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과 믿음
스데반집사 160522 본문
스데반집사 160522
설교: 이근호
녹취: 정인순
여기 여러 군데, 예수님 오시고 난 뒤에 부활하고 난 뒤에 예수님이 이제 안 보입니다. 예수님 계실 때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쳐다봤는데 예수님 안 계시니까 사람들끼리 싸움이 벌어졌어요. 싸움이 벌어졌는데 그 싸움이 벌어진 이유가 교회에서 먹을 것을 나눠줬는데 여자들끼리 인상을 쓰면서 “뉘 집네 사람은 빵 다섯 개 가져갔는데 우리는 세 개밖에 안 주는데.” 이래가지고 싸움이 일어나고 “교회에서 빵 주는데 왜 당신은 뭔데 많이 가져가고 우리는 조금밖에 안 주느냐, 무시하느냐?” 이렇게 하고,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사람이 사는 동네가 다르다고 이 동네 사람이라고 많이 주고 남의 동네라고 적게 주느냐?” 이래 가지고 문제가 되고, “다 같은 하나님의 형제고 사랑하는 그리스도의 천국 가는 백성이면서 어떻게 차이 나게 하느냐?” 이런 식으로 이야기하고, 없는 사람도 있는데 가진 사람이 서로 또 많이 가지려고 싸우고, 그렇게 하니까 교회에서 문제가 일어났어요.
욕심들 부려가지고 특히 여자들이 욕심 많잖아요. 서로 뺏어가려고 하고 다투고 하니까 교회에서 교회 사도들이 예수님의 사도들이 모여서 회의를 했어요. 이래가지고는 “되지도 않는 빵 몇 개 때문에 돈 때문에 사람들 안 되겠다. 사람들 인심 사나와져서 안 되겠다.” 그래서 “그럼 어떻게 하느냐?” 빵 나눠주고 이런 것은 우리가 할 일이 아니다. 이건 집사들이 할 일이고 우리는 말씀을 증거 해야 되는데 사람들이 워낙 자기 이익만 욕심만 챙기기 때문에 말씀 전하는 것도 오해되는 거예요. 교회 나오면 빵 주더라. 이렇게 되면 안 되잖아요. 그래서 사도들이 “달리 합시다.” 해서 “사람들 빵 주고 하는 이런 일은 집사라는 걸 세워가지고 그 사람한테 맡기고 우리는 기도하는 것과 그리고 말씀 복음 전하는 것만 전념합시다.” 그렇게 해서 집사 일곱 명을 세웠어요.
그런데 집사 일곱 명을 세울 때 세우는 조건이 있어요. 첫째는 성령을 받을 것, 성령을 받는다는 말은 내 자신이 옛날 자기가 아니고 예수님 때문에 완전히 딴 사람 됐음을 본인이 놀랄 정도가 되는 사람들, 그런 사람이 성령 받은 겁니다. 우리 신희, 건희 성령 받았나? 용돈은 받았지? 용돈. 용돈은 받았지만 성령 받았나? 성령은 내가 옛날 전에 알던 그 사람이 아니고 완전히 딴 사람 되었다는 거예요. 성령 받은 사람이 어떻게 딴 사람이 되느냐 하면 내 때문에 내가 있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 때문에 내가 여기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 그 사람들이 성령 받은 사람이에요. 그 사람들로 하여금 일을 시키는 겁니다.
