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과 믿음
사도 요한 160828 본문
사도 요한 160828
설교: 이근호
녹취: 정인순
오늘은, 지난번에는 아브라함 했지만, 이번에는 사도 요한이라는 사람이 있는데, 예수님의 사도가 총 몇 명이냐 하면 열두 명이에요. 왜 그렇게, 서너 명 하면 되는데 왜 그렇게 열두 명이나 많으냐? 열두 명으로 많은 이유가 옛날 이스라엘이라는 나라가 열두 개의 지파로 되어있어요. 열두 개의 성씨로 되어있어요. 각자 이스라엘 나라 자체가 성이 열두 개나 다른 선조들을 갖고 있었습니다. 열두 명이, 그런데 열두 명이 있으면 서로 싸울 거잖아요? 싸웠는데 아무리 열두 개가 된다 할지라도 우리가 하나님께서 함께 있음으로서 우리는 한 나라가 되었다는 마음을 같이 가진 거예요.
열둘이, 많다는 것은 열둘이 아니고 나중에 십사만 사천이라 하더라도 숫자가 더 많아지더라도 우리는 한 하나님 때문에 우리가 구원받고 예수님 때문에 구원 받았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서 하나가 아니고 열둘로 갈라지게 했습니다.
그 열두 명의 제자들, 사도 가운데 한 사람이 누구냐 하면 요한이라는 사람이에요. 영어로 하면 John이라는 사람입니다. John. John이라는 사람 요한인데, 이 사람이 처음에는 어떤 사람인가 하면 처음에는 바닷가에서 고기 잡던 어부였습니다. 고기 잡던 어분데 예수님께서 “요한아, 너는 이제부터 내 제자가 되어야 돼.” 라고 예수님이 불러줬습니다. 그럴 때는 요한도 예수님이 누군지 몰랐어요. 예수님은 알아요. 요한이 철이 없고 아무것도 모른다하는 것을 알고.
그래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를 때는 훌륭해서 부른 게 아니고 못난 사람인 것을 데려다가 천국 가는 사람을 만들기 위해서 못난 사람을 이렇게 하는 거예요. 여러분도 여러분 보기에 못나 보이지요? 여러분 부모한테는 잘난 사람이지만 사람은 갈수록 자기 마음대로 안 돼요. “내까짓 게 뭘 할 수 있겠어?” 하는데 예수님께서 아세요. 못난 줄 알고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아시고 불러주십니다. 그러니까 요한이 쫓아오면서 여러 가지 일을 하는데 못난 일을 하는 거죠. 못났으니까 못난 일을, 제대로 예수님을 잘 모르니까 마음대로 사는 거죠.
그래서 요한이 제자들과 예수님과 함께 있으면서 이런 생각까지 했어요. 하늘나라 갈 때에 자기가 높은 자리 앉으려고 “하늘나라 가서 쟤가 높아요? 내가 높아요?” 이런 것까지 생각할 정도로 예수님 마음에는 안 맞고 자기의 잘못된 생각들을 그냥 이야기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 잘못된 생각을 꾸짖으시면서도 버리지 않아요. 꾸짖으시면서도 버리지 않고, 그런데 열두 명 가운데 가룟 유다란 인간이 있는데, 마귀한테 팔리게 하고, 나머지 열한 제자는 주님께서는 아무리 못난 짓을 하고 아무리 엉뚱한 짓을 해도 “나는 끝까지 너를 사랑한다.” 이러면서 버리질 않아요.
그리고 나중에 예수님이 잡혔을 때 요한부터 해가지고 전부 다 도망쳤습니다. 도망쳤는데 얼마나 놀랐는지 요한이라는 이 사도 요한은 입던 옷까지 입을 시간이 없어가지고 발가벗고 도망쳤어요. 발가벗고 도망쳤다니까 속옷 입었는지 그건 모르겠습니다만 하여튼 옷을 벗고 도망쳤어요. 그 정도로 비겁한 사람입니다.
처음에 이럴 때는 처음에 예수님이 부를 때는 “내가 예수님과 더불어 천국 가겠습니다.” 해놓고는 막상 자기한테 난처한 일이 당하니까 “아이고 나는 살고 보자. 예수고 뭐고 나부터 살고 보자. 나는 그런 사람입니다.” 하고 도망치고 말았어요. 그러니까 얼마나 비겁한 사람입니까? 예수님께서 아시죠. 목자를 치니까 양이 흩어진다는 것을 다 아시고 “그래, 그 정도로 너는 못난 사람이다.” 라고 했어요. 하고 난 뒤에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친 요한’ 이렇게 되어 있잖아요. 밤중에 여기 요한이 옷 입고 가지만 사실 벌거벗고 도망을 쳤습니다.
