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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과 믿음

사사기 20:·1-7 / 백성의 총회 본문

구약 설교, 강의(이근호)/사사기

사사기 20:·1-7 / 백성의 총회

정인순 2013. 10. 4. 11:45

이근호

36강-삿20장1-7(백성의총회)-jdg08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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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의 총회

 

2008년 6월 29일

 

본문 말씀: 사사기 20:·1-7

 

 

(삿 20:1) 『이에 모든 이스라엘 자손이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와 길르앗 땅에서 나왔는데 그 회중이 일제히 미스바에서 여호와 앞에 모였으니』

(삿 20:2) 『온 백성의 어른 곧 이스라엘 모든 지파의 어른들은 하나님 백성의 총회에 섰고 칼을 빼는 보병은 사십만이었으며』

(삿 20:3) 『이스라엘 자손의 미스바에 올라간 것을 베냐민 자손이 들었더라 이스라엘 자손이 가로되 이 악한 일의 정형을 우리에게 고하라』

(삿 20:4) 『레위 사람 곧 죽임을 당한 여인의 남편이 대답하여 가로되 내가 내 첩으로 더불어 베냐민에 속한 기브아에 유숙하러 갔더니』

(삿 20:5) 『기브아 사람들이 나를 치러 일어나서 밤에 나의 우거한 집을 에워싸고 나를 죽이려 하고 내 첩을 욕보여서 그로 죽게 한지라』

(삿 20:6) 『내가 내 첩의 시체를 취하여 쪼개어 이스라엘 기업의 온 땅에 보내었노니 이는 그들이 이스라엘 중에서 음행과 망령된 일을 행하였음을 인함이로라』

(삿 20:7) 『이스라엘 자손들아 너희가 다 여기 있은즉 너희의 의견과 방책을 낼지니라』

 

 

 

왕이 없었던 시절의 총회였습니다. 이스라엘에게는 나름대로 자존심 같은 것들이 깔려있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계신 동네요 나라이기요 결코 죄가 발생되어서도 아니되고 죄가 확산되어서도 아니된다는 신념 같은 것들이 있었습니다. 소위 말해서 범죄에 대해 분개하는 의협심들이 아직 남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의협심은 그들은 마치 하나님의 정의로운 뜻이라고 일치시켰습니다. 이게 바로 큰 오산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자신들은 질 좋은 목숨들을 갖고 있었다고 자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정의를 위하여 의연히 일어선다는 것이 그만큼 하나님에게도 인정받을 거룩한 성품이라고 여겼던 것입니다.

 

 

그래서 레위지파 사람의 첩이 죽고 그 12토막 난 시신들이 그들에 앞에 전달되었을 때, 그들의 의협심을 가눌 길이 없어 정의회복을 위하여 하나로 뭉치게 되었습니다. 무려 40만명이나 되는 군사들이 칼을 들고 일어섰습니다. 악을 척결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바로 왕이 없던 시절이 자기네들의 소견대로 옳다고 여긴 결과였습니다.

 

 

과연 참된 왕이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들의 의분을 정의로운 일이라고 간주해주었을까요? 아닙니다. 하나님의 정의는 그들이 생각과는 달랐습니다. 비록 그들은 일사분란하게 죄를 척결하는 일에 하나로 뭉쳤다고 하지만 그것이 곧 하나님의 진정한 뜻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진정한 재판관이란 장차 오실 예수님에 비추어봐서 판정받아야 합니다. 즉 죄인을 위하여 자기 목숨까지 내놓을 수 있는 자만이 진정한 재판관이요 사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죄를 척결해서 나서는 순간 우리는 그런 일을 하는 자가 곧 의로운 자라는 오해를 스스로에게 할 수가 있습니다.

 

 

마치 형사가 범인을 추적하면서 형사 본인이 죄인이다 는 사실을 놓치는 것과 같습니다. 죄없는 자가 돌을 던질 수 있는데 문제는 돌을 손에 쥐고 던질 만큼의 의인이 아니도 없다는 겁니다. 그러면서도 마치 자신에게는 하자가 없는 의인이라고 여기는 사람들로 가득합니다. 왜냐하면 본인을 보기에 아무리 생각해도 베냐민 지파의 깡패같은 극악무도한 죄는 안 지었잖아요.