두 번째는 뭐냐 하면 남한테 욕 얻어먹지 않는 사람, 그러니까 너무 세상적인 욕심을 내지 않는 사람, 그런 사람을 해서 세우고 또 말씀도 잘 전하는 사람, 그렇게 해서 세웠는데 그 중에 한 사람이 스데반 집사라는 사람을 세웠습니다. 스데반 집사는 성령을 받았기 때문에 자기 몸을 자기 마음대로 못하고 성령께서 마음대로 이동하고 가지고 놀다가 마음대로 활용을 해요. 그래서 이 사람은 특징은 뭐냐, 사람 앞에 겁이 없어요. 여러분들도 사람 앞에 나가면 겁이 없지요? 태민이 사람 앞에 겁 나나? 겁 안 나지? 겁이 없어요. 잘못 한 것도 몰라 겁이 없는지 모르지만 하여튼 겁이 없어요. 성령 받은 사람은 모든 사람들을 어떻게 하면 저 사람을 천국에 데려가야 할 텐데 이걸 생각하기 때문에 겁이 없어요. 사람들이 이 땅에서 어떻게 살려고 하는 사람이 아니고 천국에서 사는, 가기 때문에 이 땅이 자기 고향이 아니기 때문에 하늘나라가 고향이기 때문에 이 땅에는 그냥 별로 신경 안 쓰다보니까 겁이 없는 것예요. 겁 없이 살다보니까 많은 사람이 그 말에 힘이 있고 그 말이 사람들이 많이 동감을 하게 되었어요. 동감을 하니까 그걸 보고 나쁜 사람들, 예수 안 믿는 그런 나쁜 사람들이 이 스데반 집사를 제거해야 되겠다. 죽여야 되겠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스데반 집사를 체포했습니다. “말하지 마! 동네에 나가서 니가 예수님 살아있다는 이야기를 하지 마. 살아있기는 뭘 살아있어. 인간만 살아있지 무슨 예수가 살아있어.” 이런 식으로 이야기하고 옥에 가두었습니다. 옥에 가두어놓고 그 다음에 그 사람들이 칠십 명을 모았어요. 그것도 제일 높은 사람, 칠십 명을 모아놓고 그 앞에 나가서 스데반 집사보고 하는 말이 “너 죄를 거기서 낱낱이 반성하듯이 니 죄를 고해라. 나는 예수가 살아나지도 않았는데 예수 살아났다고 거짓말 했습니다. 이렇게 니 죄를 아뢰라. 이런 식으로 윽박질렀어요. 그래서 옥에서 풀려나가지고 칠십 명 앞에서 재판을 받습니다. 칠십 명이 쭈욱 앉아있어요. 그 나라에서 제일 높은 사람이 있고 그 중에 스데반 집사님이 나왔습니다.
“스데반아, 네가 뭐가 잘못 되었는지 이 많은 사람 앞에서 이야기해 줘가지고 제대로 말하면 너가 풀려나와서 니가 옛날처럼 살게 해주고, 만약에 니가 예수님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습니다. 이런 소리 하려거든 니는 우리 손에 죽는다. 이제는 집에도 못가고 오늘로 너는 인생 다 산 거다. 더 살래? 오늘로 그만 살래?” 이런 식으로 협박하는 식으로 이야기를 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스데반 집사가 “이야기를 하지요.” 이야기를 하는데 성경에 보니까 이야기를 할 때 스데반 집사님의 모습이 천사의 모습과 같았어요. 천사의 모습. 성령이 충만해가지고 천사의 모습 같이 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설교를 주욱 했어요.
“옛날에 우리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만드실 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만드시고 광야에서 인도했는데 우리들이 이스라엘 우리들이 잘못 되어서 하나님께 나쁜 짓도 많이 하고 원망도 많이 해서 그래서 우리나라가 망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께서는 여러분들이 그 망한 짓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눈에 보이는 것대로 자꾸 사는데 절대로 눈에 보이는 대로 살면 안 됩니다. 하나님은 눈에 보이는 집에 계시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있을 때 사람들은 그분이 구원자라고 이야기했건만 사람들은 그 사람을 죽였습니다. 죽고 난 뒤에 예수님은 죽었다가 사흘 만에 살아났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눈에 보이는 것들에 대해서 이렇게 신경 쓰면 그 사람은 예수 믿지 않는 사람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우리들이 눈에 보이는 것을 믿는 그 모든 것이 바로 죄가 된다는 것, 지옥 갈 일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쳤습니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을 믿지 말고 보이지 않는 예수 그리스도가 살아났다는 것을 믿읍시다.” 라고 이야기했어요.