옷 하나 입었는지 두 개 입었는지 그건 모르겠고, 그리고 난 뒤에 예수님 잡히고 난 뒤에 소식 듣고 벌벌 떨면서 “예수님은 끝났어. 예수님은 우릴 안 찾을 거야.” 이렇게 했는데 예수님께서 죽고 난 뒤에 돌아가시고 난 뒤에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났어요. 살아나가지고 누굴 찾아왔는가? 요한을 찾아왔어요. “요한아, 잘 있었나?” 물론 요한뿐만 아니고 제자들이 함께 있었는데, “너희들 잘 있었어?” 그러니까 사람들이 놀라가지고 “유령이다. 귀신이다!” “귀신 아니야. 귀신 아니야. 나 죽었다가 살아났어. 나 그 때 그 예수 맞아. 너희 선생 맞아.” “근데 죽었잖아요?” “내가 이야기 했잖아? 내가 죽고 난 뒤에 사흘 만에 되살아난다고. 너희들 안 믿었구나. 안 믿어도 할 수 없지. 어쨌든 살아났으니까. 이제부터 너희들은 내 일을 해야 돼. 내가 살아있으니까. 이제부터 걱정할래? 안 할래?” “이제는 걱정하지 않겠습니다.”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절대로 걱정하지 마. 이제부터는 내가 살아있으니까, 내가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살아있으니까 남들이 뭐라 해도 겁내지 마. 내가 너희한테 일 시킬 거야.”
그래서 베드로하고 요한이 그때부터는 예수님이 시키는 일을 했어요. 물론 그들이 한 게 아니고 보이지 않는 주님이 일을 자꾸 시킨 겁니다. 하루는 어떤 집에 가니까 앉은뱅이가 있었는데 앉은뱅이가 있는데 이 앉은뱅이는 이왕 앉은뱅이고 거지나 해서 동냥이나 해서 먹고 살겠다. “돈 좀 주세요.” 돈을 달라고 했어요. “돈 주세요.” 이렇게 하니까 베드로와 요한이 하는 말이 요한이 예수님이 시킨 대로 하는 거예요. “니가 뭘 원하지?” “돈을 원합니다.” “돈을 원해? 난 너한테 돈 안 준다.” 앉은뱅이가 “난 돈을 원하는데.” “내가 돈은 안 주고 예수님이 원하는 걸 줄게. 니가 앉은뱅인데, 날 때부터 앉은뱅인데 니가 일어나 걸어가라. 예수 이름으로 걸어가라!” 이렇게 했더니만 사람의 명령이 아니고 주님의 명령이 이 앉은뱅이한테 도달되니까 “일어나라!” 하니까 “일어나? 일어나야 되겠지. 그럼 일어나자.” 일어났어요. 일어나서 보니까 일어났네. “오, 왜 일어났지? 일어났구나.”
그래서 사람들이 “와! 베드로 요한 진짜 능력 많네요. 능력으로 했지요?” 하니까 “아닌데요. 전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요. 그럼 본인한테 물어보세요.” 물어보니까 “앉은뱅이야, 니가 어떻게 일어났지?” “예수님 때문에 힘으로 일어났어요.” 이렇게 이야기하거든요. “거봐, 이 사람이 예수님 힘으로 구원받았잖아.” 나 베드로 요한 때문에 구원 받는 게 아니고, 일어난 게 아니고 예수님이 일어나게 하셨다 이 말이죠. 사람들은 “예수님은 어디 있는데?” “니는 안 보이면 그만 두고. 우리는 예수님이 이렇게 살게 하시고 예수님께서 이렇게 앉은뱅이를 낫게 하시고.” 이렇게 하신 거예요. 예수님이 죽었다가 부활하고 난 뒤에는 예수님이 눈에 안 보이지만 살아계시기 때문에 어떤 경우라도 예수님이 시킨 대로 움직이게 되어있어요.
마지막으로 요한이 마지막으로 한 일이 있어야 돼요. 하루는 사도 요한이 나이가 많은데 경찰이 와가지고 “당신은 예수를 믿기 때문에 당신을 옥에 집어넣겠어요.” 옥에 집어넣는 게 아니고 밧모 섬이라고 거기에 가가지고 섬에다가 귀양을 보냈습니다. 오도 가도 못하는 섬에 잡혔어요. 잡히고 난 뒤에 심심해가지고 있는데 그때 “요한아, 이제부터 내 말을 받아 적어라.” 해서 예수님이 시켜서 그래서 사도 요한이 글씨를 볼펜 없었지만 양피지 내놓고, 그땐 양피지 있었어요. 받아 적었어요. “빨리 받아 적어!” “예, 받아 적습니다. 예, 그 다음은요?, 예 그 다음? 그 다음?” 그렇게 받아 적은 책이 뭐냐 하면 성경책 제일 마지막에 있는, 요한이 받아 적었다 해서 요한계시록이라 하는 것이 있어요. 요한계시록.
그전에 요한복음도 사도 요한이 썼고, 요한 1, 2, 3서도 썼고 마지막에 요한계시록을 쓰면서 마지막에 이런 대목이 있어요. “누구든지 내가 받은 계시 외에 더 보태거나 빼는 사람은 천국에 가지 못한다. 천국에서 쫓겨날 것이다.” 그걸 해가지고 마지막에 딱 적어놓고 그 마지막엔 뭐냐? ‘주께서 오십니다. 아멘, 아멘. 주께서 오십니다.’ 이렇게 끝나요. 제일 마지막에 보면,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이걸로 해서 성경은 끝났어요. 그리고 사도 요한은 죽었습니다. 사도 요한이 죽고 난 뒤에 남긴 것은 바로 예수님의 성경책을 남겼습니다. 여러분들이 이 책을 볼 때 이건 사람의 책이 아니고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주신 책이라는 것을 꼭 명심하세요.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평소에 철없이 아무것도 몰랐던 사도 요한이지만 주님께서 끝까지 사랑하셔서 주의 일을 하게 하신 것처럼 저희 어린이들도 끝까지 사랑하셔서 주의 일을 하다가 주를 만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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