난 자기에게는 축복이 와야한다는 말이다.

오늘 강의제목이 '현실화' 인데, 그렇게 현실화를 시키게 되면 그 끝이 '부자 되기' 라는 것인데, 그렇게 부자끼리 모이면 그 부자 자체가 계급이 되는데, 그러면 가난한 사람들을 눌리는 것도 하나님의 계몽이고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이다. 즉 함의 자손은 저주를 받고 셈의 자손은 복을 받아야 한다는 것인데, 그러면서 셈의 자손 속에 자기를 포함시켜버리고 만다는 것이다.

이게 바로 권력적 의식인데, 그러니 처음에는 복음으로 시작했는데, 나중에 가보니까 복음이 아니라 자기가 그만 하나의 권력의 장(場)이 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정치적인 사람이 되고 말았는데, 즉 "어디 나의 것을 건드려? 가만히 두지 않겠다" 라고 나온다는 말이다.

 

◈ 우리는,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 !!

그러니 첫 단추가 잘못 끼어져 있는데, 우리가 예수님을 믿어서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믿는 것이 아니라 믿어지게 하신다는 말이다. 자기가 믿게 되면 그 믿는 자기가 정당화되고 말지만, 십자가를 가지고 믿어지게 하면, 매일같이 "저는 정치적 인물입니다" 라고 하면서 자기 죄를 발견하게 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주님이여, 아무리 믿어도 내 권력을 자꾸만 수집하고 끌어 모으는 본성을 죽을 때까지 도저히 놓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런 나 같은 것도, 나 같이 더러운 것도 천국에 보내주십니까? 주님, 도저히 믿을 수가 없습니다" 라고 하게 된다는 말이다.

그럴 때 모든 것이, 즉 회사가 부도가 난 것도 감사해야 하는데, 물론 반대로 자기의 집 값이 오르고 주식 값이 오르는 것도 감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말을 하고 보니 좀 그러한데, 아무튼 우리는 그 모든 것에 감사해야 한다는 말이다. 물론 그것이 휴지조각이 되어도 감사해야하고 말이다. 

 

◈ 빛의 권세와 어둠의 권세 !!

왜 그런가? 그것은 주님이 우리 자신의 주인이 되어서 쥐었다가 폈다가 하시는데, 그것을 주님께서는 '빛의 권세' 라고 말씀하셨는데, 이 빛의 권세는 어둠의 권세와 대결구도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그래서 "너희는 빛의 자녀이니, 그딴 이 세상 것에 관해서 휘둘리지 말라" 라고 하시는데, 여기서 나온 것이 바로 '자유' 라는 것이다. 

돈이 있던 없던 간에, 아이가 공부를 잘하던 못하던 간에, 집안이 잘 되던 못 되던 간에, 집안 자체를 사랑하지 말라고 했는데, 그런데 우리는 어떻게 하는가? "주님, 저는 죄인입니다" 라고 해놓고는, 돌아서면 뭐라고 하는가? "왜 우리 아이가 반에서 꼴찌를 합니까?" 라고 나온다는 것이다. 그것이 하나의 지적거리인데, 그런데 우리는 "주님, 왜 나의 것을 건드립니까?" 라는, 그런 속셈을 은근히 감추고 있다는 말이다. 

이제 조금만 더하고 마치겠는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빙자해서, 예수님의 이름을 빙자해서, 정치적으로 자기 권력을 쥐면서, 물론 그렇게 하는 것은 좋은데, 그게 하나님의 뜻이니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을 정당화한다는 것인데, 그런 정치적 모습을 띄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힘으로 권력층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데, 교인이 500명이 되는데, 그게 두 명이 되어도 좋다고 하는 목사는 없다는 것이다. "제가 주의 종이니 이렇게 모아주셨군요" 라는 착각을 하기 마련인데, 죄인이라고 하다가 그만 정치적 목사가 되고 만다는 것이다. 교회를 정치적으로 다루려고 한다는 말이다.

 

◈ 악마는 우리에게 '우열감'을 심어주었다 !!