그러니까, 라고 이야기하고 난 뒤에 스데반 집사가 “이야기 끝!” 하고 눈을 들어보니까 하나님 우편에 예수님이 계시면서 마치 스데반 집사보고 “잘 했어. 그래. 그렇게 이야기하는 것이지. 옳지. 옳지.” 스데반 집사가 이야기할 동안에 예수님께서 뒤에서 힘을 준 거예요. “잘한다. 잘한다. 내 백성 잘한다. 옳지. 그렇게 이야기해야지. 내가 지켜보고 있으니까.” 스데반 집사가 그걸 몰랐어요. 이야기 끝나고 보니까 스데반 집사님에게 뭐가 보이느냐? 하나님과 예수님이 이렇게 있는 것이 눈앞에 들어왔어요. 눈앞에 들어왔는데 이 사람들, 예수님을 스데반 집사를 욕하는 사람들에게는 그게 안 보였던 거예요. 그래서 이야기 다 듣고 난 뒤에 “보라, 예수님이 보인다.” 하니까 사람들이 “저런 미친 인간을 다 봤나? 우리는 저 사람을 살려두게 되면 나라가 어지러워서 안 된다. 쳐 죽이자.” 해가지고 전부 다 돌을 들고 쳐 죽이는 장면이 나와요. 이 장면과 이 장면 한 번 보세요.
이쪽에 있는 것은 돌 들고 쳐 죽이는 이 장면은 이것은 땅에서 일어난 일이에요. 땅에서, 현재 우리가 사는 땅에서. 땅에서 일어난 일은, 이 사람은 너무 심했어. 큰 돌 들고 던지고 어떤 사람은 작은 돌 던지고 하는데 이런 사람 이게 땅이라면 스데반 집사는 땅을 보겠어요? 아니면 하늘을 보겠습니까? 지금 스데반 집사님은 이게 다가 아니고 이건 아래서 일어나고 위에서는 이게 일어나는 거예요. 이걸 보는 거예요. 밑도 보고 땅에서 일어나는 것도 보면서 위도 보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이걸 옆에다 붙여보겠습니다. 이쪽에는 돌로 쳐 죽이고 스데반 집사님은 돌에 맞고 있고 스데반 집사님은 하늘 쳐다보고 있고. 이게 진짜예요. 이게 이 사람들이 몰랐던 하늘까지 다 포함한 진짜 이 세상이에요. 그래서 스데반 집사님은 돌에 맞아 죽어가면서 이렇게 했습니다. “예수님” 예수님께서 “뭐? 이야기해봐. 이야기해봐.” “예수님, 저들이 지금 하늘이 안 보이니까 몹쓸 짓을 하고 어리석은 짓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 뭘 어떻게 해줄까?” “주님, 저들이 하는 일을 모르기 때문에 저들을 용서해주시옵소서.” 하고 스데반 집사님이 마지막 말을 “용서해주옵소서. 용서해주옵소서.” 이렇게 말꼬리를 흐려가면서 숨을 거두었어요. 죽었어요.
그러니까 죽고 난 뒤에 이 사람이 뭐라 하겠어요? 나쁜 사람들이 뭐라 하겠습니까? “어디서 까불어? 어디서 뭣도 모르고 까불어. 얼마나 우리가 힘이 센데!” 이 사람들은 이게 전부인줄 알고 있어요. 그러나 스데반 집사님은 “아이고, 바보야. 바보야. 이게 어떻게 전부야? 이게 전부지. 이렇게 주님 믿는 게 전부야.” 라고 하면서 용서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 현장에 누가 있었느냐 하면 사도 바울이 현장에 있었어요. 나중에 사도 바울도 스데반 집사처럼 이렇게 죽임을 당했어요. 하지만 사도 바울이나 스데반 집사나 조금도 실패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 사람은 처음부터 이렇게 이 세상에서 구원받은 사람이에요. 여러분도 이렇게 스데반 집사처럼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성령 받은 사람이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고 당당하게 살아간 것처럼 성령 받은 저희들도 이 땅에서 눌리지 말고 겁내지 말고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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