 

 

그러니까 정의로운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분명 자기네들 편이 되어주는 것이 당연하다고 본 것입니다. 설마 그들은 악이 의를 이길 줄을 꿈에도 생각 못한 겁니다. 그들은 진정 악이 뭔지를 몰랐던 것입니다. 진정한 악은, 하나님께 맡기지 않는 일입니다. 총회에 속한 12지파 연합군들은 자신을 십자가 군대처럼 생각해서 자기 뜻을 일방적으로 관철하는 취지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처음에 그들은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선한 우리가 악한 무리를 척결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기에 우리 중에 어느 지파가 나가서 그 베냐민 지파를 처부술까요?”했습니다. 40만 연합군이 칼을 빼서 들었다고 소식을 듣고 베냐민 지파는 자위적 차원에서 군대를 모았는 불과 26700명 밖에 안되었습니다. 40만 대군하고 비교가 안되는 숫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유다지파를 보내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이 뜻을 다음과 같이 곡해했습니다. “아, 유다지파만 가도 이긴다 이 말씀이지요”라고 말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첫 번째 전투에서 무려 2만 2천명의 군사를 잃게 되었습니다. 연합군들은 보다 겸손해졌습니다. 하지만 왕이 없던 시절에 그들의 소견에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진정한 왕의 뜻은 죄인마저 살려내는데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죄인에게 복수하는데 하나님의 뜻을 일방적으로 끌어들이려고 애를 섰습니다. 두 번째 기도는 이러합니다. “진정 우리가 칠 수 있겠습니까?”였습니다. 하나님은 뜻은 “쳐라!”였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18000명의 군사를 또 잃게 되었습니다.

 

 

이제 연합군은 베냐민 지파에 대해 이스라엘 총회의 이름으로 징벌을 내리는 것 자체가 과연 합당한 것인지를 묻게 되는 그런 기도를 하게 됩니다. 그들은 금식하고 통곡하면서 진정 하나님의 뜻을 물었습니다. 그 때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었습니다. “내가 붙이리라” 즉 이번 전쟁을 잘난 척, 의인인 척 하는 너희들의 전쟁을 삼지말고 진정 하나님께 돌려드리는 전쟁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번에는 베냐민 지파가 교만합니다. 즉 승리의 승리가 곧 하나님의 뜻이 자기네들이 장악하고 있는 줄로 여기는 겁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망대가 무너져 18명이 죽은 자가 안 죽은 자들보다 결코 죄가 더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입니다.

 

 

이것은 평소의 우리들의 의식이 얼마나 하나님 위주가 아니라 자신을 마치 의인으로 간주하면서 움직이느냐 하는 점을 찔려주시는 겁니다. 하나님은 의인을 부르러 오시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평소의 태도는 항상 자기 가슴에 의인됨을 충만합니다. 누가 자진해서 자신을 비류가 다를 바 없는 죄인이라고 간주하겠습니까

 

 

이 세상은 의인은 없습니다. 그러나 왕이 없는 시절에 각자 왕인양 여기면서 자기 보다 못한 악한 자를 찾게 됩니다. 이번 일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목숨의 질을 고려하신다는 사실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목숨의 질이 좋지 못하면 아무리 많은 숫자가 죽더라도 목숨의 질이 우수한 한 사람의 죽음에 비할 바가 못됩니다.

 

 

왕이 없던 시절의 사람들은 다수의 의견이 곧 진리에 가깝게 접근한다고 알았습니다. 하지만 목숨의 질이 나쁜 자들 끼리 아무리 모아봤자 하나님에게 압력으로 작용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분명 죄인입니다. 하나님은 의인을 부르러 오신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오셨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어떤 점에서 죄인인가를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죄인이라고 고백하면서도 막상 자기보다 못한 존재가 눈에 띄면 졸지만 의인으로 행세하면서 자신이 심판을 하려고 합니다. 진정한 심판주는 오직 죄인을 위하여 귀한 목숨까지 내놓은 그러한 목숨의 질을 가지신 예수님 뿐입니다.

 

 

다른 사람은 아닙니다. 따라서 사사 시절에 지나면 하나님에 의해서 직접 간택된 왕이 등장하게 됩니다. 그 왕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펼치는 왕이 될 것입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당장 죽어야 될 우리를 살려주시니 감사합니다. 용서받은 죄인의 안목으로 세상을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