그래서 제가 뭐라고 설교를 했는고 하니, "악마는 우리에게 우열감을 심어주었다" 라고 말이다. 혹은 우위감이라고 할 수 있는데, 무슨 의미인가? "나는 너보다 낫다" 라고, 즉 "내가 가르치는 목사니까, 너는 나에게 배워야한다" 라는 것인데, 쉽게 말해서 "나에게 굴복하라" 라고 한다는 것이다.

이게 제대로 안 되면 선교사로 가는데, 왜냐하면 거기에 가면 모두들 무식한 자들만 있으니 말이다. 거기에 가면 가르치는 즐거움이 있는데, 즉 자기가 우월감에 빠지는 즐거움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의 희열이고 쾌락이라는 말이다. 목사든 교인이든 다들 말씀 앞에서는 못난 존재이어야 하는데, 그런데 못나도 서로 급이 다르다는 것이다.

 

◈ 못나고 못난 존재 !!

하지만 말씀을 가까이 하게 되면 못나도 더 못나야 하는데, 십자가를 아니까 말이다. 십자가를 모른다고 하면 잘난 척을 할 수 있지만, 십자가를 안다고 하면 모르는 자들보다 더 못난 존재라고 여기고 살아야 하는데, 그런데 그게 아니고 "신천지, 너희들이 뭐가 잘났다고?" 라고 하면서, 그들을 우습게 본다는 말이다. 

신천지이든 구천지이든 십자가 앞에서는 모든 것이 감사할 일인데, 즉 "나나 너나 똑같은데, 그런데 나는 무슨 횡재인지 몰라도, 성령세례를 받아서 내가 죄인인 것을 알았다" 라고 말이다. 그런데 그들은 그것을 모르니 집까지 쳐들어와서 우기는데, 무려 3시간 동안이나 말이다(ㅋㅋ).  

복음을 알아서 정치적 인물이 되고, 또 그것으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주여, 복음을 알았으니 부자가 되게 해주세요" 라고 하면서 자본주의화가 되어있지나 않은지, 물론 그것은 항상 자기 자신에게 물어봐야 하는데, 하지만 그렇게 물어야 한다는 것은 고치라는 것이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을 고치면 안 되는데, 물론 우리는 고칠 수도 없지만 말이다. 만약에 고치게 되면, "그 고친 나는 너보다 낫다" 라고 하게 되는데, 물론 고쳐지지 않는다고 해서 감사할 일은 아니지만, 아무튼 우리는 이런 정치적인 것을 전혀 고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 감히 누가 나를 건드려? 그러나 !!

그러니 "누가 나를 건드려? 나도 한 성질을 한다" 라는 것을 평생 가지고 가면서, 그것을 버리는 것이 아니고 말이다. 그러면서 "이런 강도와 같은 인간도, 지은 것은 죄밖에 없는데 십자가의 피로 구원해주시니 정말 감사합니다" 라고 하면서 살아가면 된다는 것이다.

우리와 같은 죄인을 건지기 위해서 주님께서 권력층을 뚫고 오셨는데, 그 과정에서 피를 흘리셨는데, 그러니 그 피는 우리 개개인의 잘못이 아니라, 우리가 속해있는 권력층 때문인데, 권력층이 합세해서 예수님을 죽였다는 것이다. 우리가 빠져나올 수 없는 비계 덩어리로 인해서 말이다.  

그런데 그 안에는 우리는 자유를 누리니, 이게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는데, 그러니 그런 자기 모습을 제대로 알면서, "주여, 제가 이 권력층에서 빠져나가지 못해도 십자가의 피는 느끈하게 용서하십니다" 라고 하면서, 그 귀한 피만 자랑하면 된다는 것이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는 권력을 포기하고서 십자가의 피를 알면 복을 받는다는 식으로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렇게 기독교의 이름으로 자본주의에 물들어서 돈만을 노리는 우리 자신의 심리를, 그것을 앞서 사람들이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도 그 길을 갈 수밖에 없기에, 그래서 죽을 때까지 죄밖에 지을 것이 없기에, 이 시간도 또 다시 십자가만 자랑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